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12 17

마음의 짐, 마음의 빚 2 - 호스피스 완화의료팀

노력도 중요하지만핵심적인 결과로 증명하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그동안 함께 일하면서 지켜본 바에 의하면 우리 호스피스 팀은 세상 그 어느 일류 병원의 완화의료팀에 못지 않은 능력있는 일꾼들로 구성되어 있고환자에 대한 헌신과 봉사, 사랑으로 최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팀이라고 자부합니다. 환자 한명 한명을 내 가족보다 더 소중히 그리고 환자의 가족들까지 그 모두를 포함하여환자 임종의 순간 그리고 가족이 사별의 아픔을 이겨내고 견디는 그 순간까지여러분은 함께 하고 있습니다.이 세상에 태어난 그 누구도 고귀한 삶을 살다 가는 별입니다. 그 별들이 자기 빛과 향기를 잃지 않도록 여러분이 끝까지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도 언젠가 미래에 죽을 때 당신들의 손길을 기다리게 될 것 ..

마음의 짐 마음의 빚 1 - K 선생님께

K 선생님께 저에게 도움을 요청했는데 제가 그 요청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해서 미안해요. 제 마음의 짐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요. 사실 당신이 말한 것처럼 병원에서 일어나는 일을 일종의 ‘문화’라는 관점으로 바라보고 병원을 새롭게 ‘디자인’해보겠다는 설명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시스템과 제도가 아닌 문화라… 아직 완성형이 아닌 상태로 당신이 제작한 비디오 클립을 보고 어렴풋이 어떤 일을 하고 싶어하는지 짐작할 수는 있기는 했지만 말이죠. 의사가 된지 몇 년이 되었고 그 후로도 몇 년째 일하고 있지만 암 분야가 아닌 쪽으로 환자 혹은 환자 가족이 되어 다른 병원에 가면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특히 큰 병원은 아주 막막하죠. 내가 어느 창구부터 들러야 하..

최선을 다했지만...

최선을 다했지만... 2000년 의과대학에 편입했을 때 나는 나의 존재 조건 자체로 눈에 띄는 사람이었다.동기들보다 7-8년 나이가 많은 것, 이미 결혼도 하고 아이도 있는 아줌마 의대생이라는 것, 사회학을 공부하고 의대에 편입했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동질적인 속성의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는 의대생 사회에서 매우 이질적인 조건이었다. 강의실에서 수업만 들으면 되었던 의대생 시절보다는 인턴, 레지던트로 일하던 전공의 시절에 나를 규정하는 좀 더 강력한 ‘딱지’가 되었다. 나는 그 ‘딱지’를 떼어버리기 위해 아주 많이 노력해야 했다. 의대 입학 당시, 나는 대학원에서 사회과학을 공부하고 온 상태라 내 주위의 일상적인 것, 많은 것들을 분석적으로 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것에 익숙해 있었다. 사회과학에서는 그..

만보기를 손에 쥐어 주는 것 만으로도

Physical Activity우리 말로 번역하면 '신체 활동' 정도.그래도일반적으로는 '운동'이라고 지칭하는게 이해가 쉽다. 암을 예방하기 위해, 암으로 치료를 받았다면 다시는 재발되지 않게, 혹은 재발된 암이라도 고통없이 삶의 질을 유지한 채 일상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게 하는입증된 치료법이 있는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운동이다. 항암제 하나를 개발하여 그 약의 치료적 효과를 입증하고 표준 치료로 도입되기까지 소요되는 시간과 비용은 상상 이상이다.설령 효능을 입증했다 하더라도 기존 치료법의 효과를 미미하게 증가시키는 정도라, 과연 이정도 시간과 돈을 들여 이정도의 효과를 입증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연구인가 싶은 경우도 많다. 물론 과학의 발전이란 것이 그런 순간 순간의 노력이 집약되고 응축되어 어느 ..

빛이 나는 얼굴

아마도 나는 피곤에 찌든 얼굴을 하고 사나보다.외래를 보러 온 환자들이 진료가 끝나면 병원 내 커피집에 가서 커피를 사서 외래방에 넣어주고 간다.커피를 선물한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도 않고 가시는 경우도 많다. 아마도 내 몰골이 너무 피곤해 보이니 이거 마시고 정신 차리라는 뜻 혹은 졸지 말라고. 나이 사십이 넘으면 그 사람 인생이 얼굴에 반영된다고 했다.그래서 사십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있다.진실된 마음이 중요하지 외모가, 얼굴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들 하지만첫인상, 관상이라는 것도 중요하다.그 사람이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사는지, 어떤 철학으로 삶을 꾸려가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일상의 습속(habitus)들이 얼굴에, 외모에 반영되기 마련이다. 그래서내가 비록 멋드러진 화장술 ..

내가 할 수 있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책상 위에 성모상을 그녀에게 갖다 주었다. 그 성모상은 예전에 내가 치료하지도 않은 환자의 보호자에게 받은 선물이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지만 그것만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니니 신의 은총이 나에게 함께 하길 바란다는 기원을 적은 카드와 함께. 엄마가 점점 나빠지고 임종 준비를 해야 하는 어려운 시기, 그녀는 나에게 메일로 여러가지 문제를 상의했었다. 나는 본 적도 없는 환자에 대해 의학적인 부분을 코멘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미적지근한 대답. 안타깝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 같다고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라고 생각하고 엄마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하시라고. 그냥 좀 뜬구름 잡는 것 같은 별로 도움이 안되는 그런 메마른 위로의 말을 건넬 수 밖에 없었다. 내가 그런 답을..

이제 곧 결혼하는 그녀

힘들게 징징거리며 항암치료를 받다가 날 떠난 그들. '이제 잘 사세요. 다시는 날 만나는 일 없게요' 그렇게 빠이빠이 하면서 그들과 헤어졌었는데 요즘 유방암 클리닉의 운영체계를 일시적으로 조절하고 있는 중이라 2-3년전 그렇게 헤어졌던 환자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를 마친 그들에게 지난 2-3년의 시간은 어떤 의미로 채워져 있을까? 불현듯 그들을 만나고 나면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감동과 에너지를 느끼게 된다. 계속 만났으면 그런 생각이 안 들었을텐데 2년이라는 시간적 공백을 두고 만나니 새롭다. 치료 후 2년이라는 시간은 그들을 재발했느냐 아니냐를 두고 한번은 판가름 할 법한 시간이고, 재발하지 않았으면 정상 생활로 돌아가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이제 더 이상 환자라고 부를 수없이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