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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현 9. 4기 유방암의 항암치료에 대하여

4기는 말기가 아니다 4기 암은 완치가 어렵다. 그러나 모든 4기 암이 말기암이 아니다. 말기 암환자라는 말은 현대의학의 시각에서 볼 때 암에 대한 치료적 관점으로 더 이상 뭔가를 시도해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때, 그래서 독한 항암치료를 해서라도 생명연장을 시도해보려는 노력이 오히려 환자에게 해가 될 수 있다고 판단될 때 4기가 아닌 말기 암환자라고 일컫게 된다. 말기암 환자라고 해서 모든 치료를 포기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암을 치료하기 위한 들이는 노력은 이득보다 손실이 많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항암제를 쓰지 않는다는 것이지, 환자에게 발생하는 불편하고 힘든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한 노력, 각종 시술과 수술을 통해서라도 환자가 고통없이 남은 여생을 보낼 수 있게 도와주는 치료를 해야 하며 이러..

수현 8. 몸과 마음이 지친 당신께 임상연구를 설명할 때

얼마 전, 암 수술과 항암치료 및 방사선치료를 모두 마친 경희에게 전화가 왔다. 이제 치료가 끝난 줄 알았는데, 특정 항암제를 추가 복용하는 것이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되는지를 보고자 하는 임상연구가 있다는 말을 교수님께 들었다는 것이다. 그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게 좋은지, 임상연구에서 제시하는 약제가 과연 재발 방지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지 나의 의견을 묻고 있었다. 그 자신도 내과의사이거니와 담당 교수님으로부터 이미 설명을 다 들었을 텐데, 그 교수님보다 경험도 짧고 실력도 없는 나에게 굳이 전화를 해서 묻는 것은 아마도 다급한 마음, 누가 되었건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고 싶은 환자로서의 마음이 더 컸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도 전공의로 일하면서 각종 임상연구에 참여하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설명도 해 봤고..

수현 7. 방사선 치료

수술효과를 공고히 수술 후 눈에 보이지 않는 암세포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있거나, 수술이 잘 되었어도 원발 유방암 자체가 재발의 가능성이 높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경우 국소 재발의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방사선치료를 시행하게 된다. 수술을 하게 되면 유방의 병변도 제거하지만 의심되는 림프절도 함께 제거하게 되는데, 이때 4개 이상의 림프절에서 종양세포가 관찰되었을 때, 혹은 원발 종양의 크기가 5cm이상일 때 유방과 주변 근육까지 모두 제거하는 전절제술을 하지 않고 부분절제술을 했을 때에는 방사선 치료를 병행하는 것이 국소 재발율을 낮출 수 있다고 보고되어, 방사선 치료의 기준이 되는지 여부를 판정하여 시행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조건에 해당하지 않는 낮은 병기의 환자들은 방사선치료 없이 수술 후 항암치료나..

수현 6. 항암치료 3. 유방암 항암치료에 사용되는 항암제의 부작용과 대처방안

유방암 치료에 쓰이는 항암제 중 가장 중요한 약제를 두가지 들라면 독소루비신(혹은 아드리아마시이신)과 탁소텔(혹은 탁솔)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약제가 아무리 힘들고 부작용이 큰 약이라 하더라도, 또 아무리 신약이 많아 나왔다 하더라도 이들 두가지 약제가 유방암 치료에 기여한 바는 실로 놀랍다. 그러므로 지금으로서는 이들 약제로 내가 잘 치료될 수 있음에 감사한 마음을 갖고 누구에게나 힘들게 찾아오는 부작용을 잘 공부해서, 부작용이 찾아오더라도 좌절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부작용은 이 시기를 넘기면 거의 다 회복될 수 있는 것들이다. 독소루비신 (아드리아마이신, 에피루비신) 탈모 흔히 빨간 약으로 알고 있는 독소루비신(혹은 아드리아마이신, 에피루비신)을 투여하면 100% 탈모가 된다. 100%. 약제가 ..

수현 5. 항암치료 2. 열나면 병원에 오세요

열나면 병원에 오세요 보통 열이 난다는 건 우리 몸에 뭔가 이상이 생겨서, 자기 면역체계를 가동하여 그 이상을 해결하려고 싸우는 과정에서 생기는 부산물이다. 무슨 균이 들어오면 내 몸의 백혈구가 그 균들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열이 날 수 있다. 그러므로 열이 나면 어디서 기원했는지, 열의 원인을 찾는게 우선이다. 일단 백혈구가 자기 힘으로 싸우고 있는 셈이니, 열이 나게 만드는 원발 병소를 찾아 항생제등의 치료를 더함으로써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겠다. 항암치료를 처음 받는 환자에게 의사들이 가장 중요하게, 꼭 당부하는 말은 ‘열나면 지체말고 응급실로 오시라’는 것이다. 항암치료를 하는 중간에 열이 나면 바로 그 시기가 내 몸의 면역기능이 최소화되고 백혈구가 거의 없어 외부의 균과 싸울 군사가 거의 없는 ..

수현 4. 항암치료 1. 삶의 주기를 재조정할 것

삶의 주기를 재조정할 것 항암제는 내 몸의 세포를 죽이는 강력하고도 무서운 약이다. 요즘 나오는 표적치료제들은 치료 기전이 조금 달라서, 정상 세포는 죽이지 않고 암세포만 골라 죽이거나 혹은 암세포가 더 증식하지 않도록 억제시키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에 차이가 있지만, 전통적인 항암제들는 암세포 뿐만 아니라 정상 세포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국 나를 지켜주는 면역세포까지도 손상을 받게 된다. 그러므로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은 항암치료의 주기를 잘 알고, 그 시기에 맞게 자기 삶의 주기도 변화시키고 적응하여 지내는 센스가 필요하다. 항암제와 골수기능의 감소 대개의 항암제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골수기능을 억제한다. 골수는 말 그래도 뼈 속에서 피를 만드는 공장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수현 3. 유방암 수술

암을 진단하고 나면 수술 가능성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일부 암에서 수술없이 항암치료만으로, 혹은 방사선치료만으로 완치를 노려볼 수 있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유방암도 대개의 암처럼 수술을 할 수 있어야 완치를 기대해 볼 수 있다. 수술을 하지 못할 경우 단기간의 집중치료로 병을 뿌리뽑겠다는 생각을 하면 기대감에 실망이 더 큰 법, 이때는 환자에게 희망과 지나치게 긍정적인 말을 하는 것도 조심스럽다. 유방암 수술은 전절제술과 부분절제술이 있는데, 수술을 하면서 유방을 지지하는 근육을 어디까지 제거할 것인지에 따라 수술 범위에 차이가 난다. 암 자체만을 생각하면 재발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가능한 주위 조직을 충분히 제거하고 림프절도 많이 제거하는 것이 좋겠지만, 수술 후..

수현 2. 유방암의 진단과 병기의 의미

유방암의 진단과 병기의 의미 유방암이 진단되면 MRI나 PET-CT등 영상학적 검사를 통해 암의 크기(T), 림프절의 분포와 개수(N), 원격 장기로의 전이여부(M)에 따라 병기(TNM staging)를 결정하게 된다. 유방암 환자의 예후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 병기이고 병기에 따라 생존 그래프의 차이가 확실하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마음이 다급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병기 설정을 위한 추가 검사를 하는 것은 예후를 예측하고 장기적인 치료계획을 세우기 위해 필요하기 때문이다. “별로 크지도 않고 증상도 없어요. 초음파 검사에서는 양성같다고 했는데, 제가 정말 암이 맞나요?” 유방암을 의심할만한 증상들이 있다. 유두가 함몰되거나 유두에서 진물이나 핏빛 분비물이 나올 때, 만져지는 멍울이 있다거나..

수현 1. 유방암을 처음 진단받은 당신께

암을 진단받은 당신께 “조직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악성입니다.” “악성이라는게 암이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유방암입니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한동안의 침묵이 흐른다. 무겁게 긴장되고 금방이라도 터져버릴 것 같은 침묵… 분명 해결책이 있을 것이라 믿고 싶은 환자가 의사에게 질문 공세를 퍼부음으로써, 혹은 암 진단을 받고 파랗게 질려버린 환자를 보고 의사도 마음이 초조해져 앞으로 필요한 추가 검사와 치료 일정을 의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침묵의 순간을 무너뜨린다. 유방암을 진단받은 환자들, 앞으로 의외의 상황에서 침묵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지만 처음 진단받는 이 순간의 침묵이 가장 무거울 것이다. 그러나 침묵의 벽을 허물고 앞으로 나가는 용기도 환자 스스로에게서 나온다. 의사는 그 용기를 잘 북돋워주고 ..

진료실에서 못다한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슬기 엄마이고 세브란스병원 종양내과에서 유방암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입니다. 치료를 받는 중에 진료실에서 못다한 유방암 이야기를 나누는 공간을 만들고 싶어 컴맹인 제가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될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잘 해보고 싶어서 오늘 그 첫 발자국을 내딛습니다. 기대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