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유방암 환자들에게 보내는 편지

너무 괜찮은 척 하느라 애쓰지 마세요

슬기엄마 2011. 7. 11. 12:40

말을 걸면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쓰느라 대답을 잘 못하면서도
괜찮다고 하신다.
어디 불편한데 있으시냐고 물어도
다 괜찮다고, 견딜만하다고 하신다.

병을 진단하고 병기를 결정하기 위해 이러저러한 검사를 하는 중인데
별 말 없으시던 환자분이
나에게 언제 항암치료를 시작할 거냐고 물으신다.
치료 시작하기 전에 해결할 일들이 있으시다며 하루 이틀 여유를 줄 수 있냐고 조심스럽게 물으신다.
그래도 될 것 같다고...
환자는 조용히 외출을 다녀온다.
원래 하시던 일을 마무리하고 치료를 시작하고 싶으시다고 했다.
가족들도 말은 별로 없지만
다들 신경이 곤두서있는게 느껴진다.
회진을 가면 남편과 자식들은
'의사선생님께 다 말씀드려. 어디어디 불편한지...'
'아이 참, 괜찮아요 이 정도는... 많이 좋아진거에요. 괜찮다니까요.'
그렇게 첫 항암치료를 받고 퇴원하셨다.
진단이 어려워 시간이 많이 걸린터라, 환자는 병원생활이 지겨운지 서둘러 퇴원을 하셨다.

다음 치료를 앞두고 중간쯤 되는 시점에 외래에 오셨다.
그 사이 오심 구토가 심했나보다.
교과서적인 기준에 맞게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에게는 용량이 좀 많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환자에게 이번 첫번째 항암제가 가장 중요하다. 여기서 반응이 좋지 않으면 별로 가망이 없기 때문에 마음 속으로 욕심을 부렸다.
외래에 가족들이 한꺼번에 들어왔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환자의 정서가 매우 취약해져있는것 같다.
가족들이 무슨 말을 한마디만 해도 자꾸 짜증을 낸다.
괜찮다니까 왜 그러냐고...
괜찮다면서 참았던 눈물을 보이신다.
가족들을 다 내보내고 환자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괜찮은 척 하려니까 더 힘드신거 아니냐고... 환자는 눈물을 떨구며 고개를 끄덕인다.
입원하면 정신과 선생님 면담도 하고 잘 듣는 수면제 처방도 받아 잠도 푹 자자고 했다. 환자가 동의하고 진료실을 나가서 다행이다.

치료할 수 없는 단계의 암을 진단받고
불안, 분노, 우울함 이런 감정들이 아직 본인 마음에서 해결되지 못하고 계신 것 같다. 
누가 해결해 줄 수 있겠는가.
환자 스스로의 힘이 길러지기를 기다려야지...

조기유방암 환자분들도
치료 다 마치고 현재 검사상 아무 이상이 없는데, 재발의 두려움으로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많다.
어떻게 하면 재발을 막을 수 있냐는 질문에,
지금 하고 있는 치료를 잘 받으시고 긍정적인 마음이 중요하다는 나의 충고는 그들의 마음에 별로 와닿지 않는다. 
'결국 정해져 있는게 아닐까요?' 낙담하듯 질문하는 환자도 있었다.
나는 '그럴지도 몰라요.' 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마음 속으로 '아무도 모르죠. 미래를 모르고 사는게 인생이니까 그냥 삽시다'라고 외친다.

괜찮은 척 하는 환자의 마음을
집요하게 파헤쳐서 힘들다는 걸 고백하라고 강요할 수도 없고
환자 눈치를 보면서 비굴한 눈빛을 보여서도 안되고
너무 무관심하게 굴면 더 안되고
과한 관심도 과한 무관심도 아닌 방식으로
가족과 환자가 잘 지내는 비법이 있으면 좋겠다. 
말하지 않아도 잘 지낼 수 있는 비법...

항암 주기가 끝날때마다 작은 소품을 선물하기
정해진 요일에 요리를 만들어서 식사대접하기
정기적으로 함께 산책하고 외출하기
중요한 것은 일시적인게 아니라 정기적인 거
지금의 사랑과 관심이 정기적이고 영원할 것이라는 안도감을 주는거 아닐까?
괜찮은 척 하는 환자의 마음이 스르륵 풀릴 수 있으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