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사회생활 중 맺는 인간관계에 대해

슬기엄마 2013. 7. 6. 08:06


가족은 일차집단

직장은 이차집단

가족은 웬수같아도 궁극적으로 내편이 되어주고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많은 일을 같이 하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 내 편이 되기 어렵다. 무관심하면 다행, 헤꼬지 안하면 다행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알고 지내는 사람은 눈덩이처럼 불어나지만 (역 피라미드처럼)

정작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혹은 진심으로 마음을 주고 싶은 사람은 점점 드물어진다 (피라미드 꼭대기처럼)


매달 마지막주 수요일 저녁에는

항암요법연구회 유방암 분과 모임이라는게 있다.

각 병원에서 유방암 진료를 담당하시는 선생님들이 모이는 자리이며, 

병원간, 병원별로 진행되는 공동의 임상연구에 대해, 유방암 진료와 관련한 현안 등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이다. 일종의 정규적인 '회의'인 셈이다.

그 회의에 오시는 대부분의 선생님과는 개인적으로 잘 아는 관계가 아니고 나의 일상을 공유하지 않으며 그 선생님들의 백그라운드에 대해서도 거의 모른다. 회의가서 가볍게 목례를 하고 공식적인 대화를 나누는 관계 정도이다. 


그런데

이들 선생님을 만나면

유방암 환자를 진료하기 때문에 통하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

다른 암과는 달리

환자들이 젊고 

전이 후에도 오래 살며

항암제 반응이 좋아 다른 암과는 비교가 안될만큼 오랫동안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거

그러므로 환자 상태가 나빠도 쉽게 포기할 수 없다는 거

징하게 최선을 다하면 죽을 것 같던 환자가 종종 걸어서 퇴원하기도 한다는 거

유방암 자체의 생물학적 속성에 따라 임상적인 양상이 다양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는 거

그런 매일의 경험, 오래 살고 오래 고생하는 환자들을 보며 의사로서 느끼는 안타까운 마음을 공유하게 된다. 

그리고 환자수가 많으니 국가는 웬만한 항암요법을 신청해도 보험인정을 잘 안해준다. 환자수가 많으니 보험인정을 해주면 국가부담이 늘어나기 때문에 그렇다. 심평원이나 제약회사의 접촉을 통해 환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는 뭔가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공유한다.


그래서 어쩌면 같은 병원에서 늘상 뵙게 되는 과 내 선생님들보다

유방암 분과모임에서 만나는 선생님들에게 심리적인 동질감을 많이 느끼게 된다.

나는 비록 유방암 진료의 경험도 짧고 아는 것도 없으며 선생님들도 개인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모임에 가면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회의를 관람하는 편에 속하지만 그래도 한달에 한번 그 모임에 나가서 눈치로 알게 되는 것, 귀동냥이라도 줏어듣는 것들이 새롭고 배우는 것이 많다. 


그런데

우리 분과 선생님 중 한분이

최근에 항암치료를 시작하셨다.

재발.

그 모임에서 나랑 가장 친한 선생님인데 

지금 두번째 주기를 지나고 있다. 


모임에서 함께 카드를 썼다. 

후원금도 성의껏 냈다.

어떤 선생님은 예쁜 서양란 화분을 보내시기도 했다.

분과장님과 일부 선생님들은 항암치료 독성이 없는 기간을 이용해 저녁식사를 같이 하시기도 했다.

나보다 훨씬 바쁘신 분들이다. 매일 환자 진료에 매일밤 회의에 정말 바쁘신 분들인데도 치료 중인 선생님 댁 근처로 약속을 잡아 저녁식사를 하셨다. 다정하게 함께 사진을 찍어서 선생님 소식과 함께 메일로 회람을 해 주셨다. 

한사코 거절하는 선생님께   

힘을 내서 잘 이겨내고

선생님들이 주신 사랑을 다시 전파할 기회를 하느님께서 돌려주실 것이라며 

후원금을 전달하신것 같다. 

아마도 선생님은 부담스러우시기도 했겠지만 또한 기뻤을 것 같다. 


일로 만난 사람들

개인사를 공유하기 어려운 사람들

바쁜 일상을 쪼개

항암치료 중인 선생님께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이건 단지 형식적으로, 일로, 

사람관계가 맺어진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수년간 매달 회의를 하지만 술자리 회식은 딱 한번뿐인 - 연수를 가시는 선생님을 환송하는 자리 - 

그런 관계였지만

환자를 보며 고민하는 마음을 나누어 왔던 관계였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많은 것을 공유하는 친구는 아니어도 

정서적인 동질감을 느끼게 되는 관계이다.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돈과 권력과 각종 이해관계로 상처받기 쉬운 사회생활 중에

인간적으로 따뜻한 마음이 소통되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은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나도 오늘 치료중인 선생님께 격려의 메시지를 보내본다. 

마음을 담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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