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내 사랑 안산 예찬론

외래가 끝난 오후 혹은 점심 시간을 이용해 저는 연대 안 안산을 다닙니다. 가능하면 매일 가려고 애씁니다. 병원에서 앉아있는 시간이 많으니, 꼭 시간을 따로 내서 운동을 해야 합니다. 실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것보다 산에 다니는 게 더 좋아요. 이렇게 좋은 산이 연대 안에 있다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한때 제가 마라톤도 했었지만, 이제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뛰기엔 온 관절이 말을 듣지 않습니다. 쿨럭. 산에 못가는 날 연대 운동장 뛰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마라톤은 이제 안녕이에요. 정상 직전 오르막 길입니다. 이 길을 통과하면 정상인 봉수대가 나옵니다. 이 길이 흙길이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아쉽습니다. 지지난주 비오던 날 어느 저녁에 아무도 없어서 한장 찍어봤습니다. 워낙 동네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산이..

빡빡 머리에 잘 어울리는 귀걸이

잘 어울리는 귀걸이를 찾기 위해 몇번을 시도해 봤을까요? 빨갛고 파랗고 하얀 보석이 박혀있는 화려한 귀걸이가 예쁘다고 했더니 빡빡머리에는 화려한 귀걸이가 잘 어울린다고 하네요. 왼쪽에는 4개, 오른쪽에는 두개. 과감하게 많이도 귀를 뚫었다고 했더니,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귀를 뚫고 새 귀걸이를 했대요. 별거 아니지만, 그 기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전 스트레스 받을 때마다 서점에 가서 신간서적도 사고 문방구에 가서 펜을 삽니다. 그래서 서점만큼 책이 많고 문방구만큼 펜이 많아요. 다 읽지도, 다 쓰지도 못할만큼. 그래도 그렇게 새책, 새펜을 사가지고 제 방으로 돌아오면 뭔가 좋은 일이, 뭔가 꼬였던 일이 풀릴 것 같은 신선한 느낌을 받아서 하루의 한 순간이 즐겁습니다. 그녀에게는 그것이 귀걸이였..

새로운 시도 - 사진 편집

제가 오늘 첨으로 블로그에 사진을 올려봅니다. (음악파일을 올리려다 한번 좌절한 이후로 블로그에 무슨 짓을 해보려고 하지 않았죠. 그냥 글만 무식하게 올리는 재미없는 블로그에요.) 그동안 이런거에는 신경을 안썼는데요, 한번 해보니 블로그가 좀 산뜻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오늘 받은 유기농 야채선물세트입니다. 오늘같이 무더운 날, 이렇게 많은 야채, 손수 농사지은 정성과 함께 배달해 주셨습니다. 꽤 무겁습니다. 고**님, 감사해요. 저녁은 유기농 야채를 쌈장에 찍어 먹고 토마토를 후식으로 먹으면 되겠습니다. 몇번 재발되었죠. 그 소식을 전할 때 흔들리는 눈빛,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꼭 참고 '선생님, 다른 방법이 있는거죠?' '그럼요' '선생님만 믿어요' '저 그말 제일 싫어해요' '에이 ..

악역은 없다. 스토리가 꼬일 뿐

먼 남쪽 지방에서 오신 할머니, 그리고 그의 며느리. 며느리는 시어머니 상태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항암치료를 하지 않으면 상태가 지금보다 호전될 수 없다는 것도, 그런데 항암치료를 해도 순식간에 위험해 질 수 있다는 것도 모두 알고 있었다. 숨찬 시어머니와 함께 내 진료실을 찾았고 우리는 몇번을 고민해서 위험성이 있기는 하지만 항암치료를 해보기로 했다. 항암제 들어가고 하루이틀 컨디션이 좀 좋은것 같았는데 사흘나흘 컨디션이 다시 나빠지고 밤에 잠을 잘 못 주무신다. 그렇게 5일째. 나도 마음이 탄다. 항암치료라는게 오늘 했다고 내일 좋아지는 치료가 아니니 일단 치료를 하면 약효가 작용하는 시간만큼은 환자가 좀 견뎌주어야 한다. 항암제의 약효가 이길지, 독성이 이길지, 병이 나를 이길지 누가 이기는지 ..

할머니 마음

아흔을 바라보시는 할머니 유방암을 진단받고도 한참 있다 오셨다. 초기니까 수술하면 된다고 들으셨는데도 안하신다고 했다. 그리고 또 자식들 성화에 몇달 뒤 다시 검사하셨다. 다행히 여전히 수술가능한 상태. 그래도 할머니는 수술 안하신다고 했다. 그러다가 오늘 나를 만났다. 묵주반지를 끼고 있지만 사실 날나리 신자인 내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시는데 눈물이 글썽글썽. 할머니 무릎 관절염 말고 다른데 불편하신거 없으세요? 혈압 말고는 없어. 아이고, 건강하시네요. 얼른 수술해요. 검사 몇가지 하구요. ... 괜히 자식들한테 오래살고 싶은 할망구 소리 들을까봐, 삶에 연연해한다는 소리 들을까봐 수술 안하실라고 했죠? 응. 나이도 이렇게 많은데 무슨 수술이야. 그냥 죽는게 낫지. 그렇게 생각했어. 근데 오늘 저한테는..

암친구를 위한 식탁

전이성 유방암으로 2년이 넘은 환자. 아무도 그 사실을 알아볼 수 없을만큼 외모 단정, 패션퀸, 멋진 분이다. 아직 CT를 보면 폐에 병이 남아있지만 잔존 병변이 별 변화없이 2년이 지나가고 있다. 그는 병원 생활의 도사다. 외래 대기 시간 중에 다른 환자들과도 좋은 이야기 많이 나누고 외래 시간이 지연될까봐 걱정하는 나를 위해 방에 들어서자 마자 자기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보고해주신다. 진통제 부작용이 꽤 있었는데 혼자 이리저리 시도해보면서 자기 몸에 맞게 먹는 방법을 찾았다. 치료중 발생하는 많은 부작용들을 스스로 많이 극복하였다. 그래도 종양평가 CT를 찍는 날이면 잠을 설치고 마음에 불안함이 생기는 걸 어쩔 수 없다고 토로하신다. 나는 조용히 당연하다고 맞장구 쳐드린다. 같이 치료받던 누구..

이런 전화를 받으면....

환자분이 돌아가시고 남편에게 전화를 받았어요. 그때 항암치료 잘못한거 아니냐고. 그 항암치료 잘못해서 이번에 죽게 된거 아니냐고. 밥 먹다가 그런 전화를 받으니 먹은 밥이 다 체하네요. 환자 상태가 나빠져서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을 때 급하면 전화하시라고 알려드리는데 그러다 보니 병이 중한 분들, 나이가 많으신 분들, 심장, 신장 등 기본 신체 신체기능이 불안정한 분들에게 주로 전화번호를 알려드리죠. 환자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의 일환이라고 생각하고 제 개인적인 전화번호를 알려드리는데 이런 전화를 받으니 약간 후회스러운 마음도 듭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그리고 하시고 싶은 말씀 있으시면 외래로 오셨으면 한다고 말씀드리고 끊었죠. 아마 마음 속에 많은 분노를 쌓아놓고 계신 상태..

부모님이 혼자 사시면 건강검진 꼭 챙겨주세요

3년전부터 유방이 이상했다. 혼자 사는 70세 어머니는 딸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일절 하지 않으셨나 보다. 최근 유방 상태가 나빠지면서 고름도 나오고 피가 나올 때까지도 말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가 숨이 차기 시작하니 어쩔 수 없이 병원에 가야 했고 자식들은 뒤늦게 어머니가 유방암이고, 온 몸 여기 저기로 전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처음 진단받은 병원에서 찍은 CT를 보니 폐 늑막에 물이 많이 고여있다. 늑막도 이미 많이 두꺼워져 있다. 지금 고여있는 물이 최근에 생긴게 아니라 꽤 오래전에 생겨서 오랫도안 고여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미 맑은 물이 아니고 지들끼리 뭉쳐있는 (loculated fluid)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상태에서 환자가 숨차다고 흉수 천자를 시도했다간 약해진 폐에 조금만..

남편, 더 오래 도와줘야 해요

처음 수술 받고 항암치료 받을 때까지는 매번 같이 병원에 와주는 듯 싶더니 매일 병원에 다녀야 하는 방사선 치료부터는 부인의 독립심을 믿는 건지, 병원 같이 다니는 빈도가 떨어진다. 부인도 이제 미안하다. 회사일, 남편 일도 있는데 자기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쓰고 있는건 아닌가 싶은 자신감없는 마음에 그저 남편에게 고마와 할 뿐이다. 그렇지만 사실 환자는 항암제의 부작용 - 손저림, 탈모, 수면장애, 무기력감 수술의 부작용 - 림프부종, 수술 자리 통증 방사선치료의 부작용 - 방사선 치료 받는 부위의 피부 발진 및 통증, 전신 무력감, 식도염 이런 부작용들이 많이 남아있다. 일상생활을 못할 정도로 아주 힘들지는 않아서 굳이 입밖으로 낼 정도는 아니다. 그동안도 아프고 힘들다는 말 너무 많이 해서..

가족, 뭔가 위로의 말을 해주고 싶을 때

너무 위로의 말을 할려고 하지 마세요. 그냥 견디는게 더 나을지도 몰라요. 환자 마음의 안정은 어쩌면 환자와 주치의가 대면해서 나누는 대화, 정작 치료를 시작하면서 하는 굳건한 결심 등을 통해 해결되는 일인지도 모르겠어요. 그래도 주치의로서 암을 진단받은 환자를 곁에 둔 가족을 위해 정보를 드립니다. 암을 정확히 진단하려면 1> 일단 의심이 되는 종양 중 일부에서 바늘로 조직검사를 한 후 병리학적으로 암세포를 봐야 암이 진단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상검사로 확정진단을 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일부 암에서는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도 CT만으로 진단할 수 있기도 하지만요) 2> 암이 확정되면 수술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그 정도를 확인하기 위해 영상학적 검사를 하는데요, 그때 대략의 병기가 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