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외로움

6년만에 유방암이 재발했다. HER2 양성 유방암. 6년전에는 HER2를 타겟으로 하는 약제가 이제 막 나와서 우리나라에서는 쓸 수 없었고, 전세계적으로 임상연구를 막 시작하던 차였다. 환자는 그때 당시 할 수 있었던 치료를 다 받았다. 재발 후 환자는 HER2를 타겟으로 한 임상연구가 있어서 치료를 받았다. 표적치료제를 쓰면 놀랍게 좋아지는 사람도 있지만 효과가 없는 사람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 환자는 효과가 별로 없었다. 흉막에 물이 있었는데 줄지 않았다. 물을 없애고 흉막유착술을 했지만 물을 또 다시 고였다. 배에도 물이 생겼다. 병이 나빠지면서 복강 내 물이 늘어나니까 복수로 환자가 많이 불편했다. 허셉틴도 쓰고 타이커브도 썼지만 뾰족하게 치료효과가 없었다. 환자는 날 만나고 1년이 지났지만 별로..

모범환자 8호 - 나날이 씩씩해지는 그녀

속내를 정확히는 모르지만, 가족이 모두 베트남에 살고 있다. 아마 남편 사업 때문에 가족이 이사를 가신 것 같다. 환자는 두 아이의 엄마. 유방암 치료를 시작할 무렵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자기는 약에 아주 민감하다고 약 잘 못 먹으면 엄청 고생하는 스타일이라고 입덧도 아주 심했었다고 했다. 국내에 친척들이 있기는 하지만 항암치료 하는 기간 동안 그들 집에 머물기는 어렵다고, 마음이 부담스럽다고 그래서 우리병원에서 항암치료 받고 나머지 기간은 요양병원에서 머물러 계실 거라고 했었다. 그렇게 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는데 첫날 항암제를 맞고 귀가했다가 바로 당일 밤에 응급실행. 그리고 환자는 일주일 이상 계속 토했다. 내가 본 환자 중에 제일 증상이 심했다. 내가 회진을 가도 그녀는 날 아는 척 조차 하..

생명력

객관적으로는 나쁜 예후인자가 많은데, 사진을 보면 무시무시한데 겉으로 보면 멀쩡한 환자들이 있다. 누가 환자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퇴원을 시켰는데 아주 좋아져서 발걸음도 당당하게 병원에 돌아오시는 분들이 있다. 심지어 돌아가실 줄 알고 집으로 보내드렸는데 2년만에 감쪽같이 좋아져서 나타나시는 분도 있었다. (물론 호르몬제를 계속 드셔서 병이 억제된 면도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좋아지기는 힘들다.) 사람의 일은 비단 나의 능력과 의지로 100% 예상할 수 없고 100% 맞출 수도 없다. 의사는 평균과 통계로 치료하지만 환자는 자기의 생명력을 바탕으로 치유된다. 나의 처방은 그러한 생명력을 바탕으로 치료적 효과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항암제 만으로 좋아지는 것 같지 않다. ..

왕왕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암

지금 입원해 있는 환자 중 80세가 넘으신 유방암 할머니, 유방암 할아버지, 그리고 90세가 넘으신 폐암 할머니가 계신다. 유방암은 가능한 조직검사를 해서 호르몬 수용체, HER2 수용체 여부를 확인하면 세부 유형이 결정되는데, 유형에 따라 독한 항암제를 쓰지 않고도 항호르몬제나 표적치료를 통해 병을 어느 정도는 다스릴 수 있다. 성적도 꽤 좋다. 게다가 유방 조직검사는 별로 위험하거나 어렵지 않기 때문에 아무리 왕왕 할머니 할아버지라 하더라도 환자를 설득해서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 유방암 할아버지는 다른 병원에서 1차 검사를 해서 유방암이라는 것은 진단이 되었지만 더 이상 가용한 조직이 없어서 수용체 검사를 하지 못하였다. 할아버지는 조직검사를 한 후에 종양이 커지고 통증이 심해졌다면서 죽어도 재검사는..

훈남 총각, 내 마음을 사로잡다

내 환자는 거의 여자환자다. 대개 아줌마, 할머니. 가끔 아가씨. 오늘은 토요일 외래. 내가 주치의는 아니지만 토요일 외래 때 피검사를 하러 오는 젊은 훈남 총각이 있어 가끔 만나는데 그 가 오늘 외래에 왔다. 항암치료 중 수혈이나 백혈구 촉진제를 맞아야 할 때 토요일 내 외래에서 만나게 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지난 추석 무렵이었는데, 추석 연휴기간이 끼어있어 백혈구 촉진제 맞는 문제, 입안 허는 문제를 상의했었다. 이제 갓 스무살을 넘긴 그, 연휴기간 동안 열나면 어떻게 할지, 무슨 종류의 가글을 하면서 점막염을 호전시킬지 환자랑 논의해야 했다. 매우 준수한 외모, 그는 별 말이 없고, 내가 뭔가를 설명하면 그냥 끄덕끄덕 알겠다고 대답만 했다. 재발 후 하는 항암치료라 약제가 매우 독하다. 매일 의..

기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하고

항암제 효과가 좋았다. 유방의 종괴 크기도 많이 줄었고 폐로 전이된 병변도 거의 흔적이 없다. 이제 더 좋아질 게 없는 것 같은데도 CT를 찍어보면 계속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래서 항암치료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 항암제 효과가 좋은 그녀는 독성도 그만큼 심하게 겪고 있다. 그녀가 적어오는 수첩은 그녀의 투쟁기다. 그녀는 매주 병원에 오는데 그때마다 수첩에 자신의 생활, 증상, 고민 이런 걸 잘 적어온다. 가끔 나는 빨간 볼펜으로 수첩에 코멘트를 남겨준다. 약 이름, 약 설명, 걱정말라는 OK 그런 기록들. 감기 요로감염 발톱염증과 진물 피부 트러블 손발 저림 백옥같던 피부가 먹는 항암제 먹고 엉망이 되었다. 예쁜 얼굴. 이제 화장도 잘 안한다. 트러블 때문에. 키크고 날씬한 그녀가 발톱에 생긴 염증 ..

정신과 선생님 감사합니다

나는 그 환자의 과거 병력을 자세히는 몰랐다. 그녀는 유방암 수술 후 4번 항암치료 하고 허셉틴으로 표적치료 중이다. 내가 정리해 놓은 병력에는 과거 불면증이 있었고 성격이 예민한 편이라 집근처 신경과에서 약을 복용한 적이 있었다는 정도의 메모로 정리되어 있다. 나는 r/o depression 이라고 내 의견을 적어두었다. 그러나 허셉틴 표적치료는 그리 힘들지 않기 때문에 외래에서 환자랑 별로 많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 피검사도 잘 안하고 가끔 심장기능만 체크하기 때문에 환자에게 설명할 내용도 별로 없다. 이미 힘든 항암치료를 다 받은 상태라서, 환자들도자기 치료과정에 대해 왠만한 사항은 잘 알고 있고 병원 시스템도 잘 알고 있다. 허셉틴 치료는 힘든 것도 없어서 환자도 별로 할 말이 없다. 그래서 외래..

사랑

나이 많은 할아버지 폐암으로 항암치료를 받으셨다. 할아버지 곁에는 나이가 훨씬 젊은 할머니가 계셨다. 아마도 둘째 부인이신것 같다. 자식들은 잘 나타나지도 않고 병원에 오면 그 할머니를 구박하는 눈치다. 재취라고 어머니 대접을 잘 안하는 것 같다. 할아버지 돈을 보고 두번째 부인이 된 것 같지는 않다. 그냥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다. 살림도 별로 여유롭지 않다. 병원에 입원하면 집에서 농사지은 고구마, 쌀, 콩 그런 걸 선물로 주셨다. 할아버지는 폐암으로 병원에서 돌아가셨다. 마지막을 할머니가 지켰다. 시간이 흐르고 어느 날 할머니가 불현듯 전화를 하셨다. 제가 최선을 다 한 걸까요? 더 잘 할 수 있었는데 못한 건 없나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어땠나요? 그러고 보니 돌아가신지 1년쯤 되었구나 싶다. 할머니..

나도 말문이 막혀...

10살부터 신장에 이상이 있었다. 20살부터 혈액투석을 하였다. 30살에 첫번째 신장이식을 하였고 35살에 거부반응이 와서 다시 혈액투석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의 나이 올해 39세. 두번째 신장이식을 하였지만 10월에 다시 거부반응이 와서 다시 투석을 시작하였다. 두번째 거부반응이 온 이후 전신상태가 계속 좋지 않았다. 원래 콩팥 기능이 좋지 않은 만성신부전 환자들은 늘 기운이 없고 잘 못 먹고 자꾸 토할 것 같은 증상이 생기고 머리도 맑지 않고 그렇다. 그래서 거부반응 이후 동반되는 증상이려니 했다. 그런데 투석을 했는데도 이런 증상이 좋아지지 않았다. 우연히 만져지는 림프절이 있어서 지난 주 조직검사를 했다. 카포시 육종이 진단되었다. 그렇게 또 다른 병이 생기면서 그는 갑작스럽게 말랐고 전신상태가..

모범환자 7호 - 이렇게만 하면 못할일이 없겠어요!

환자는 본인의 평소 백혈구 수치가 정상범위 중에서 낮은 경계에 해당하였다. 재발 후 지금 쓰는 항암제는 젬자와 나벨빈 두가지 병용요법이다. 이 두 약제의 특징은 구토나 기타 등의 증상으로 인해 환자를 힘들게 하지는 않는데 환자 컨디션이 좋은 것에 비해 백혈구 수치가 잘 떨어진다는 점이다. 그래서 멀쩡한 컨디션으로 기분 좋게 병원에 왔다가 피검사 결과가 나와 외래를 보게 되면 느닷없이 한주간 쉬자는 말을 듣게 되어 환자들이 많이 속상해한다. 항상 깔끔한 외모, 단정한 옷차림, 단정한 화장과 헤어드라이까지. 그렇게 예쁘게 하고 병원에 오신다. 한주일 쉽시다 선생님, 저 컨디션 좋은데 그냥 항암치료 하면 안되나요? 저 빨리 치료하고 좋아지고 싶어요. 그러니까 주사 맞게 해주세요. 백혈구 촉진제 맞고 항암치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