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45

Compassion fatigue

Compassion fatigue 오늘은 내 생일이다. 이제 누가 ‘생일 축하한다’고 말해줘도 뭔가 어색하고, 나이 먹는게 새삼 느껴져서 피하고 싶은 마음도 든다. 눈 깜짝할 사이에 한해 한해 반복되는 생일이 무섭기조차 하다. 무서운 이유는 이제 더이상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지 않다는 것, 두려운 게 점점 많아진다는 것, 의욕이 없어지고 뭘 봐도 무덤덤하다는 점이다. 내가 아직 이럴 때가 아닌데, 내가 원래 이렇지 않았는데, 자꾸 무덤덤해진다. 나라고 별 수 있겠어, 누가 뭘 잘 못해도, 나도 그럴 수도 있지 뭐… 그런 흐리멍텅한 생각만 든다. 이런 정신적 노쇠함이 나를 늙게 만드는 주범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 레지던트 1년차 첫날 아침 prerounding을 돌며 떨려했던 바로 그 순간이 아직 생생한..

외모도 중요한 젊은 암환자들

외모도 중요한 젊은 암환자들 같은 환자라도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젊은 암환자들을 만나면, 마음이 진짜 안좋다. 그들을만날 때, 의사로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한다. 정서적인 동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완치가능한 치료를 하는 환자들, 예를 들면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보조항암치료를 하거나 항암치료 만으로도 완치를 기대해볼 수 있는 Lymphoma나 Leukemia 환자들, 비록 항암제가 구식이고 치료과정이 다른 암보다 훨씬 힘들긴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어 완치도 되고 치료 효과도 좋은 Osteosarcoma, Germ cell tumor 등으로 투병중인 어린 환자들을 만나면 그래도 할말이 있고 회진 때 마음이 덜 무겁다. 지금은 비록 병원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조만간 ‘정상 ..

응급실에서 병실 배정을 논할 때

병실 배정의 슬픔 소세포폐암 3기B단계면 병이 많이 진행되어 수술은 어렵지만 완치를 기대하고 방사선 항암 동시요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7-8주간의 방사선치료와 매주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은 무척 힘들다. 4기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완치가능하다는 통계에 기대어 환자들은 기를 쓰고 이겨낸다. 전라도 끝 마을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 방사선항암요법이 끝난지 6주 만에 응급실에 내원하셨다. 뭐가 힘드냐는 말에 ‘그냥 힘이 좀 없고 기침을 많이 해서 불편하다’며 별 말씀이 없으시다. 갑자기 커진 심장과 양측 늑막은 물이 고여 뭉툭하다. 혈압은 68/41mmHg. 엊그제 치료 반응평가를 위해 찍은 흉부CT에서는 심장 주위로 3cm이 넘게 물이 고여있다. Cardiac tamponade! 환자는 산소 마스크 7 lite..

Painful Memory Again

Painful Memory Again 경험많은 모 외과의사가 이제는 어엿한 중견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의국의 후배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즉흥적이 아닌 준비된 원고로 발표를 하였다. 제목은 ‘Painful memory again’.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제목만 보아도 무슨 내용이었을지, 후배들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주었을지 짐작이 된다. 한 분야의 명망있는 외과의사가 의사로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들, 때로는 부주의하게, 때로는 몰라서, 때로는 우연히, 바로 그 자신의 손에서 행해진 행위로 인해 환자들이 나빠지고 때론 죽기도 했을텐데, 그걸 고백하며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의사는 환자를 통해서 배운다. 그러니까 늘 환자에게 고마워 할 줄 알고 미안해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다시 시작하는 슬기엄마의 Season 3

다시 쓰는 슬기엄마의 일기 2주간의 투병기 체력좋은 내가 몸이 극심하게 피곤할 때면 슬기를 낳고 생긴 치질이 Grade 3로 나타난다. 불편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환자수가 cut-off point를 넘어가면 가끔 재발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2년차 전공의 시절, 제때 화장실도 못가고 쫓기듯 살면서 얻은 방광염도 가끔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아랫배의 불쾌한 느낌이 엄습할 때면 Low GI tract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내시경을 위한 bowel prep도 선뜻 내키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 엉덩이를 들이밀고 검사를 당하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검사와 진료가 더 꺼려졌던 것은 혹시 뭔가 큰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3주전부터 화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