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슬기엄마의 일기
2주간의 투병기
체력좋은 내가 몸이 극심하게 피곤할 때면 슬기를 낳고 생긴 치질이 Grade 3로 나타난다. 불편하지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다. 환자수가 cut-off point를 넘어가면 가끔 재발되기는 했지만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2년차 전공의 시절, 제때 화장실도 못가고 쫓기듯 살면서 얻은 방광염도 가끔 나를 괴롭히기 때문에 아랫배의 불쾌한 느낌이 엄습할 때면 Low GI tract에 뭔가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 내시경을 위한 bowel prep도 선뜻 내키지 않고, 누군가에게 내 엉덩이를 들이밀고 검사를 당하는 것은 더욱 내키지 않는 일이었다. 검사와 진료가 더 꺼려졌던 것은 혹시 뭔가 큰 문제가 있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고…
3주전부터 화장실에 갈때마다 bloody discharge가 계속 되었고 더불어 localization이 잘 되지 않는 묵직한 통증이 동반되었다. 지난 목요일에는 급기야 책상앞에 30분도 앉아있기 어려울 정도로 불편감이 심해졌고 병동을 돌아다니면서도 식은땀을 너무 많이 흘려 환자들이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내일 모레로 학회 발표는 다가오는데, 슬라이드는 고작 introduction 서너장 만들어져있고, 내용 정리도 안되서 어떻게 발표를 해야할지, 결론을 내릴 수 있을지, 발표시간도 긴데 어떻게 시간을 때워야(!) 하나 불안하면서도, 그 불안함을 뛰어넘는 통증이 반복되자 나는 앞뒤 가리지 못하고 아는 선생님께 내시경을 부탁드렸다. 일하다 말고 내시경방에 가서 Bowel prep도 하지 않은 채 scope을 넣는 순간, 그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흡’하며 숨을 들이쉬었다. 선생님은 아무 말 없이 열심히 saline을 밀어넣어 점막을 씻어내셨고, 나는 anal verge 8cm 상방의 1.5-2cm 정도되는 꽤 큰 polyp 한 개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나 : 좀 않좋아보이네요” “선생님 : High grade dysplasia 정도 될 것 같네요. 너무 걱정 마세요. 만에 하나 cancer라고 해도 early stage일 것 같아요” 선생님은 사진을 찍어주며 “stalk의 한쪽이 sessile 하니 ESD로 하는게 좋겠어요. 너무 걱정마세요” 하며 scope을 빼셨다.
나는 내시경실의 항문바지를 입고 엉덩이를 덮은 천이 펄렁거리는 것이 창피하다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탈의실로 뛰어 가는 짧은 동안, 머리속에 온갖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암이면 어떻게 하지?’ 제일 먼저 슬기 생각이 났다. ‘그래도 다행이다. 6학년이면 다 컸지 뭐…’ ‘월급을 못 받으면 남편 몰래 만든 통장에 매달 들어가는 이자는 어떻게 넣지?’ ‘나 없어도 남편, 잘 살수 있겠지?’ ‘암보험 하나라도 들걸…’ 순식간에 빛의 속도로 엄청난 생각들이 머리를 통과하였다.
너무너무 마음이 심란했고 psychosomatization으로 인해 아랫배 증상도 더 심한 것 같았다. Conference에 들어가있으니 동료들이 문자메시지를 보낸다. 어디있냐고… 아마 내가 어디 처박혀서 울고 있을까봐 걱정이 되었나 보다. 나는 발표 준비를 하는 이틀 내내 마음 속으로 불안함 가득, 원칙이 아닌 걸 알면서도 복부 CT를 찍었고 tumor marker도 검사하였다. 금요일에 CT를 찍은 탓에 공식 판독이 나오지 않아 나 혼자 계속 CT를 들여다 보며 Rectal polyp 근처로 lymphatics가 별로 없는 곳에 8mm 정도 되는 lymph node가 있는 걸 보며 ‘젠장 N1 이네. CCRT를 해야하잖아’ 여러 영상의학과 선생님들께 물어보았는데, 다들 확실하지 않아 잘 모르겠다고 한다. 원발병소가 cancer라면 lymphnode도 metastasis를 rule out 할 수 없다며…
발표는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심 초조했지만, 서두르는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아 1주일이 지난 금요일에 정식으로 대장내시경을 다시 하고 polypectomy를 하게 되었다. 매우 잘생긴 장동건 닮은 선생님께 엉덩이를 내밀고 내시경을 하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내시경만잘 해주시면 됬지 뭐… Midazolam을 맞은 탓인지 내시경을 하는 동안이 별로 기억나지 않는데, 그 잘생긴 선생님이 ‘그동안 뭐 나온거 없어요?’라고 질문하셨던 것 같다. 잠결에 ‘뭐가 나온다는 거지?’ 의아해했던 것 같고 뭐라 대답을 했는지도 잘 모르겠다. 다 깨고 나서 검사 결과를 확인해보니 ‘auto-decapitated status’라고 되어 있고 내시경 사진에서는 Stalk의 흔적이 약간 남아있는 정도였다. 저절로 떨어져나가기도 한다는 건가? Polypectomy를 하고 다음날 별 이상없는 것 같아 근무를 했더니 주말 내내 항문에서 피가 선지처럼 쏟아졌다. 시간만 나면 병리검사 결과를 확인하였다. 그리고 최종 결과는 chronic colitis. 방을 함께 쓰는 동료들이 ‘그동안 옆에서 간병하느라 힘들었고 투병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었다’며 나를 격려한다.
나는 이 병리결과를 확인할 때까지 정서적으로 매우 labile 하였고, 수만가지 생각을 하였으며, 수만가지 대안적 계획을 세워놓았다. ‘그래, standard 치료를 받도록 하자. RT도 잘 받아야지. 항문을 보존할 수는 있겠지? 안되면 colostomy 하지 뭐. CT에서 liver metastasis는 없으니 수술하고 보조항암요법도 씩씩하게 받자. Rectal cancer면 oxaliplatin이 보험이 안될텐데, 비보험이라도 맞는게 좋겠지?’ 이렇게 이성적인 판단을 하게 되기까지 몇번 마음속에 울컥한 것들이 치밀어 올랐다.
내시경을 처음 하고 결과를 알게 되기까지 2주 정도 시간이 걸렸는데, 그동안 나는 매일 암환자를 만나고 진료하고 있었다. 회진 때마다 엉뚱한 이야기를 하고 외래에서 진료를 지연시키고 이상한 약초를 먹고 나빠져 응급실에 오는 환자들, 이들에게 도저히 짜증을 낼 수 없었다. 이들 모두 갑작스럽게 자신의 삶에 뛰어든 이 병을 감당하지 못하고 힘겨워했겠구나… 환자들을 만나면 내가 암이 아니니 다행이다 라는 생각을 하는게 미안해진다.
인턴 1년 (Season 1) 전공의 3년 (Season 2) 동안 나는 청년의사에 주치의 일기를 써왔다. 2008년 2월 마지막 글을 쓰면서 할말이 없어진 나, 더 이상 글을 쓰는 것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좋은 글을 쓰려면 나의 내부를 더 많이 채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나 나는 다시 글을 쓰기로 했다.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나의 내면세계가 뭔가로 채워진 것은 더욱 아니다. 인턴의 눈에 그렇게 높아보이던 전문의가 되었지만, 진짜 전문가는 아니다.
그런데도 글을 다시 쓰는 건, 암환자를 매일 보는 내 삶을 기록하고 싶다, 환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좀더 적극적으로 눈을 뜨고 귀를 열어야겠다, 그리고 의사로서 환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많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2주의 경험이 삶에 겸허한 자세를 갖도록 해준다. 암이 아니니 새롭게 출발하자는 그런 것이라기 보다는, 인생은 순식간에 자리가 뒤바뀌고 지루한 일상을 불평하는 것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것일 수 있는지, 혹은 병이 나를 불시에 찾아와도 놀랄 것 없고 병이 찾아와도 내가 그동안 만났던 슈퍼맨 환자들에게서 배운 노하우로 잘 이겨나가야지, 잘 죽기위해 잘 살아야겠다… 지금부터 쓰는 일기는 그런 나의 기록이 되었으면 하는 심정으로 시작해본다. Upgrade된 슬기엄마의 season 3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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