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에너지바

창 너머 하늘이 파랗다. 같은 하늘을 바라보아도 아, 하늘이 파랗다. 정말 예쁘구나! 아, 젠장 하늘마저 이렇게 아름다운데 난 이게 뭔가 같은 사람의 마음인데도 이렇게 다르다. 시시 때때, 주변 상황에 따라 그렇게 변덕스럽다. 일이 안 풀리면 그래 이번 난관을 이겨내고 노력해서 극복하는게 의미있는거야 그렇게 결심하고 맹렬하게 달려갈 수 있는 에너지가 넘칠 때가 있고 아, 매번 이렇게 장애물에 부딪히다니 인생, 정말 힘들다 그렇게 힘없이 무너질 때가 있다. 2002년 본과 3학년, 나는 마라톤 풀코스를 3번 완주하였다. 마라톤을 하면서 내가 배운건 2가지. 첫째 누가 옆에서 빨리 달리든 늦게 달리든 소용이 없다는 거. 나는 내 체력으로, 내 페이스로 끝까지 달리는게 더 중요하다는 거. 마지막 5km는 걷지..

받아들일 수 없어

외래를 보는 내가 목소리도 갈라지고 입도 마를거라며 홀스 같은 사탕,목을 보호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차 그런 걸 가져다 주시던 환자가 있다. 7년만에 유방암 재발을 진단받았는데 정작 본인은 별 증상이 없었다. 목이 좀 뻣뻣하고 허리가 좀 아프고 그정도. HER2 양성이라 마침 임상연구가 있어서 소개해드렸다. 말은 임상연구이지만 표준치료랑 크게 차이가 없어서 보통 치료를 시작할 때와 큰 차이를 두고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신약도 아니고 특별한 검사가 더 있는것도 아니고... 임상연구로 치료를 하면 담당 임상연구간호사가 환자를 꼼꼼히 챙기기 때문에 검사일정이나 독성평가를 더 철저히 하게 된다. 환자도 불편하고 어려운 점이 생길 때 임상연구간호사랑 언제든 연락할 수 있고 의사에게 바로 연결이 되기 때문에 조치가..

병원 밖에서 보호자를 만나다

환자는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임종을 기다리고 있다. 먹으면 자꾸 토하고 소변양이 줄면서 온몸이 퉁퉁 붓고 있다. 무슨 검사를 하기에 어려움이 많다. 또 검사를 해도 환자의 증상 완화를 위해 특별히 뭔가를 해 줄 수 있는 대책이 거의 없다. 의사로서 힘들어 하는 환자를 지켜보고만 있는 것이 정말 힘들다. 그러나 그 마음이 가족만 할까? 아직 의식이 맑은 환자. 진통제를 더 올리거나 밤에 수면제를 쓰는 문제에 대해서는 완강히 거절하고 있다. 환자보다 더 초췌해진 남편. 남편분이 더 지쳐보여요. 부인에게 멋진 모습 보여주셔야죠! 밤에 연대 캠퍼스 쪽에 있는 남편을 우연히 만났다. 아침에 내가 한 말 탓인지 면도를 하셨다. 회진 때 내가 환자에게 우울한 말 할까봐 남편은 옆에서 전전긍긍하신다. 먹으면 자꾸 토하..

검사 일정

4기 유방암이지만 치료 효과가 안정적으로 나타나면서 2년째 3년째 같은 약으로 치료받는 환자들도 꽤 있다. 처음에는 CT를 찍을 때마다 마음 졸이고 불안했지만 (물론 검사 후 결과를 듣는 심정은 아무리 시간이 흘렀더 하더라도 언제나 떨리고 불안하기 매 한가지이겠지만) 그래도 이제는 상당히 관록이 붙었다. 의연하다. 마음도 강건해진 탓도 있겠지만 약효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면서, 일상생활에 지장이 없고 자기 삶이 더 이상 균열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짐작해본다. 항암제 치료를 하면서 그 치료의 효과를 확인하고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 상황 별 가이드라인도 있고 의사의 성향도 있고 환자별로 특수한 상황도 있으니 언제 검사를 하는 것이 가장 적당할 것이냐에 일관된 답은 없을 것이다. 나는..

틀어져도 다시...

공개방송에 가서 보니 가수들은 NG가 나면 똑같은 노래를 몇번씩 다시 부르고 있었다. 스탠딩에 서서 환호하는 관중이 지칠 지경이다. NG 싸인이 날 때 일단 표정이 굳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 그래도 프로인 그들은 OK 싸인이 날때 까지 낯낯한 표정을 잃지 않고 마치 처음 부르는 사람처럼 신나게 노래를 부른다. 자기 때문에 NG가 나서 시간 끌며 노래를 다시 부르게 되어도, 여러 사람들에게 미안해도 결국 그 상황의 해결은 노래를 잘 불러야 종결되는 것이므로 그들은 최선을 다해 다시 노래를 부르고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상황을 해결해야만 한다. 어떤 환자와는 자꾸 어긋난다. 그는 나의 말투조차 마음에 들지 않나보다. 나는 격의없이 서로를 잘 이해할 거라고 생각해서 편하게 한 말인데 그게 그렇게 거슬렸었던 걸까..

암과의 동행 - 생로병사의 비밀을 보고

평소에 암 환자를 진료하면서 환자들에게 해 주고 싶었던 이야기들 바쁜 외래 진료시간에 하지 못하고 넘어갔던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이 오늘 생로병사의 비밀에서 잘 소개되었다. '암과의 동행' 다양한 암환자들이 자신의 삶 속에서 병을 받아들이고 완치되지 않아도 절망하지 않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또 그만큼 행복을 느끼며 살아가는 모습이 소개되었다. CT를 통해 보이는 병은 무시무시한데 예쁘게 화장하고 활짝 웃으며 자신이 지금의 병과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유방암 환자인 그녀는 이미 전이성 유방암으로 수차례 항암치료를 바꾸어 받고 있다. 커튼이나 소파, 베게 등의 소품을 밝은 색상으로 유지하여 방안 분위기를 화사하게 하고 화장, 옷차림도 상큼하게 유지하며 살려고 노력하는 모습. 수차례 항암..

응급은 아니었는데...

이제 항암치료 그만 하는게 좋겠어요. 집에서 편하게 지내세요. 그렇게 보낸 환자. 나보다 어린 환자. 나이 또래의 남편. 그들은 눈물을 머금고 지난 1월 우리 병원을 떠나갔다. 집이 지방인 그들을 보내며 나는 소견서를 써 주었다. 진단명, 그동안 한 시술, 그동안 한 항암치료 종류와 일지. 그리고 주치의로서 나는 더 이상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계획이며 보존적 치료가 환자에게 필요하다는 의견을 적어보냈다. 마지막까지 사용한 약 처방전을 같이 보냈다. 환자는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겠다고 했다. 혹시 근처 병원에 가게 되면 이 소견서를 제시하라고 했었다. 그 환자가 1주일전부터 다리가 아파서 자기 사는 동네 병원에 갔다. 병원에서는 지금 손 쓰기 어렵다고, 원래 다니던 병원 가라고 했다며 자기 다시 우..

직언

얼마나 세상을 솔직하게 살아야 하는걸까? 솔직하게 직언을 하는게 좋은걸까? 직언을 하면서도 유연하게 융통성있는 것처럼 비춰지면 얼마나 좋을까? 욱 하는 내 성격의 특성 상 내가 하는 발언은 그 내용과 상관없이 감정적인 발언으로 비춰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난 가능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내 입장을 밝히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상당히 과격해 보이는 이미지이다. 불을 뿜듯 직언을 내뱉어내 버리고 '쿨' 하게 떠나는건 어떨까? 짧은 순간 쿨 한것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결국 무책임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다. 직언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그 대상에 애정이 있기 때문에 하는 행동이다. 그러므로 직언을 하고 떠난다는 건 직언이 아니다. 그냥 폭발이다. 직언의 대상이 사람이 되었든 조직이 되었든 직언을 한다는 것은 내..

포를 뒤집어 쓴 환자

환자에게 어떤 시술을 할 때 포를 뒤집어 씌운다. 얼굴도 가리고 검사나 시술을 해야하는 부분만 노출시키고 나머지 부분을 다 가리고 덮는다. 환자의 얼굴을 가리고 나면 환자가 검사대에 올라가고 나면 그때부터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개체'가 된다. 그 환자의 몸을 다루는 시술을 하면서도 그 몸의 주인공이 맨 정신으로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보고 (지켜듣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게 된다. 그래서 환자의 신상 정보에 관한 이야기 다른 과 의사 이야기 병원 이야기 환자가 들어서는 안되는 이야기도 거리낌없이 한다. 환자의 얼굴이 보이지 않으니 환자에게조차 말을 함부로 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환자가 어떤 시술을 하고 오면 그 시술을 한게 아파서가 아니라 속이 상해서 운다. 그 자리에 내 부모님이, 내 자식..

다른과로 협진 보내기

종양내과 외래를 다니는 환자들은 몸이면 몸, 마음이면 마음, 온갖 군데에서 문제가 생긴다. 어떤 것은 과감하게 내 선에서 해결해야 하고 어떤 것은 소심하게 다른 과 협진을 봐서 의견을 듣고 해결해야 한다. 그래서 종양내과 의사는 잡 지식이 많아야 한다. 꼼수로 해결해야 하는 것도 많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다 검사하려고 들면 끝이 없다. 그런데 꼼수부리다 큰 일 나는수가 있다. 그래서 매일 살얼음판이다. 손발이 저려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겠어요 단추 잠글 수 있어요? 젓가락질 제대로 되요? 한번 걸어보세요. 항암제 용량을 좀 줄이든지 약을 쉬든지 해야겠네요. (항암제 반응은 좋은거 같은데 그만 해야 하나? ㅜㅜ) 입안이 헐어서 밥을 못 먹겠어요 아 해보세요. 이구 궤양이 생겼네요. 가글 열심히 하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