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치의가 되어서 느낀
좋은 점은
내 환자와 연결된 스토리를 가지고 만난다는 점이다.
긴 말을 안해도 서로를 잘 이해할 수 있고
사소한 일로 오해가 생기지 않는다.
환자도 적당히 떼를 쓰면서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킬 줄 안다.
그게 제일 안되는 곳이 응급실
젤 힘든게 인턴
환자를 보는데 연결고리가 없다. 매번 맨땅에 해딩하는 기분
기본적으로 레지던트 때는
내가 소속된 파트의 담당 교수님도 텀에 따라 바뀌고
그래서 내가 봐야 하는 환자도 자꾸 바뀌고
내가 지금 이렇게 판단한 환자가 장기적으로 어떤 예후를 밟고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진료의 단편 단편을 경험하기 때문에
잘 모르겠고 재미도 없다.
협진 노티하는 것도 대표적으로 보람없고 재미없는 일.
의무기록이나 경과기록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장기환자 한명 파악하고 나면 1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렇게 시간 잔뜩 걸려 환자 파악하고 가면 그런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천대받는 경우도 종종 있다. 혹은 그렇게 파악한 것과 무관한 내용으로 협진이 나는 경우도 있고.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지금 당장 발생한 이벤트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유용할 때가 많다.
랩 수치 하나를 꼼꼼히 챙기지 못해도 흐름을 알기 때문에 별로 당황하지 않는다.
주치의가 되니까 그런 맥락을 파악하면서 환자를 진료하는 경험을 갖게 되어 좋다.
이쯤 되면 진료라기 보다는
완치되지는 않겠지만 병을 치료하면서 좋고 나쁜 부침의 시간을 같이 겪고
그 시간을 함께 여행하는,
스위트 홈으로의 귀환을 꿈꾸는 동반자가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
환자가 내가 권하는 검사를 안한다고 해도
내가 권하는 치료를 거절해도
일단은 그냥 넘어가준다.
그래도 괜찮다.
다음에 하자고 다시 설득해 봐야지.
요즘 환자 컨디션도 않좋고 기분도 않좋은데 일단 내가 양보하자.
그런 마음이 든다.
전공의 때는
그렇게 환자 삶과 치료의 맥락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하게 warning 하고
심하게 검사많이 하고
심하게 약을 많이 처방하는 등의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일을 당하면 환자들은 실망하고 분노한다. 그 마음을 돌리려면 또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다.
나도 그런 과거가 있으니 우리 전공의들을 감싸주고 환자들에게 이해를 구해야겠다.
의사는 그렇게 배워가며 성장하는 거라고. 이해해 달라고. 나도 그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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