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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로를 고민하는 레지던트와 이야기를 나누며

똑부러진 3년차 레지던트말없이 별 내색없이 묵묵히 똑똑하게 일 잘 한다. 상의할 일이 있어서 오늘 그와 이야기를 나누다가이제 3년차인데 내과 중 어떤 파트를 하고 싶냐고 물어보았다.내분비나 종양학과에 관심이 있다고 했다. 그의 고민의 궤적을 들어본다. 자기가 좋아하는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같이 지원하는 동기들의 숫자먼저 그 파트를 선택한 선배들의 진로과 분위기와 교수님들 그런 상황적인 요인들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다. 그런 요인들을 고려한다고 해서 요령쟁이, 잔머리 굴리기 그렇게 비난할 수 없다. 실재 여자 레지던트들이 밀리는 파트도 있고최근 몇년간 취업 성적이 별로 좋지 않은 파트도 있다.대학에 남거나 개업을 하는 것이 모두 가능한 과도 있지만 감염내과나 종양내과처럼 개업을 할 수 없는..

대상 포진 예방접종

대상포진 예방접종을 문의하시는 분들이 많아서 설명드릴려구요 대상포진은 우리 몸에 있는 바이러스 (varicella zoster visus) 가 면역력이 떨어진 틈을 타 기승을 부리며 찾아오는 병입니다. 대개 60세 이상, 나이가 들수록 발생율이 높아집니다. 어렸을 때 수두(비슷한 계열의 바이러스로 어렸을 때 걸리는 병이죠) 를 앓았어도 또 다시 찾아올 수 있습니다. 수두는 물집이 생기면서 가려움증이 동반되고 신체 어디서나 생길 수 있는 것에 비해대상포진은 신경이 분포하는 자리를 따라서 통증과 함께 동반되는 경우가 흔합니다.예를 들면 몸통 한쪽, 얼굴 한쪽에서 어떤 신경이 분포하는 자리를 따라 통증이 시작되다 보니 처음에는 피부에는 아무 이상이 없고 그저 몸살이 난 줄 알고 파스를 붙이고 진통제를 먹어보지..

자원 봉사를 시작하는 슬기에게

고등학생이 된 슬기. 요즘은 대학가는 방법이 너무나 다양해서요령있게 입시 전략을 짜는 일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나는 사실 그런 걸 잘 모르고 특별히 나만의 대안도 없고 솔직히 그냥 내버려 두고 있는 편이다.오히려 우리 엄마만 안달이다. 슬기 말에 의하면 사람들이 요령이 있다고 말하지만 자기가 보기에 그게 다 그거라고 한다.그냥 하던대로 하면 된다고 한다.중요과목 열심히 하고평소에 국영수 하고슬기는 아직 문과갈지 이과갈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그걸 결정하는게 제일 중요하다고 했다. 예전에는 소위 스펙을 쌓기 위해 토익, 토플을 보던 시절도 있었는데 이제 그런 건 소용이 없다고 한다. 자원봉사 점수도 스펙 중의 하나로 이용된다.그래서 아주 어이없는 프로그램들이 자원봉사로 둔갑하여대충 시간을 때운 후 자원..

콧물이 뚝 - 없어보이는 선생님

난 알러지가 매우 심한데그 원인이 되는 물질이 매우 다양하다.초등학교 때 알러지 항원 검사를 해 봤는데집먼지 진드기가 가장 강하고계절에 따라 -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시즌이 심한데 - 어떤 나무들에 강한 반응을 보였다.그 때는 달걀, 밀가루에도 알러젠이 있어서 면역 치료를 4년간 받았다.천식 때문에 15년 이상 고생한 것 같다. 1년에 한달 이상 결석을 했다.그땐 의료보험이 안되서 병원비가 아주 비쌌는데 엄마는 당시 내 키보다 더 많은 돈을 병원비로 썼다고 하셨다. 천식에 좋다고 하여 고양이 뇌도 먹었던 기억이 난다. 스무살이 넘어 그 많던 증상 중에 천식이 저절로 좋아졌다.원래 그렇다. Allergy March라고 한다. 60이 넘으면 다시 찾아올 가능성이 높다. 서른 살 넘어서 눈물 콧물 증상이 ..

치질의 고통

58세 유방암 환자.수술 후 항암치료를 하고 있다.8번 항암치료가 예정되어 있는데 항암치료 3번 받고 문제가 생겼다.바로 치질. 평소에 자기한테 치질이 있는지 잘 모르고 지냈던 분들도 있고몸이 힘들 때면 가끔 치질이 나오기는 했지만 좀 쉬면 바로 들어가서 별 문제가 없던 분들이 항암치료 중 치질 때문에 고생하는 분들이 은근히 많다. 우리가 대변을 보기 위해서는 적절한 복압을 이용하여 연관된 여러 근육들의 조화로운 운동을 조절하는 다이나믹(!)한 과정이 진행되는데여러 원인으로 인해 장 점막 하 조직이 압박되면 주위 혈관들이 충혈되고, 항문주위 조직이 변성됨에 따라 항문관 주위 조직의 탄력도가 감소되면서 항문 주변에서 점막들이 덩어리를 이루다가 밑으로 내려와 항문 바깥으로 나오는 것을 치질이라고 부른다.치질..

ICU에서 죽음을 앞둔 환자의 가족과 대화하는 전략 및 브로셔

'중환자실에서의 완화의료 (Palliative care in ICU)' 라는 주제로 강의 준비를 하고 있다. 중환자실에 입실하는 여러 유형의 환자들예를 들면 수술 후, 사고, 급성질환, 만성질환이 악화된 경우, 소아환자, 그리고 암환자 중에내가 강의를 준비하는 부분은 암환자.그 중에서도 완치 목적으로 수술을 하기 전 후의 조기 암환자들이 아니라 4기 암환자들의 중환자실 치료에 관한 내용이다. 중환자실은 unlimited treatment 가 제공되는 공간이다.환자가 중환자실에 입실했다는 것은 환자의 상태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기관삽관, 심폐소생술, 혈액투석, 갖가지 피검사와 수혈 등을 적극적으로 시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관삽관을 하고도 폐기능이 좋지 않으면 환자를 뒤집었다 뉘었다가를 반복하기도, ..

질문을 해 봐도 이해할 수 없는...

30대 중반두 아들의 엄마인 그녀는 큰 벌이는 아니지만 몇 년간 작은 회사에서 사무직으로 일해 왔다.건강하다고 자부하였다. 생리 기간이 되면 가끔 유방통이 있었다.증상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그러던 중 우연히 뭔가 만져 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고 애매하던 차에직장 건강검진을 하였다.오른쪽 유방에 뭔가 보여서 조직검사를 했다. 유방암.크기도 작고 의사도 별로 심각하게 설명하지 않았다.크기가 작지만 유두 근처에 있으니 전절제술을 하고 재건술을 동시에 해보는 것이 좋겠다고 설명하였다.그녀는 종양 크기가 별로 크지 않은데 전절제술을 해야 한다는 사실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의사의 설명에 따랐다. 수술하기 전에 각종 검사를 다했는데 유방에서 발견되었던 혹 그거 한개 말고는 이상한 게 없었다. ..

나만의 VIP - 3

환자를 보다 보면왠지 그냥 정이 가고안쓰럽고 어떻게든 챙겨주고 싶은 나만의 VIP 환자가 생긴다. 그렇지만 내가 그렇게 챙겼던 VIP 환자들은 결국 다 돌아가셨다... 아무리 내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지만병은 뜻대로 되지 않았고환자 임종의 순간을 맞이하면 속상하고 허탈한건 마찬가지였다.그러나 내 VIP 환자의 가족들은 환자의 죽음을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그들은 가족으로서 최선을 다했고환자의 예후에 대해 담당의사와 충분히 커뮤니케이션했고사람의 힘으로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에준비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가신 분들은 다들 연세가 꽤 있으셔서 환자 본인도 당신 죽음에 대해서도 예상하고 계셨고 가족들의 헌신적인 사랑과 지지를 받으셨던 분들이었다.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

충격 고백 이후

뼈전이 이후 4년이 넘도록 의사가 처방한 호르몬약을 먹지 않고 지냈다며 충격 고백 (2013.7.27 블로그에 올린 글) 을 했던 그녀가 일주일이 지나 다시 외래에 왔다. 그녀의 충격 고백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떤 치료를 할지 고민해야 했다.보험으로 다시 페마라를 처방하는게 가능한지 알아보았다.대답은 안된다는 것.나도 내심 원리상으로 안될 거라고 생각했다. 환자가 비보험으로 비용을 다 지불하고 약을 처방받겠다고 해도 그것은 '임의 비급여'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고 했다. 임의 비급여는 절대 처방하지 말라고 했다. 이건 안타까운 일이다.페마라 한달에 이십만원이 채 안되는데 환자가 지불할 능력과 의향이 있으면 이 환자에서는 페마라를 쓰는게 좋은데... 어쩔 수 없지. 뭐. 나는 이렇게 어이없는 사태를 초래한 데..

스마일 어게인

수술을 받고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 나를 만나는 환자들혹은 항암치료를 먼저 하고 수술을 하는게 나을 것 같다는 외과선생님 말씀을 듣고 '수술도 못할 정도로 나빠졌나' 싶어 낙담한 채 나를 만나는 환자들 나는 매일 그렇게 두려움 가득한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는 유방암 환자들을 만난다. 무슨 말로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지지할 수 있을까?무엇으로 그들의 불안을 달래줄 수 있을까? 난생 처음 암을 진단받은 사람은 그 누구도 흔연스러울 수 없다.90이 넘어 폐암을 진단받으신 나의 외할머니.70이 넘어서까지 당신이 손수 장부 정리하고 당신이 직접 뛰어 다니며 어음과 부도를 막으며 사업을 하셨던우리 가족의 최고 대장부 외할머니도 큰아들을 먼저 보내고 난 후 내가 죽어야 하는데 죽어야 하는데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