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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간 혹은 십분

내가 좋아하는 선배로부터 연락이 왔다.그와 뜻을 함께 하는 절친한 친구가얼마전 위암을 진단받았다며암환자를 보는 나에게 의견을 묻는다.그의 목소리에 눈물이 묻어난다. 나랑 동갑인데...검사를 하고 보니 수술할 수 없는 단계라고 했나봐.수술을 못하고 항암치료를 담당하는 종양내과 의사를 만났다는데의사를 만나고 온 친구가 항암치료보다는 자연요법으로 자기 몸을 다스리며 치료하겠다고 하는데어떻게 하는게 좋으냐... 정신과인 그에게 일일히 설명하는 것 보다환자랑 직접 통화를 하는게 낫겠다 싶어서내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직접 전화하시라고 했다. 저녁 무렵그분이 전화를 하셨다. 40대 후반인 그는자기 병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신다.이미 많은 정보를 찾아보셨고 알아보신 상태다. 많은 것을 알고 계신다.아주 객관적이고 차분한..

나의 진료실 태도 점수는?

나의 진료실 태도 점수는 몇 점이나 될까? 일부 병원 서비스 평가 기관에서는 진료하는 의사의 모습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어서의사의 진료시 태도를 평가를 해보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외부적인 평가나 점수 때문이 아니라의사 스스로 자기의 진료시 매너나 환자를 대하는 태도를 객관적으로 관찰 수 있게 해주려는 취지에서 시행되고 있는 것 같다.어떤 객관적인 평가도 제대로 된 정확한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겠지만 환자의 입장에서진료하는 의사의 태도, 말투, 제스처 등을 관찰하게 함으로써자신의 진료를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그 기준이 꼭 다 맞는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 평가에는 몇가지 기준이 있는데예를 들면환자가 말하고 있는데 중간에 의사가 환자의 말을 끊지는 않는지적절한 추임새를 하며 환자..

사랑스러운 닭살멘트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외래에서 웃음꽃이 피어나는 때가 있다.나는 그 순간이 매우 소중하고 기쁘다.그런 찰나의 기쁨이 일상의 무기력함과 슬픔, 분노를 컨트롤할 수 있게 해준다고 믿는다. 유방암 진단을 받고수술 전 항암치료를 하게 되어 내 외래를 처음 오신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나보다 나이가 두살 많은데 참 예쁘다.같은 여자지만 말도 곱게 하고 얼굴도 곱고 여러모로 참 예쁜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처음 유방암을 진단받고 잔뜩 긴장한 환자에게 집중하느라보통은 보호자에게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한 채 환자에게 촛점을 맞추게 된다.실컷 울고 들어와서 이미 눈시울이 붉어진 환자에게 많이 힘들지 않을 거라고, 치료 결과는 좋을 거라고, 씩씩하게 치료를 시작하자고 환자의 용기를 북돋아야 한다. 나의 온 에너지를 투..

회진 중에도 스마트폰

내 환자 중 입원을 하고 있는 환자들은대개 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난 웬만하면 입원을 잘 안 시킨다.잘 먹고 잘 이겨내 보시라고,최선을 다하는데도 잘 안되면 그 때 입원하시라고 한다.우리 환자들은 컨디션이 왠만하면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다 하기 때문에입원을 했다는 것 자체가 특별히 뭔가 좋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그래서 입원한 환자의 경우 심각한 가족 면담을 자주 하게 된다. 뇌, 안구, 폐, 뼈, 림프절로 15년만에 재발된 40대 초반의 여자 환자.두통이 있다가 눈이 아파서 안과를 갔다가 재발이 의심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최초로 찍은 흉부 엑스레이가 허옇다.공기가 통하면 까매야 하는 부분이 온통 허옇게 나왔다. 까만 부분이 거의 없다.나는 그녀의 사진을 리뷰하다가 깜짝 놀랐다. 아니, 어떻게 이런 폐..

휴가의 필요성

지난주 휴가였다.휴가기간을 이용해서 일주일간 학회를 다녀왔다.학회를 핑게삼아 공부도 하고 쉬기도 하고산에 가서 걷기도 하고 잘 놀다 왔다. 물론 그 휴가를 가기전 1주일과 다녀온 1주일은 난리였다.휴가 전주와 다음주로 환자 외래를 조정해야 했기 때문이다.덕분에 오전 외래든 오후 외래든 종일 외래든외래가 있는 월화수목 4일간매일 100명을 전후하여 환자를 봐야 했다.그 많은 환자들이 모두 외래에서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이다.무수한 항암제 처방, 설명, 교육...제 시간에 진료를 마치기 위해서는전날 의무기록도 다 써 놓고 왠만한 오더도 내 놓고 사진 리뷰도 다 해놔야 한다.그래도예상치 않은 환자들이 있기 마련.당일 접수도 몇 명씩 끼어 있기 마련.매일 신환이 7-10명 정도 있으니아무리 준비해도 외래시간은 ..

충격고백

최초 유방암은 2003년 11월. 유방암 3기초. 당시 수술을 하고 항암, 방사선치료를 마친 후 호르몬 치료를 시작하였다.기록에 의하면 환자는 재발 방지를 위해 5년을 먹어야 하는 호르몬제를 자의로 중단하여 1년을 채 먹지 않았다.기록을 보니환자는 병원에 제때 오지 않고불규칙적으로 검사를 하러 왔다가호르몬제를 먹어야 한다는 주치의 설명에 처방을 받아놓고약 자체를 구입하지 않거나사가지고 가서도 약을 먹지 않았다고 되어 있다. 그러던 중 2009년에 갈비뼈 한개에 유방암이 재발되었다. 비록 병이 재발된 것이기는 해도 갈비뼈 한개이니 수술을 하거나 방사선치료를 할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다시 완치를 노릴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때도 환자는 치료를 거부하고 약을 먹지 않다가 수개월이 지나 검사를 했더니 ..

최선의 노력이란...

수술 후 허셉틴 치료가 거의 끝나가는 그녀.원래 내 환자는 아니다.출산 휴가 중이신 선생님을 대신해서 당분간만 내가 진료하고 있다. 허셉틴 치료 자체는 별로 합병증이나 부작용이 없기 때문에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특별히 설명하거나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없어서별 대화없이 외래 진료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대개는 그 전에 받은 항암치료의 후유증 때문에 힘든 문제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잘 지내신다.치료 경력도 꽤 되시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 알아서 몸의 회복을 위해 애를 쓰기 때문에 의사에게 별로 기대하는 것 없이 알아서 잘 살아가신다. 그녀도 그랬다.그녀를 진료한 건 몇번 안되고지금 당장 내가 치료방침을 결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건성건성 허셉틴 처방하고 안부를 묻는 짧은 진료를 보곤 했다. 잘 지내시죠?요즘은 치료..

내가 먼저 울컥하여

그녀를 처음 만난 건VRE 병동. 자궁경부암 3기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마친지 몇개월 되지 않았는데척추염인지 척추전이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환자는 양 다리를 못 쓰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한 장염이 심한 건지, 복강 내 재발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소대변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니 장루 만드는 수술을 하여 그리로 대변이 나오게 하고소변이 나오지 않아 한쪽 바깥으로 요관을 거취하고, 안쪽으로는 스텐트를 삽입한 상태다.그것도 다 한번에 잘 되지 않아 몇번을 고생하면서 수술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성공했다.그 사이 신장 수치가 올라 콩팥기능이 정지하여 소변이 잘 안나오면서 신부전으로 갈 뻔 했다.뱃속이 좋지 않으니 복강 내 감염이 동반되어 항생제 뿐만 ..

칼슘 하나를 먹었을 뿐인데...

정기적으로 매일 하루 15분 이상 피부를 노출한 상태로 햇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하루 필요한 비타민 D 요구량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하지만 매일 그럴 여유가 없기 쉽상이고 매일같이 해가 쨍쨍 날씨가 좋은 것도 아니고 또 얼마나 피부를 노출해야 하는지도 잘 모르겠고 썬크림도 안바르고 햇빛을 쬐면 얼굴에 기미가 생길까봐 걱정이 되고 이래저래 실천이 어렵다. 핑계댈 일이 너무 많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움직이거나 생활습관을 조절하면서 건강행위를 실천하는 것보다는 뭔가를 먹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한다. 하루 한알 먹는 신비의 보조제가 이런 자질구래한 문제들을 다 해결해 주기를 바란다. 비타민 D는 장에서 칼슘을 흡수하는 대사과정에 작용하는 등 칼슘 대사에 관여한다. 뼈나 치아 등의 구성성분이 되는 칼슘은 주..

인정과 긍정적인 피드백

나보다 어린 그녀,언뜻 보면 애기같다. 얼굴도 귀엽고 체구도 작고.마음으로 그녀를 동생 취급하고 있었다.그녀에게 아이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몇살인지 몰랐다. 아주 어린 아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수술과 수술 후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가 다 끝나고 1년반이 지났다.오랫만에 만난 그녀.반갑다. 항암치료 할 때 탁소텔 맞으면서 엄청 힘들어 했다.몸이 너무 많이 부어서 거의 10kg 가까이 체중이 증가했었다.무기력감이 너무 심해서 항암치료 마지막 무렵에는 환자가 나한테 말도 잘 안할 정도였다. '내가 '너무 힘든데 치료 그만할까요?' 그러면 '지금까지 한게 어딘데 지금 포기하냐'며 끝까지 할거라고 강단을 보였다. 그렇게 힘들었던 치료가 끝나고 정기검사를 하러 외래에 왔다.충청도에 사는 그녀는 손수 차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