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내가 먼저 울컥하여

슬기엄마 2013. 7. 23. 20:57


그녀를 처음 만난 건

VRE 병동.


자궁경부암 3기로 항암치료와 방사선치료를 마친지 몇개월 되지 않았는데

척추염인지 척추전이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는 양 다리를 못 쓰고 꼼짝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상태였다.



방사선 치료의 후유증으로 인한 장염이 심한 건지, 복강 내 재발인지도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소대변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으니 

장루 만드는 수술을 하여 그리로 대변이 나오게 하고

소변이 나오지 않아 한쪽 바깥으로 요관을 거취하고, 안쪽으로는 스텐트를 삽입한 상태다.

그것도 다 한번에 잘 되지 않아 몇번을 고생하면서 수술방을 왔다갔다 하면서 겨우 성공했다.

그 사이 신장 수치가 올라 콩팥기능이 정지하여 소변이 잘 안나오면서 신부전으로 갈 뻔 했다.

뱃속이 좋지 않으니 복강 내 감염이 동반되어 항생제 뿐만 아니라 항진균제도 쓰고 있다.

염증이 심하니 이차적으로 폐에도 물이 차서 관을 넣었다.


온 몸에 여러 개의 관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고

환자는 누워만 있으니 장마비가 해결될 길이 없다.

서너달 그런 생활이 이어지고 있으니 

몸은 부어있지만 정작 다리 근육은 깡말랐다. 피부 각질이 더덕더덕 붙어있다. 

엉덩이에는 욕창이 생겼다.


나로서 가장 큰 문제는 척추 병변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이에 대한 치료방침을 정하는 문제였다.

척추염이라 해도 항생제를 장기간 써야 하는 상황,

척추전이라면 방사선치료를 위해 환자 포지션을 바꾸는 것조차 어려운 열악한 상황이다.

그야말로 진퇴양난. 

솔직히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겠고 마음 속으로 그냥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들었다.


환자의 내과적 문제가 너무 심각하여 

원래 진료를 하던 산부인과보다는 내과에서 진료하는 것이 여러모로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전과를 받기는 했지만 솔직히 막막했다. 나는 그녀와 아무런 Rapport 도 없는데, 가장 힘든 시기에, 내가 그 문제를 풀어야 하는 주체가 된 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환자 파악을 한 후 무거운 마음으로 VRE 병동에 가서 그녀를 만났다.

나를 처음 만난 그녀는 주치의 변경에 대해 별로 내켜하지 않았다. 

퉁명스러운 그녀와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마치 그녀를 치료하게 해달라고 매달리는 형국이 되는것 같아

뭔가 말할 수 없는 그녀의 파워에 내가 눌린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작은 것부터 치료 목표를 정하였다. 


관이 너무 많으니 일주일에 관을 하나씩 제거하는 것을 목표로,

식사량이 너무 적으니 음식 섭취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콩팥 수치가 높으니 꼭 필요한 약이 아니면 약 처방을 간단히 하는 것을 목표로, 

척추 문제는 일단 척추염을 시사하는 소견이 우세한 것으로 판단하고 일단 항생제 치료에 집중하기로,

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니 근육위축을 막는 것에서 시작하여 몸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일 수 있도록 재활치료를 받는 것으로, 

이런 식으로 간단한 것부터 목표를 설정하여 치료를 해 보기로 하였다.



그리고 궁극적인 목표는

퇴원이었다.

완전히 좋아지지 않아도

퇴원해 보는 것.

그것이 치료의 목적이었다.

암 재발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재발이 확진된 것도 아닌 애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건 일단 지금의 상황을 일단락시킨 후에 다시 재고해보기로 하였다. 



당시 내 파트 전공의들의 고생이 많았다. 

환자를 위한 진료는

특별한 의학 지식을 요구한다기보다는

투절한 사명감-서비스정신이라고 말한다면 좀 폄하되는 느낌이 들기는 하지만, 정말 이 환자 한명을 위한 맞춤치료, 맞춤 서비스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으로 환자를 위한 최선의 지지요법을 개발하고 실행하는 일이었다. 



(당시 나랑 함께 일하던 두세명의 전공의가 텀 체인지를 하며 이 환자를 거쳐갔는데 나중에 환자가 말하기를 다들 너무 잘 해주어서 눈물나게 고맙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입원환자에 대한 최선의 진료를 전공의 손에서 결정되는것 같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가 집안에서 생활할 수 있게 집 구조를 수리하는 일부터 준비시켰다. 

환자는 직계가족이 없는 외로운 사람이었다.

친척들을 불러 도움을 요청할 수 밖에 없었다. 

환자는 5-6개월의 입원 생활을 마치고 구급차의 들것에 실려 겨우 집으로 퇴원하였다.

주렁주렁 주사를 매달고 가지 않게 하려고 애를 많이 써야 했다.



그렇게 보낸 환자가 

휠체어를 타고 다음 외래에 내원하였다.

하지 근력이 너무 약하여 재활치료를 적극적으로 받게 하고 싶었는데 VRE가 해지되지 않아 재활치료를 체계적으로 받기 어려웠다. 



몸 상태를 확인해야 하니 외래에서 자주 진료를 보면 좋겠는데

자주 오라고 하기에는 너무 번거로웠다.

척추염 치료를 담당하는 감염내과 외래를 중심으로 하여

환자는 5-6개 과 외래를 하루에 보고 귀가해야 했다.

스케줄 어레인지 하는 것도 장난이 아니었다. 



그런데 왠지 환자가 매번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는 것 같았다.



항생제 치료를 6개월간 하고 드디어 염증수치가 정상이 되었다. 

감염내과 입장에서는 치료 목표 달성!

 

그런데 엊그제 찍은 뼈스캔 사진을 보니 척추 병변이 조금 넓어지는 양상이다. 

이런....

EMR을 통해 파악해 본 지금 그녀의 모습은 여전히 답답하다. 




오늘 외래에서 그녀를 만났다.

나는 처음에 걸어들어오는 그녀를 몰라봤다.

그녀는 이제 휠체어를 던져 버리고 당당하게 두발로 걸어 외래 진료를 보러왔다. 

근사한 씨쓰루 여름옷을 입고 

여름 인데도 밖으로 낸 요관을 교묘히 감추고 장루도 잘 숨겼다.

예쁘게 화장도 하고

머리도 다듬었다.



이게 누구신가요?


그녀는 내 말이 무슨 의미인지 다 안다. 


다시 한번 좀 걸어보세요. 


별로 흐뜨러지지 않는 자세로, 등을 곧추 세우고 잘 걷는다.



나도 모르게 진료실 방안을 왔다갔다 걷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정말 대단한 그녀. 

저절로 눈시울이 붉어진다. 

지난 수개월의 시간이 그녀에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료 중인데 한참동안 말문을 열 수 없었다.



나는 척추병변은 재발이 아닌 것 같다고 그녀에게 말했지만

그녀는 내심 불안하고 두려웠었나 보다.

여러 의사들이 내놓는 다양한 의견들에 혼란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그녀는 꿋꿋하게 잘 견디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재활치료는 필요없을 것 같다.

설령 재발이 되어도

씩씩하게 잘 치료받을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멋지다.

그녀의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낸다.



오늘 그녀를 보니 이런게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