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죽기전 항암

슬기엄마 2012. 3. 13. 21:20

오늘 외래는
오전은 암센터에서
오후는 새병원 유방암 클리닉에서 있었다.
오전과 오후 사이는 1시간. 그 사이에 나는 우리병원에서 진행된 임상연구에 대한 심의를 받아야 했다. 다국적 임상시험이라 본사에서 외국사람이 심의를 하러 나왔다. 어제 밤에 심의대비를 위해 공부를 잔뜩 해야했다.
우리병원에서 진행되는 임상연구의 진행과정에 대해
발견된 약 부작용에 대해
임상연구 중 입원한 환자에 대해
우리가 입력하고 보관중인 자료의 비밀성과 안정성에 대해
뭐 그런 여러가지 질문을 하면 내가 대답하면서 임상연구의 질 평가를 받는 자리였다.
외부(외국)에서 우리 병원을 평가하러 왔으니 미팅 시간에 맞춰서 가는게 예의이겠으나
오전 진료시간에는 병이 나빠진 환자가 많았다.
시간을 맞추려고 닥달하듯 환자를 진료했지만,
병이 나빠져서 상심한 환자들을 다그칠 수는 없었다. 그냥 기다린다.
일부 환자에서는
더 이상 효과적인 약이 없어서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는게 나은 환자도 있었다.
아마 시간이 있었다면
입원장을 주지 않고
앞으로의 치료과정에 대해, 효과적인 약제가 없음에 대해 상의하고
좀더 논의하고
입원이나 치료여부에 대해 숙고할 시간이 필요했지만
미팅 시간이 늦어지니 일단 입원장을 드리고 입원하면 더 논의하기로 미루었다.
그런 내 모습에서
그들도 뭔가 내가 서두르고 있다는 거, 자신의 상태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 것 같다.
환자는 그런 의사의 한마디 한마디에 매우 예민하다. 그리고 그 자체를 섭섭해 하기도 하고, 지금의 우울하고 나쁜 상황의 원인을 나에게 귀속시키기도 한다. 당연하다. 의사는 그걸 이해하고 받아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말 한마디도 조심해서 해야 한다.

의사가 아홉마디 나쁜 말을 해도 한마디 긍정적인 말을 하면 환자는 그 말을 마음에 새겨두고 견디나 보다. 내가 예전에 했던 긍정적인 말을 믿고 치료를 해 왔는데 이제와서 약효가 소실되고 나빠졌다는 소식을 들은 그녀는 책상에 머리를 파묻고 우느라 고개를 들지 못한다. 매몰찬 말이 목전에 달한다. 전이성 자궁경부암 평균 1년이고 이제 1년이 지나가고 있는 거라고, 그게 평균이라고.
그래도 참아야 한다. 시간이 없고 마음이 바쁘니 그런 심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런 오해가 조금씩 쌓여서 결정적인 상황에서 의사소통의 장애가 드러나는것 같다.
최근 종양내과에서 사망한 케이스를 리뷰해 보다가 느낀 건데,
죽기 한달전까지 항암치료를 받은 환자가 너무 많다는 것. 그리고 그런 환자 중에 내 환자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의사도 치료의 효과를 믿고 싶어서,
환자가 좋아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어서 치료를 한다.
그리고 일단 치료를 시작하면 치료효과를 볼 때까지 기다려야 하니까 그 사이에 나빠지면 검사도 많이 하고 공격적으로 치료를 한다. 할거 안할거 가리지 않고 뭐든지 한다.
그렇게 치료받다가 돌아가신 환자를 리뷰해보니 죽음과 임종에 대한 준비가 너무 안되었고, 의사와 환자 사이에 그런 논의를 하지 않은채 목숨걸고 치료스케줄에 매달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내 환자가 아닌 다른 선생님 환자라서 좀더 냉철하게 보이는 걸까? 그런 냉철한 시각으로 내 환자를 다시 돌아봐야겠다.
이제는 왠만한 항암치료를 외래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시간압력에 쫓겨 충분한 논의없이 약제가 바뀌고 치료가 계속 된다.
환자는 그런 의미를 충분히 이해하고,
자신을 위해 가장 좋은 선택이 무엇인지 주치의와 상의할 시간과 여유를 갖지 못한다. 환자가 어떻게 그런 상황을 미리 준비하고 알 수 있겠는가. 이는 전적으로 의사가 준비하고 제안하고 마련해가야 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실날같이 가는 삶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투쟁하며 치료하고 있는 나의 환자들.
그들의 희망과 용기를 꺾지 않으면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야 할 현실을 마음아프지 않게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하겠다.

오늘 내가 환자들에게 내뱉은 말 중에 칼과 화살로 날아간 건 없는지 반성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