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남편의 눈물, 그리고 아이의 백일떡

남편은 병원비 중간정산을 해야 한다며 은행에 가서 마지막 적금을 깨고 왔다. 부인을 위해서 이렇게 하는게 맞는 것 같다며… 30대 초반의 부부. 행복한 연애, 결혼, 첫 아이 임신. 그런 기쁨으로 시간이 충만한 임신 7개월째 어는 날 배속에는 아이만 있는게 아니라 종양도 같이 자라고 있는걸 알았다. 태아의 폐가 성숙되기를 기다려 제왕절개로 아이를 출산했다. 그리고 엄마는 수술을 받았다. 소장암 그리고 복강내 전이. 항암치료를 2번 밖에 못 했는데 장폐색으로 장루를 빼는 응급수술을 다시 했다. 그리고도 장은 움직이지 않았다. 콧줄을 끼우지 않으면 소화액이 계속 역류하여 토하는 일이 반복되어 음식을 먹지 못하고 콧줄을 끼운 상태로 지내야 했다. 아무런 치료도 하지 못하고 환자의 상태는 빠른 속도로 나빠지고 ..

아이패드 중고노트북 기증받아요! 기부해주세요!

아이패드 중고노트북 기증받습니다 50대 중반의 여자 환자. 갑작스러운 사지 마비로 입원하였다. 척추를 누르는 종양이 커지면서 갑자기 하지의 감각, 운동기능이 상실되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고 움직일 수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미 방사선 치료를 한 곳인데 종양이 더 커졌나보다. 그녀는 원래 자신을 예쁘게 단장하길 좋아하는 스타일이었다. 화려하게 꾸미는 스타일이라기 보다는 예쁘게 단장하는 것. 첫눈에 그런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는 지금도 자신의 흐뜨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나보다 어린 딸이 항상 엄마 옆을 지키고 있다. 평생 엄마가 자신을 돌봐주었는데, 갑자기 한 순간에 딸이 엄마를 돌봐줘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딸은 쉬지 않고 엄마..

슬기의 일기 - 1

신문 청년의사에 슬기의 일기 연재가 시작되었다. 인터넷 판에는 아직 실리지 않고 종이신문으로만 나왔다. 매달 한번씩, 이제 11번 남은 슬기의 일기. 어제 1년치 계획을 세웠다. 글쓰기에 대한 흥미로운 경험이 될 것 같다며 기대하는 눈치다. 어렸을 때는 뭐든 경험하고 도전하고 해보는게 좋은것 같다. 다음은 첫번째 기고문. 엄마의 생일 1월 27일은 엄마의 생일이었다. 늦게까지 집에 오지 않는 엄마에게 전화를 해 보았다. 원래 늦으면 병원에서 주무시거나 내가 잠든 이후 아주 늦게 들어오는 일이 다반사이기 때문에 전화를 잘 안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생일이니까 전화를 한번 해야할 것 같았다. 힘없는 엄마의 목소리, 오늘 최악의 하루를 보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1년에 한 번뿐인 생일인데! 성격이 무덤..

시래기

바싹 말린 시래기. 봄이니까 기운 잃지말라며 시래기국 한번 끓여 먹어보라고 환자가 갖다줬다. 그는 3주에 한번씩 시골에서 새벽 기차를 타고 진료받으러 오신다. 탁소텔 맞고 손발저림이 너무 심해 하시던 장사를 다 접었다. 그래서 먹고 사는게 더 힘들다고 했다. 항암제 맞고 손발저린 데에는 뾰족한 약이 없다고, 차라리 운동이나 요가, 댄스같은 걸 해보시라고 했더니 시골에 무슨 헬스클럽이냐고. 나같은 시골 아줌마가 무슨 요가냐고 나에게 면박을 주었다. 나의 부적절한 코멘트. 그런 그가 무슨 정신에 시래기를 말리고 다듬고 싸가지고 오신건지... 큰 비닐봉다리에 가득한 시래기. 이거 끓여먹으면 보약이 될 것 같다. 눈물난다.

거짓말

가끔 거짓말을 하게 된다. 지병으로 간경변이 심했던 60세 난소암 환자. 난소암 때문에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6차례 하였다. 간경변 때문에 백혈구 수치가 남들보다 많이 떨어지고 또 회복이 느렸던 탓에 항암치료 기간이 길어지고 환자도 많이 힘들었다. 그렇게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복수가 생겼다. 간 때문인지, 난소암 재발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CT를 찍었다. 보이는 병변은 없지만 복수가 아주 많다. 복수를 빼서 검사를 했다. 물에서 암세포가 관찰되었다. 난소암 재발로 진단. 난소암은 platinum을 기본으로 치료하게 된다. platinum에 반응이 좋은 타입인지, 아닌지가 예후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이 환자는 마지막 platinum을 쓰고 6개월 내에 재발했기 때문에 platinum..

같은 날 죽을 수는 없는 법이야

사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그다지 금슬좋은 부부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할머니가 무슨 말씀만 하실려고 하면 할아버지가 말문을 막는다. 알지도 못하면서 자꾸 나선다고 자꾸 참견하며 훈수를 두신다. 할머니는 할아버지가 한 말씀만 하시면 이내 겁을 먹고 뒤로 물러선다. 진료실을 나설 때 할머니는 작은 목소리로 ‘선생님만 믿어요. 잘 치료해주세요.’ 그렇게 한마디만 하신다. 진료시간이 지연되어 많이 기다리는 날이며 ‘아이고 세브란스병원에서 선생님이 젤 바뻐’ 할아버지는 그렇게 침 한방을 놓고 가신다. 그냥 평범한 노부부시다. 부부가 늘 함께 병원에 다니지만 정작 나에게 진료를 받는 분은 할아버지다. 일흔이 넘으신 할아버지는 폐로 전이된 유방암 환자다. 그는 여자 환자들이 득세하는 대기실에서 늘 마음이 편치 않다...

카타 콤베

카타 콤베 특이한 재질의 토양 덕분에 가능한 묘지 구조물. 우리도 이런 무덤있으면 좋겠네. 첨엔 아주 효율적인 묘지라고 생각했다. 1세기경 이미 로마시 인구는 백만명이 넘었다고 한다. 인구가 늘어나니 죽는 사람도 많아지고 죽은 자를 매장하는 것도 큰 사회문제가 되었을 것 같다. 로마시에서 버스로 15분정도 아피아 가도를 따라 나가면 어느 카타콤베 무덤 중 한군데를 방문할 수 있다. (카타 콤베는 특정 무덤 양식이라 로마시 외곽 여기저기, 그리고 이탈리아 및 유럽 각지에 있는 묘지 양식 중 하나라고 한다) 토기 그릇를 만들기 위해 흙을 파헤치고 나면 땅이 움푹 패이기 마련. 그런데 이 지역의 땅은 그렇게 움푹 패이고 나면 그대로 굳어버리는 성질을 가지고 있었다. 즉 토양이 물과 공기를 만나면 딱딱하게 굳는..

50/50

50/50 Spinal neurofibrosarcoma (척추 신경육종)에 걸린 27세 청년의 이야기. 5년 생존율 50%라는 이 병. 그래서 영화제목이 50/50 인가보다. 비행기에서 졸지않고 본 영화. 아주 참하게 생긴 청년이 아침 조깅을 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된다. 예쁜 여자친구랑 동거중인 그. 일상을 평화롭게, 1분 1초를 아끼며 열심히 일하고, 술담배도 안하고 커피도 마시지 않고, 나쁜 짓 안하고 조신하게 살아가는 그에게 묵직한 허리 통증이 찾아온다. 젊은 그가 병원에 가서 이름도 낯선 암 진단을 받는다. 진단명을 고지하고 예후를 알리는 의사의 목소리는 저 너머에 울림으로만 남아있다. 부모님께 숨기고 항암치료를 시작한다. 항암치료 중에는 그에게 유쾌한 친구가 있다. 머리를 빡빡 깎을 때, 개를..

맥락

내가 주치의가 되어서 느낀 좋은 점은 내 환자와 연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만난다는 점이다. 긴 말을 안해도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환자도 적당히 떼를 쓰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줄 안다. 그게 제일 안되는 곳이 응급실 젤 힘든게 인턴 환자를 보는데 연결고리가 없다. 매번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 기본적으로 레지던트 때는 내가 소속된 파트의 담당 교수님도 텀에 따라 바뀌고 그래서 내가 봐야 하는 환자도 자꾸 바뀌고 내가 지금 이렇게 판단한 환자가 장기적으로 어떤 예후를 밟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진료의 단편 단편을 경험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고 재미도 없다. 협진 노티하는 것도 대표적으로 보람없고 재미없는 일. 의무기록이나 경과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장..

잠시 병원을 비웁니다

잠시 병원을 비웁니다 연구자 미팅이 있어 3일간 로마에 다녀옵니다. 비행기 타고 왔다갔다, 중간에 갈아타고 기다리는 시간을 합하면 정작 회의를 하는 시간보다 훨씬 길지만 그렇게 관련 미팅에 참석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우리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약제가 제공된다는 측면도 있고 우리 병원이나 우리 과의 입지를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판단되어 출장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목금토 병원을 비우니 그 동안 환자 퇴원 및 치료 계획을 잘 세우고 제가 없는 동안 병원에 입원해 계시는 환자들이계획 대로 일정이 잘 진행되도록, 특별히 문제가 안 안생기도록 미리 단속을 해야 합니다. 다행히 지금 저와 함께 일하는 전공의 선생님이 아주 실력이 좋고 환자를 잘 보는 의사선생님이기 때문에 별 걱정은 안합니다. 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