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처음으로 MRI를 찍어 보았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를 대상으로 한 1차 치료약제인 탁솔과
탁솔의 구조와 성질은 유사하지만 부작용을 줄이는 것을 목적으로 개발된 새로운 NK105 라는 약의 효과를 비교하는 3상 임상연구가 있는데
그 연구에 등록이 되면 뇌 MRI를 의무적으로 찍어야 한다.
전이성 유방암 환자들은 비록 4기라 하더라도 오래 사는 환자가 많다.
생존 기간이 길다보니
다른 암에 비해 상대적으로 뇌전이가 되는 환자들 비율이 많은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이 연구는 아예 처음부터 뇌 MRI를 찍어
뇌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를 시작하게 되어 있는 프로토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연구를 진행하는 일본 본사에 우리 병원에서 찍은 뇌 MRI 를 보내서
퀄리티를 평가받아야 하는 단계가 있는데
예전에 한번 했었다가
최근 MRI 기계가 바뀌는 바람에 다시 평가 영상을 보내야 했고
정상 뇌 MRI 샘플을 찍어서 보내야
아 임상연구를 계속 진행할 수 있었다.
시간은 촉박한데 적당한 후보를 찾지 못해서
급한대로 내가 찍게 되었다.
12시 40분에 시작한 외래가 6시 10분에 끝났다.
6시 15분 촬영 예약 시간에 겨우 맞춰서 검사실에 도착했다.
나는 동의서를 작성하고 손등에 조영제용 혈관을 찾아 주사맞을 준비를 했다.
바지에 금속지퍼가 달려 있으니 옷도 병원복으로 다 갈아입었다.
MRI 통은 생각보다 좁았다.
땅땅땅 자기장 소리가 크다며 미리 귀마개를 하고
머리를 고정하는 틀에 솜베개같은 것을 끼워서 내 머리를 고정하였고 소리를 차단하였다.
자세를 잡고 누우니 머리위로 고정틀을 씌운다.
감옥에 나를 가두는 기분이 든다. 그 상태로 MRI 통속으로 들어갔다.
폐쇄 공포증이 생길만 하다.
조금만 긴장하면 내 박동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20분 동안 여러 음색의 땅땅땅 자기장 소리에 귀가 멍멍하다.
조영제가 들어가니 온 몸이 순식간에 이상한 기분이 든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촬영을 하고 나니 몸이 굳어져서 잘 일어나지지가 않는다.
혈관을 잡은 오른손은 마비가 온것 같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잠을 잤다. 큰 소리지만 규칙적으로 들리니 잠을 잘 수도 있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돌아와 PACS에 영상이 뜨기를 기다려 사진을 열어본다.
혹시 무슨 이상이 발견되면 어쩌지?
얼추 보기엔 별 이상이 없어보인다.
다행이다.
특별한 이상이 없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하면서도
검사를 하는 과정,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은
떨리고 초조하다.
거동이 너무 힘들거나 교통 상황이 좋지 않은 먼 곳에 사는 환자가 아니면
대개의 환자들은
항암치료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한 CT를
외래보기 1주일 전에 미리 찍고 간다.
한번이라도 번거러운 걸음 안하게 할려고 당일 사진을 찍고 외래를 볼려고 시도해 본 적이 있었는데
그날 찍은 사진을 당일 영상의학과의 공식 판독을 받기가 어려운 경우가 많고
그렇게 판독을 못 받으면 내가 책임지고 사진을 봐야 하는데
진료시간 내에 사진을 닥쳐서 보다보니
시간도 많이 걸리고
고민할 시간도 부족하고
몇몇 자신이 없는 케이스들이 쌓이면서
부가적인 일들이 너무 많아져서
형편이 되는 환자들은 미리 찍고 가시게 하고 있다.
그렇게 사진을 찍고 간 환자들은
결과를 기다리는 1주일이 너무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한다.
또 병도 그렇고 항암치료도 힘드니
MRI나 PET 같이 촬영시간이 오래 걸리는 검사를 하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
조영제 부작용이라도 생기면
다시는 그 검사를 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게 고생하는 자신이 처량하고 더 힘들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실재 힘들기도 하고.
당일검사 당일결과를 실현하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영상의학과 의사가 필요하다.
인건비 대비 검사비로 효율을 따지면
그런 것은 지금의 저수가 정책이 유지되는 선에서는 불가능하다.
또 환자를 위한 Total Quality Care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당일 결과를 판독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너무나 많다.
일단 해결이 어려워 보인다.
다른 걸로 환자들의 마음을 보살펴 드리는 수 밖에 없겠다.
MRI 한번 찍었을 뿐인데
너무 피곤하고 힘들다.
아무 의욕이 없다.
그런 몸을 이끌고
이 비를 뚫고 병원에 온 환자들에게
나는 얼마나 가치있는 진료를 실천했는지 생각해 본다.
오늘도 나는 한번 욱 했다.
예전에 한번 왔던 보호자가 오랫만에 환자를 모시고 왔는데
자꾸 보호자가 바뀌면서
올 때마다
병이 낫지 않고 통증이 해결되지 않는 환자의 상태에 대해 오랜 시간 하소연을 한다.
보호자가 바뀌니 난 어쩔 수 없이 그 때마다 비슷한 설명을 하지만
그들은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눈치다.
왜
무슨 검사만 하고 나면
무슨 시술만 하고 나면
환자 상태가 나빠지냐고 성화다.
결국 환자인 할머니 앞에서 언성이 높아진다.
정작 할머니를 돌보는데 시간을 많이 할애하지 못한다.
할머니가 들으면 별로 기분좋지 않을 이야기도 오가게 된다.
할머니에게 너무 미안하다.
한참을 실갱이를 벌이다가 나는 안면몰수하고 할머니하고만 얘기했다.
약을 조절하고 2주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나랑 한참 실갱이를 벌이고 내 속을 뒤집어 놓은 큰 아들이 나가면서 한 마디 한다.
나 같은 보호자 만나서 고생하시네요.
그래서 얼굴이 그 모양이군요.
보호자도 미안했는 모양이다.
좋아지지 않는 어머니를 보면서
애타는 가족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면서도
순간 욱 했다.
그래도 참자.
힘든 건 환자니까.
검사를 최소화하고
내가 가진 촉을 잘 세워서
환자 힘들지 않게 치료하는 의사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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