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응급실에서 병실 배정을 논할 때

슬기엄마 2011. 2. 27. 11:13

병실 배정의 슬픔

 

소세포폐암 3B단계면 병이 많이 진행되어 수술은 어렵지만 완치를 기대하고 방사선 항암 동시요법을 시도해볼 수 있다. 7-8주간의 방사선치료와 매주 항암치료를 받는 과정은 무척 힘들다. 4기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완치가능하다는 통계에 기대어 환자들은 기를 쓰고 이겨낸다. 전라도 끝 마을에서 농사짓는 할아버지, 방사선항암요법이 끝난지 6주 만에 응급실에 내원하셨다. 뭐가 힘드냐는 말에 그냥 힘이 좀 없고 기침을 많이 해서 불편하다며 별 말씀이 없으시다. 갑자기 커진 심장과 양측 늑막은 물이 고여 뭉툭하다. 혈압은 68/41mmHg. 엊그제 치료 반응평가를 위해 찍은 흉부CT에서는 심장 주위로 3cm이 넘게 물이 고여있다. Cardiac tamponade! 환자는 산소 마스크 7 liter에 산소포화도는 90%. 응급으로 심장초음파를 보고 심장내과 선생님께 심낭천자술을 부탁하였다. 바늘을 꽂자 혈액이 쭈욱 밀려나온다. 순간 가슴 깊이 한숨이 밀려나온다. ‘, 악성 흉수인가보다

산소 마스크를 쓴 채 분당 40회가 넘는 호흡을 하면서 환자가 나를 향해 뭐라고 자꾸 말을 건다. 심낭천자술이 아직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나는 시술이 끝나면 다 설명드릴 테니 말씀을 잠깐만 참으세요. 지금 말하면 위험해요라며 환자를 제지하지만, 환자가 아랑곳하지 않고 자꾸 말을 한다. “ 5인실로 입원시켜줘. 지난 5개월동안 검사받고 치료받으면서 돈 다 까먹고 이제 돈 하나도 없다니까. 오늘도 입원할지 모르고 병원왔다가 이렇게 된거니까 무조건 다인실로 입원시켜줘. 2인실은 절대 못가.” 세상에, 심낭에서는 피가 줄줄 흘러나오고 산소마스크를 쓴 채 숨을 헐떡거리며 의사에게 요청한다는 말이 다인실로 입원시켜달라는 것이라니

 

그 옆자리 환자, 진행성 소세포암으로 항암치료를 받는 중에 왼쪽 옆구리 통증으로 응급실에 오신 할아버지. 이분은 경상도 끝에서 오셨다. 늑막에 물이 고여서 아픈가보다 싶다. 3개월전에 병이 나빠져 약제를 바꿔 항암치료를 했지만, 그때 독성이 너무 심해 환자가 죽다 살아났다고 한다. 그 렇게 항암치료를 못하는 사이에 small cell은 빠르게 증식하였다. 70살이 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나를 붙잡고 너무나 애절하게 요청하신다. 사진도 안보여드렸는데, 병이 나빠져서 아픈 줄 다 아시나보다. “빨리 항암치료를 받아야 좋아질텐데이번에는 항암치료 받으면 퇴원하지 않고 계속 입원하면서 경과보게 해줘요” “응급실에서는 항암치료가 안되니 2인실이라도 입원하세요” “2인실은 못가요. 그 돈이면 다인실에서 10일동안 있을 수 있는데 어떻게 2인실을 가요. 우리가 농사지어 번 돈으로 치료비 대는데…” “다인실 자리가 나려면 몇일 걸릴거에요” “그동안 응급실에서 기다릴께요” “응급실이 입원을 대기하는 곳이 아니에요. 바깥에 의자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환자를 생각해보세요. 엊그제 밤에 할아버지도 자리 없어서 자리에서 뜬눈으로 밤을 지새셨잖아요?” 경상도 남자인 할아버지는 당신 입으로 별 말씀을 안하신다. 주로 할머니가 나에게 화도 냈다가 사정도 했다가 하시는 걸 지켜보면서 고개를 옆으로 돌리신다. 아마도 왁자지껄한 응급실에서 몸도 아프고 신세도 처량해서, 그리고 자존심도 많이 상하힌 것 같다.

 

심낭천자술을 한 할아버지는 응급실에서 응급조치하고 그냥 퇴원하시겠단다. 산소를 아직도 5 liter나 하고 있는데, 다인실 아니면 죽어도 입원 못하니 응급실에서 내내 주말 경과관찰하여 물이 줄어들면 삽입했던 도관을 제거하고 산소를 줄여서 퇴원하셔야 할 것 같다. 그리고 응급실 퇴원 처방 직후 바로 외래 항암주사실로 재접수하여 외래 주사실에서라도 항암치료를 받게 해야겠다. 늑막에 물이 고인 할아버지는 내가 사정사정해서 2인실로 입원하셨다. 그것도 응급실 원무과에 몇번이나 사정했는지 모른다. 항암치료를 빨리 받으셔야 하니 형편좀 봐달라고병동으로 올라오시면 다인실 병실로 바꿔드린다고 할아버지, 할머니께 약속했지만 할아버지는 3일째 2인실에서 항암치료를 받으셨고 내일 퇴원예정이다. 오후 회진을 가는게 민망하고 죄송하다.

 

일단 병실로 입원한 환자들은 자꾸 퇴원을 미룬다. 다인실로 병실을 옮기게 되면 퇴원시키기 위해 환자를 설득하는 것도 하늘에 별따기다. 4기 암환자들이 전신 컨디션이 좋아지면 얼마나 좋아지겠냐 싶고, 그들의 고달픈 심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난 매일 오후 ‘3차 의료기관에서는 필요한 조치를 취하고 퇴원하시는 거라는 말을 반복하며 회진을 돈다. 필요한 조치를 하셨으면 다른 환자가 입원할 수 있게, 다른 환자가 다인실로 들어올 수 있게 환자들끼리 도와줘야 하는거 아니겠냐고.

그러나 이렇게 이타적인 마음, 병원이나 의사에 협조적인 마음을 갖기 어려울 만큼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는게 힘든 환자들도 있고, 2차 의료기관으로 전원하더라도 말기 암환자를 대상으로 한 완화의료 서비스를 적절히 제공해주는 병원이 많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반면에 더 이상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전신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은데도 자꾸 떼를 쓰며 퇴원하지 않겠다는 환자는 엄청 짜증나고 미워진다. 상태가 나빠져서 이제 치료적 차원에서 검사나 시술, 투약이 어려우니 서서히 임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한 환자에게 퇴원을 권유할 때는 내가 마치 무슨 악덕 고리대금업자같다. 어떤 환자는 그동안 검사하면서 단물 다 빼먹고 이제 쓸모없어졌으니 꺼지란 말이냐며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다. 그들의 뼈아픈 소리에 나는 굳이 그런게 아니다라며 변명할 수도, 필요도 없다.

 

병원을 늘리면, 병상수를 늘리면, 의사 수를 늘리면 이런 문제가 조금이나마 해결될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환자의 퇴원을 강행하는 나에게 한 1년차 주치의가 불만가득한 표정을 반항한다. 환자가 이렇게 가기 싫어하는데 오늘 꼭 보내야 하냐고… 3차 의료기관으로 집중되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의 불균형, 병원의 병실 운영정책의 허와 실, 의료보험정책이나 진료비 책정의 허와 실, 한국인의 의료이용행태 및 관행 뭐 이런 많은 배경적 지식이 서로에게 전재되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1년차의 반항적인 표정에 이유설명없이 명령한다. ‘, 퇴원시키세요. 지금 응급실 환자들이 바닥에 누워있어요. 좋아진 환자는 퇴원하는 겁니다

환자수가 줄어 병상을 폐쇄하는 2차 의료기관이 줄어들고, 1차 의료기관과 3차 의료기관으로 양극화되는 경향이 심해진다. 환자들은 점점 더 지역병원을 믿지 못하고 서울의 대형병원을 찾지만 큰 병원 진료의 질은 어쩌면 점점 더 나빠지는 지도 모르겠다.

지금 내가 보는 환자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채, 거시적인 사회와 정책의 문제를 논하는 것은 공허하다는 생각으로 인턴, 레지던트 시절을 보냈는데, 그렇게 시간을 많이 보내고 나니, 해결의 실마리를 찾는 것이 더 어렵다. 응급실을 오가는 매일, 마음이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