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환자로부터 쏠쏠한 재미

지난주 보다 안색 좋아보여요. 좋은 일 있으셨어요? 네, 좋은 일 있었어요. 그래요? 무슨 일요? 성모 꽃마을 다녀왔어요. 거기 좋다는 분들 많으시더라구요. 저도 한번 가보고 싶어요. 어떤 점이 좋은지 궁금해요. 뭘 하면 환자들이 좋아하고 도움을 얻는지 한번 보고 싶어요. 그러세요. 매달 세째주 목요일 저녁 7시에 치유미사가 있어요. 누구나 참석할 수 있으니까 선생님도 한번 와보세요. 그럼 우리 1월 24일날 저녁에 성모 꽃마을에서 만날까요? 내가 관심을 보이자, 환자는 신이 나서 이것 저것 설명을 많이 해주신다. 가는 방법까지 알려주신다. 자기는 어떤 면에서 좋았는지도 말씀해 주신다. 신나게 이야기하는 그녀의 얼굴에서 빛이 난다. 전이성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고 첫 치료 후 나빠져서 지금 두번째 약제로 ..

흔적

존재하는 모든 것은 흔적을 남긴다. 나와 관계를 맺은 모든 사람도 나에게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은 때로는 영원할 수도 있고 때로는 흐려질 수도 있다. 흐려져도 내 마음에 남는다. 나의 지난 2년간 내 삶에 가장 큰 흔적으로 남아있는 것은 우리 환자들이다. 매일 밤 EMR을 들여다보면서 이전 치료 기록을 확인하고 그들의 CT를 보면서 했던 고민들. 그리고 그 다음날 그 환자를 만나 설명하고 병이 좋아지면 같이 기뻐하고 병이 나빠지면 같이 침울해 했던 그 모든 시간이 나에게 흔적으로 남아있다. 열심히 치료받았지만, 그만큼 내가 고민을 많이 했지만 돌아가신 분도 많다. 그렇게 노력했건만 돌아가셨다고 해서 그들을 위해 내가 했던 고민이나 내가 투자했던 시간이 아까운 것은 아니다. 내가 의사로 존재하는 한 그러..

Kitchen Table Wisdom

책 선물을 받았다. 자기가 읽고 감동받았다고, 도움이 많이 되었다며 나에게 추천해 주는 선물이다. 내 처지를 이해하고 나를 위하는 마음으로 시간과 돈과 노력과 마음을 투자하여 보내준 선물. 노연경 선생님, 고맙습니다. 원제는 Kitchen Table Wisdom. 부엌의 테이블에 둘러 앉아 나누는 삶의 지혜에 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번역에 그 느낌이 살지 않는지, 류해욱 신부는 고 장영희 교수의 글 제목 중에서 하나를 인용하여 책 이름을 부여하였다. 2005년에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되었고 2010년 5쇄를 넘겼으니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어 읽히고 있는 스테디 셀러인것 같다. 15세에 크론병을 진단받고 수차례의 장폐색과 치료 합병증으로 고생하며 살았던 레이첼 레멘. 그녀는 여자 의사 자..

림프 부종 관리 잘 하세요

유방암 환자들은 유방 수술을 할 때 대개 겨드랑이 림프절을 제거하는 수술을 동시에 합니다. 유방에서 시작된 암세포가 제일 먼저 전이되는 곳이 겨드랑이 림프절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유방도 제거하고 겨드랑이 림프절도 왕창 제거하는 수술을 하게 됩니다. 병의 입장에서 보면 림프절을 싹싹 긁어내서 몽땅 제거하는 것이 완치를 위해서 좋은 것처럼 생각되지만 삶의 질 입장에서 보면 그렇게 겨드랑이 림프절을 많이 제거하고 나면 정상적인 림프액 순환에 문제가 생겨서 수술 후에도 팔이 붓고 혈액 순환이 안되는 림프 부종이 생깁니다. 또 겨드랑이 림프절 제거 후 그곳에 방사선 치료를 더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치료적 면에서는 방사선치료가 도움이 되지만 부작용의 위험을 올리는 것도 사실입니..

조직검사에 대한 단상

새해 벽두부터 Impact factor가 높은 빅 저널 JAMA 와 종양학에서 손꼽히는 JCO 에 다소 논쟁적인 두 편의 논문이 실렸다. JAMA 1월호 에서는 2000년 human genome project 의 성공에 어 10년도 채 되지 않아 cancer genome project 시대가 열렸고, 이제 암 유전자를 sequencing 하는 시대에 암 조직을 다루는 방법이 얼마나 표준화되고, 잘 다루어져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한 단락의 소제목은 Frozen tissue: the jewel in the Crown for cancer genomics. 수술 중 혹은 조직 검사에서 얻는 조직을, 조직이 나오자마자 수초 안에 영하 70도로 얼려서 얻게 되는 신선 조직 (동결조직, fro..

고단한 엄마를 도와주세요

그녀는 십년도 더 전에 최초 유방암을 진단받았고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 전이성 유방암을 진단받았으며 그로부터도 이미 수년이 흘렀다. 항암제, 항호르몬제, 방사선치료, 이 치료 저 치료를 돌아가면서 했다. 치료하면 좋아지고, 또 시간이 지나가면 나빠지기를 반복. 암환자를 치료하는 과정에서 의사가 환자에게 적용하게 되는 대부분의 치료 방법을 시도해 본 것 같다. 그녀의 CT 사진을 보면 '헉' 깜짝 놀란다. 이렇게 여기 저기 병이 있다니, 몸이 괜찮나? 통증은 심하지 않으신가? 걸음은 제대로 걸으시나? 그러나 깔끔하게 화장하고 가발쓰고 단정하게 가꾸어 옷 입고 외래에 오신 모습을 보면 더 놀란다. 그 사진의 주인공이 바로 이 사람이란 말인가?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하다. 어디 불편한 곳 없으세요? 아이고, ..

정기 검사를 한다는 것

검사를 한다는 것 상피내암 (유방암 0기) 재발 거의 안함 (이론적으로는 안하게 되어 있으나 실재로는 재발을 함. 확률은 매우 낮음). 수술 후 5년째까지 6개월에 한번씩 검사. 0기지만 유방수술은 대부분 전절제술을 함. 0기인데 전절제술을 하니 환자들이 깜짝 놀람. 호르몬 수용체 양성이면 항호르몬제 5년간 복용. 0기에서는 HER2 양성이라도 허셉틴을 쓰지 않음 조기 유방암 병기(1,2,3기)와 유형(호르몬 양성, HER2 양성, 삼중음성) 에 따라 재발율과 예후가 다름. 경우에 따라 3개월, 대개는 6개월에 한번씩 검사, 5년 지나도 10년까지 1년에 한번씩 검사. 확률이 높지는 않지만 호르몬 양성 그룹은 10년 지나도 재발할 수 있음. 삼중음성그룹은 치료 후 2-3년이 지나면 거의 재발하지 안음. ..

연말연시 뜻깊은 메일과 문자

이메일이나 문자가 정성이 좀 부족한 듯 해도 전 이게 어디냐 싶어요. 손편지, 카드를 일일히 챙기지 못하는 저로서는 이렇게 한해의 마지막 날, 허겁지겁 불끄듯 메일과 문자로 인사를 전합니다. 초치기 새해인사에요. 제가 유명인사가 아니니 일괄적인 안부인사를 돌릴 건 없구요. 그냥 내 마음 가는데로 인사하면 됩니다. 아주 가까운 사람에게도, 소원해져서 좀 썰렁해진 사람에게도, 늘 보는 사람에게도, 본 지 한참 된 사람에게도, 불현듯 문자와 카톡과 메일을 보내봅니다. 오늘 종양내과 보험심사과 담당 선생님의 메일을 받았어요. 우린 매일 항암제 보험삭감 관련하여 매일 전화를 주고 받고 업무상 메일을 보내며 밀접하게 연결된 관계입니다. 오늘 제가 먼저 메일을 보냈지요. 한해 동안 감사했다고. 선생님 덕에 빵꾸 안내..

남자 환자라서 그랬을까요?

CT를 찍은 후 외과, 내과 의사가 보고 다 괜찮다고 했다. 그러나 장염 증상이 호전이 없다. 배가 아파서 소화기내과 교수 진료를 보려니 외래 예약이 밀려있다고 한다. 강사 일반 진료를 보았다. 갈 때마다 강사가 달라진다. 별 차도가 없어서 발걸음을 한의원으로 돌렸다. 한의원에 2달 정도 다니며 한약을 먹었다. 별 호전이 없다. 날로 증상이 악화되는 것 같다. 참다 참다 다시 우리병원에 오셨다. 그리고 재발이 진단되어 종양내과로 전과되었다. 3개월전 찍은 CT에서 큰 이상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정상은 아니었다. 그래서 3개월 간격으로 다시 사진을 찍었지만 큰 변화가 없어서 다시 6개월 간격으로 검사기간을 늘린 참이었다. 되돌이켜 보면 환자의 장염 증상은 재발을 시사하는 소견이었나보다. 한참을 고생하..

2013 토정비결

일요일 아침 뒹굴뒹굴 스마트폰에서 토정비결 앱을 다운받아 올해 운수를 보았습니다. 저 사실 토정비결 믿습니다. ㅎㅎ 2012년도 봤었어요. 진짜 않좋아서 깜짝 놀랐어요. 뭐 이런 사주가 다 있나. 7월에 좋다고 하더군요. 그때 빼면 다 별루 였어요. 한 해를 지나고 보니 7월에 제가 박사학위를 받았죠. 좋았어요. 그리고 그때 빼면 진짜 다 별루 였어요. 떨리는(!) 마음으로 올해 토정비결을 보는데 오호라 올해는 '아주 좋군요'. ㅎㅎ 토정비결은 총론과 각론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총론 태평한 잔치에서 군신이 함께 즐기니 그 모습이 아름답고 좋기가 그지 없는 형국입니다. 본래 업은 없으나 횡재를 만나 성공할 운세이니 귀인의 도움보다는 나의 노력이 클 것입니다. 차려진 음식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를 위해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