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쪽가슴으로 사랑하기 1020

일상으로 복귀할 때

힘들고 어려웠던 유방암 치료의 일차관문을 통과하고 소중한 일상으로 돌아가신 여러분께 수술 후 유방암 환자가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조사하여 유방암 환자를 위한 사회심리적인 지지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치료 중 겪었던 어려움, 지금도 남아있는 후유증, 마음의 갈등 등에 대해 여러분이 솔직한 의견을 주시면 이후 치료받게 될 유방암 환자들이 사회 및 일상생활로의 복귀를 돕는 소중한 자료가 될 것입니다. 같은 배를 타고 가는 유방암 친구, 그들이 망망대해를 헤매지 않고 안전한 항로로 치료의 여정을 밝을 수 있도록 선배 환우님들의 도움을 부탁드립니다. 와 같은 머릿말이 붙은 설문조사가 다음달 2주간 진행될 예정입니다. 주제가 정해진 연구는 아니고 암치료를 받고 사회로..

Early palliative care 세미나

저희병원 호스피스 팀에서는 올 11월 10일 (토) 국제 완화의료 학회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주제는 Early ingegration of palliative care 입니다. 호스피스라는 단어, 완화의료라는 개념이 사실 어감이 잘 와닿지 않고 우리에게는 다소 저항감을 주는 면이 있습니다. 여하간 핵심은 암환자 치료에 있어서 의학적인 진단과 치료 이외에도 환자들에게는 보다 적극적인 증상조절과 지금보다 더 많은 사회심리적 지지, 가족을 포함한 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원할한 커뮤니케이션도 필요하다는 것. 이런 전체적인 과정을 통해 암환자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며 이를 가능하게 하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하는 것이 이번 국제학회의 주제입니다. 이러한 취지로 현실적으로 필요한 주..

Long vacation 견디기 - 3

내가 열심히 살았던 순간을 떠올리며 아무래도 인생은 스스로 브라보를 외칠 수 밖에 없나봅니다. 우린 누군가에게서 내 마음에 흡족한 대답을 듣고 싶어 하지만 내 인생을 책임져 주는 건 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당장 눈 앞에 할 일이 많아도 마음이 안 잡히면 허둥대고 집중이 안되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저도 요즘 좀 그래요. 제 과거를 돌이켜 봅니다. 나의 과거는 아직은 조각조각 흩어져 있습니다. 처음 대학교 다닐 때는 사진에 미쳐서 학과공부는 손도 안대고 전국을 쏘다니며 사진에 올인했었어요. 멋진 보도사진을 찍는, 그래서 역사와 사회를 기록하는 찍사가 되고 싶었던 열망이 강했던 시절이었지요. 긴 방학 동안 몇일찍 집을 떠나 필름 가득담은 카메라 가방을 메고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취재하는게 일이..

유방암 수술 한달후, 팔운동에 장애가 없도록

유방암 수술을 하는 누구도 겨드랑이 림프절을 일부 혹은 전부를 절제하게 됩니다. 검사용으로든 치료용으로든 겨드랑이 림프절을 건드리게 되어 있어요. 일반적으로 혈관이 손상되어 출혈이 생겨도 잘 눌러 지혈하면 저절로 피가 멈추듯이 림프절/림프관이라는 것도 일종의 혈관이라서, 수술할 때 림프절을 제거하면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 새로운 림프절, 림프조직들이 생겨나며 정상화 됩니다. 그런데 이들이 제대로 된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혈액순환이 정상적으로 잘 될 때까지는 시간이 걸립니다. 그 시간은 사람마다 달라서 온전한 구조를 형성하기 전까지는 수술한 겨드랑이 근처에서 림프액이 셀 수 있습니다. 조직에 림프액이 고이는거죠. 그래서 너무 많이 세서 조직이 땡땡해지고 아프면 주사기로 림프액을 빼면서 증상을 조절할 수 있습니..

더위를 감사한 마음으로

4년째 치료받고 계신다. 병이 거의 안정적으로 콘트롤되서 이제 외래에서 몸 상태나 어디 아픈거에 대해서 얘기할 게 별로 없다. 그냥 살아가는 소소한 이야기를 나눈다. 그 분이 오시면 나는 '벌써 3주가 되었나요? 시간 빠르네요.'라고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그만큼 환자의 상태가 안정적이다. 큰 딸 시집 보낸 이야기 시집보내고 나서 남편이 갑자기 자기랑 상의도 없이 30년간 살던 집을 팔아버려서 한달 넘게 말 한마디 안하고 냉전하며 등돌리고 지냈던 이야기 그래도 영감 불쌍하니까 밥은 챙겨먹이고 산다는 이야기 그래도 부부니까 가끔 같이 골프도 치러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진료한다. 진료가 아니라 대화다. 그래서 이 환자를 만나면 '별 일 없으셨어요?' 라고 묻기보다는 '뭐 좋은 일 없으세..

Long vacation 견디기 - 2

내 인생의 100인 제가 20년전 처음 대학 다닐 때 그때도 인생 심란한 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인생은 늘 심란함의 연속인것 같습니다) 그때는 젊고 뭔가 의욕도 많을 때라 심란해도 뭔가를 생산적으로 하면서 위기를 극복해 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고은 시인의 만인보까지는 못 쫒아가겠지만 당시 내 인생의 100인을 선정해보고 기록해 보려고 했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기까지 내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현실의/가상의 (소설, 영화 등등) 인물을 선정해보는 거죠. 역사적인 사건도 생각해보고, 위인도 떠올려 100인의 리스트를 작성합니다. 그리고 그가 왜 나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그와의 기억이 흐릿해지면 그를 불러내서 다시 만나 이야기도 나눠보고 변한 그를 보며 100인의 목록에서 ..

Long vacation 견디기 - 1

당신의 모든 순간 (강풀) 제가 가장 심란할 때 하는 건 만화보기. 원래 순정만화는 안보는데 이 만화에 좀비가 등장하기 때문에 스릴러물인줄 알고 봤다가 곧 순정만화라는 걸 깨달았으나 시작한 만화를 끊지 못하고 결국 돈내고 끝까지 눈물 펑펑 쏟으며 다 보았습니다. 왜 울었냐고 물으신다면.... 내용은 신파라서... 강풀 만화는 그림체보다는 contents가 좋은데 매우 상징적인 코드를 구사하기 때문에 다 보고 다서 결말이 해피엔딩인지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가 독자의 시선을 끌고 갑니다. 첫회 첫컷에서 '세상에 당신과 나만 남는다면, 우리는 사랑할 수 있었을까'를 묻지만 다 보고 나면 답은 'No'입니다. 그렇지만 완전 No는 아닙니다. 세상에 둘이 남아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

Long vacation

뭘 해도 일이 제대로 안 풀리는 것 같을 때 마음을 아무리 다잡으려고 해도 잘 안될 때 내가 아무리 애써도 상황을 변화시킬 수 없을 때 그건 어쩌면 사람의 힘으로 되돌이킬 수 없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그건 하늘이 준 long vacation 이라고 생각합시다. 방학이죠. 그냥 놀면서 지내는. 하늘이 준 시간. 그 시간을 잘 견디는 거. 그냥 놀면서 견디는 거. 너무 뭘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견디는 거. 긴 더위도 너무 이겨낼려고 하지말고 물 많이 마시고 견디고 복잡한 마음도 너무 극복할려고 하지 말고 그냥 불안정하게 흐르는 마음 그대로 인정하고 때론 커피 한잔 때론 맥주 한잔 때론 영화 한편 때론 소설 한편 때론 근교 여행 그렇게 하루하루를 견디는 거죠. 지금의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고, 마음..

의사와 암환자의 커뮤니케이션

환자는 의사에게 적응합니다. 물어봐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 질문하고 하소연해도 괜찮을 것 같은 사람에게 하소연 합니다. 말이 안통할 것 같으면 환자도 자기 마음의 문을 열지 않죠. 의사에게 상처받기 싫으니까. 의사소통이란 원래 그렇게 상대방의 입장을 파악하는 상태에서 형성되는 과정적 행위 아니겠어요? 병에 따라 의사 환자 관계는 다르게 나타납니다. 의사의 판단과 결정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상황이 있습니다. 모든 상황에서 진단과 치료과정에서 의사와 환자의 의사소통은 기본적으로 중요하지만 각종 사고로 인한 응급외상, 수술, 심장마비, 뇌혈관 장애로 막힌 혈관을 뚫어야 할 때, 내부 장기 출혈이 있을 때 등의 상황은 환자의 의견보다는 의사의 판단과 결정, 그리고 신속한 대처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

재미없으나 감동이 있는 음악회

암환우를 위한 음악회. 저녁 7시, 시작 시간에 맞춰서 강당이 관객으로 서서히 차간다. 항암제를 맞고 있는 환자도 있다. 수액이 연결된 채로, 휠체어를 타고 환자들이 많이 왔다. 환자 간병에 몸도 마음도 노곤한 보호자들도 우리 강당의 편안한 의자에 몸을 기댄다. 냉방도 시원하게 잘 틀어주고 있다. 사회를 보시는 분, 음향감독, 무대감독, 합창지휘자 등 출연과 준비팀 모두가 현재 암으로 투병중이거나, 치료를 받고 좋아진 혹은 돌아가신 환자의 가족들이다. 그렇게 암이라는 혹독한 병으로 인연이 엮인 사람들이 지금 투병중인 또 다른 환자를 위해, 위로와 평안을 주는 음악회가 열렸다. 공연의 완성도와는 무관하게 그 자체로 감동을 준다. 윌름씨 종양으로 방사선치료와 수술을 마친 딸을 둔 엄마가 사회를 보고 지금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