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퇴원한건 몇 일전이다.
복수 조절을 위해 임시적으로 관을 넣고
잘 못 먹으니 영양제 맞고
약을 바꿔 항암치료를 시작해 볼까 하는데
환자가 몇일 더 쉬었다가 치료를 했으면 한다고 했다.
나도 동의했다.
이번에 젬자를 많고 전신무력감이 심하게 왔다. 좀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그렇게 3일 정도 입원했다가 퇴원했다. 걸어서. 혼자.
그녀는 재발된 전이성 유방암으로 5년이 넘게 치료 받고 있었다.
좀 나빠져도 항암치료를 하면 다시 좋아지고
또 운이 닿아 신약 임상연구에 참여할 기회도 많아 여러가지 신약을 많이 쓸 수 있는 기회도 있었다.
그렇지만 약을 쓰면 좋아져도
시간이 지나 저항성이 생기면 또 나빠지기를 반복.
그러나 그녀는 컨디션이 좋았다.
병을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초달관 스타일.
이번 약은 이제 더 이상 효과가 없나봐요. 약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에휴, 또 나빠졌어요? 남은 약이 있나요?
그녀는 나를 믿고 치료에 치료를 거듭했다.
두달 전 그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임종을 앞두고 병원에 오는 걸 힘들어했지만 어찌 어찌 스케줄을 맞추어 치료를 계속 했다. 아버님이 돌아가실 것 같다고 했을 때는 기간을 좀 늘여서 하기도 하고, 우리는 죽음에 대해서도 이야기했었다.
저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막상 아버지가 돌아가실려고 하니까, 역설적으로 살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당연하죠. 누구나 그래요. 우리,살아야죠. 사실 사람은 잘 죽지 않아요.
맞아요. 아버지도 몇 번을 돌아가실 것 같았는데 근근히 생명을 유지하고 계시네요. 그렇게라도 살아계신게 좋네요. 내 아버지니까.
우리는 그렇게 최선을 다해 치료하였다.
그런 그녀가 오늘 아침 쓰러져서 의식불명 상태로 기관삽관을 하고 우리병원 응급실에 왔다.
아마 간전이가 나빠지면서 혈당생성 기능이 떨어졌는지 저혈당으로 혼수상태에 이른 것 같다. 우리병원 응급실에 도착했을 때는 언제부터 그랬는지 알 수 없는 심장마비 상태로 응급실 도착하자마자 심폐소생술을 5분간 하고 일단 심장기능이 돌아왔다.
처음보는 환자의 언니, 동생, 그리고 친척들.
나는 많은 설명을 해야 했다.
그리고 다시 심장기능이 정지하면 더 이상 심폐소생술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주치의로서 내 의견을 말했다.
오늘 쓰러지게 되었던 처음 순간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환자와 함께 했던 사람이 없기 때문에 조각조각 이야기를 맞추다 보니, 결국 간기능 저하가 핵심이고 그렇게 간기능이 나빠지게 된 것은 암의 진행과 관련이 있어보인다. 그걸 입증하기 위해 CT를 더 찍어 볼 필요도 없다.
남동생이 울며 간청한다.
누나랑 한마디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누나 고생많았다고.
50대 시골촌부. 그는 사람많은 응급실에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엉엉 울면서 나에게 간청한다. 환자가 우리 엄마였다 해도 나는 더 이상 심폐소생술을 하지 말자고 말했을까? 그랬을 거라고 스스로에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내 판단에 내가 힘들어서 못 견딜것 같다.
한마디.
어쩌면 우리는 살면서 그 한마디에 너무 인색할지도 모른다.
그 한마디 하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일까?
일상의 평온함에 기대어
그 한마디 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죽기도 쉽지 않다며 허허롭게 웃었던 그녀를
보낼 때가 된 것 같다.
미쳐 못 다한 그 한마디는
마음에 묻어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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