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죽음을 준비하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죽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

슬기엄마 2012. 2. 8. 07:02


오늘 외할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다.
아흔이 넘으셨다.
가족들은 진작에 다 마음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창 컨디션이 좋았는데
갑자기 Cancer stroke 이 오고 나서 말씀을 잘 못하시게 되었다.
영상검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임상적으로 암으로 인한 혈전증이 뇌혈관에 발생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리고 폐렴이 동반되었다.
아마 사인은 폐렴이 될 것이다.

성당을 열심히 다닌 외할머니.
성서 필사를 2번이나 하셨다.
대학노트 10권도 넘는 분량의 필사를 2번이나 하신 셈이다.
노트를 보니 한자의 오자도 없고 수정액도 안 쓰셨다. 줄도 반듯이 잘 맞추셨다.
노인이 대단한 정신력이라며 온가족이 혀를 내둘렀다.

장례를 하게 되면 발인하는 날 아침에 외할머니가 다니던 목포 성당의 10시 미사를 맞추기로 했다.
자식들이 다 서울에 있으니 장례식은 서울에서 하기로 했다.
새벽같이 목포로 출발해야 하니 고속도로가 가까운 강남 성모병원으로 장례식장을 정했다.
산소자리도 다 준비했고
장례식 동안 와서 기도해주실 분들을 위한 기도책이랑 성가책도 빌려야 한다.
진작에 가족들은 돌아가면서 할머니에게 인사를 했다.
이번 설에는 할머니에게 복돈도 받았다. 마지막으로 주시는 복돈이려니 했다. 우리 레지던트까지 5천원을 복돈으로 주셨다.
가족들끼리 할말, 인사 다 했다.
그리고 오늘 쯤 돌아가실 것에 맞춰서 자식들이 역할분담하여 장례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침에 산소 수치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곧 혈압이 떨어질 것이다.
생명연장을 위한 검사나 조치들은 하지 않을 생각이다. 추가적으로 약을 쓰지도 않을 것이다.
진통제만 더 올릴 생각이다.
오늘 오후 쯤 돌아가실 것 같다.
그 말씀을 듣고 엄마가 소리없이 우신다.
다 준비했는데
다 알고 있었는데
아흔도 넘었는데
빨리 돌아가셨으면 좋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막상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니 준비한 마음 같지 않다.
할머니는 큰아들이 먼저 세상을 떠난 20년전부터
폐암을 알게 된 석달 전부터
갑자기 뇌경색이 온 일주일 전부터
모두 다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래서 그 준비로 모두들 분주했지만
이렇게 준비된 죽음도
늘 당황스럽다.

환자와 가족들이 죽음을 예측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닫는다. 죽음의 순간까지 해야 할 일들이 매우 많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