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펠로우일기

Painful Memory Again

슬기엄마 2011. 2. 27. 11:11

Painful Memory Again

 

경험많은 모 외과의사가 이제는 어엿한 중견의사로 활약하고 있는 의국의 후배들과 함께 한 모임에서, 즉흥적이 아닌 준비된 원고로 발표를 하였다. 제목은 ‘Painful memory again’.

내가 직접 들은 것은 아니지만, 제목만 보아도 무슨 내용이었을지, 후배들에게 얼마나 강한 인상을 주었을지 짐작이 된다. 한 분야의 명망있는 외과의사가 의사로 살면서 자신이 저지른 크고 작은 실수들, 때로는 부주의하게, 때로는 몰라서, 때로는 우연히, 바로 그 자신의 손에서 행해진 행위로 인해 환자들이 나빠지고 때론 죽기도 했을텐데, 그걸 고백하며 후배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의사는 환자를 통해서 배운다. 그러니까 늘 환자에게 고마워 할 줄 알고 미안해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으리라.

성공담은 약간의 과장을 섞어 동료들에게 말하고 싶지만, 자신의 실수나 과오로 인해 환자가 나빠진 경험담은 왠만해서는 말하고 싶지 않다. 소문났을 때 돌아올 화살이 무서운 것도 있겠지만, 더 큰 것은 자신의 행위에 대한 책임감에 짓눌리기 때문일 것이다.

엄밀히 말해서 실수나 과오는 아니며 교과서적으로 봤을 때에도 자신의 행위에 rationale를 부여할 수는 있다 하더라도, 사실 그 환자를 마지막까지 진료한 의사 당사자는 알고 있다. ‘, 그때 그렇게 하지 말고 이렇게 한번 해볼걸…’, ‘, 그때 lab 한번만 더 내 볼걸...’, ‘, 그때 퇴원시키지 말아야 했는데…’ 그것이 비단 법적인 문제나 윤리성을 위반한 사항은 없었다 하더라도 자기 마음 속의 양심의 소리는 그것과 무관하게 메아리친다.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실수나 실책이 아닌 정당한 의료행위에 필연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합병증마저도 소송의 대상이 되는 판국에, 어디 소리내어 내 실수를 털어놓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아주 절친한 친구-이때 친구는 반드시 의사여야 한다- 소수를 불러내어 늦은 밤까지 엄청난 소줏잔을 비우며 소리죽여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며, 동료들로부터 위로받고 싶어한다. 혼자 괴로워할 때도 있지만,  내가 꼭 그렇게 많이 잘못한 것은 아니지? 누구라도 이렇게 했겠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듣고 싶기 때문에 친한 의사친구를 불러내게 된다.

의사 누구에게나 무덤까지 가지고 가야 하는 비밀과 나만이 알고 가슴에 묻어야 하는 진실들이 있다.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고 나면 환자 얼굴 보기가 무섭고, 의사로서 나의 모든 행위가 다시 한번 재평가 된다. 남들의 시선에 의해서도, 스스로의 잣대에 의해서도그래서 의사라는 직업을 그만 두는 사람들도 있지 않던가. 극도의 긴장감을 견디기 힘들어서, 인간에 대한 예의로, 환자에 대한 미안함으로, 스스로의 자질탓을 하며, 그렇게 병원을 떠나는 의사들이 간간히 있다.

내가 주치의 1년차가 되면서 했던 스스로의 결심은 훌륭한 의사는 못 되더라도 환자를 죽이는 의사는 되지말자였다. 내가 졸면서 날린 verbal order, 내가 잘 모르고 처방한 약물의 용량이 환자를 죽일 수 있다는 것에 가슴 시껍하기를 몇차례, 늘 가슴 졸이며 1년차 시절을 보냈다. 판막수술을 하고 퇴원한 환자의 퇴원처방에서 쿠마딘이 빠져있다는 사실을 퇴원 이틀 후에 알고 놀라서 환자에게 전화하여 쿠마딘을 택배로 부쳐드렸다. 내 돈으로. 돈이 아까울게 무엇이던가. 환자에게 아무일도 없었다는데… (환자가 괜찮다는 사실을 확인한 후 비굴하게 환자에게 부탁까지 했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께는 아무말도 하지 말아주세요. 저 혼나거든요…) 회진할 때 선생님이 무슨 약을 주라고 하시면 그 약이 뭔지 몰라 몇 시간을 찾다가 호랑이 선생님께 다시 전화한다. 선생님께 혼이 나도 환자에게 약이 잘못 나가면 안되니까, 멍청하고 센스없다는 말을 들어도 난 꿋꿋하게 몇번씩 확인하기로 했다. 동기들보다 intubation을 늦게 성공한 나는 오후 회진 때 숨차는 환자들이 있으면 아예 동기들에게 공지를 하였다. 내가 전화하면 모두 뛰어와 달라고. 내가 못하는 건 쪽팔리지만, 어쨌든 그런 나 때문에 환자가 피해보면 안되니까자존심 절대 앞세우지 말고 환자 안전 중심으로 일해야 한다고

그렇지만 그렇게 준비하면 살았던 나도 남들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실수, 실책, 심지어 명백한 잘못들을 저지르곤 했다. 지면이 무서워서 솔직하게 밝힐 수 없는 나의 지난 잘못으로 환자들이 나빠지고 잘못되는 일들이 있었다. 법리적 차원을 넘어선 윤리적 차원의 문제이며, 그런 것들까지 모두 파헤쳐 잘못을 찾아내려고 한다면 의사 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거라고 누군가가 나를 위로해 줄 수도 있겠지만, 그러나 난 안다. 그것은 나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이런 일들이 한번씩 지나가고 나면 emotional DIC에 빠져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어쨌든 수혈을 하면서 underlying cause를 치료해야하는 것 아니겠는가. 누군가의 도움으로 긴급수혈을 받고 나의 실력과 내공, 자질과 임상적 판단을 키우면서 DIC period를 버틸 뿐이다.

또한 그런 나의 잘못을 다 아시면서도 나를 보호해주시는 선생님들, 그들은 전혀 모르는 척 계시다가 기운내하며 눈도 안 마주치고 지나가신다. 나 때문에 여러모로 복잡해진 상황을 묵묵히 처리해주신다. 그래서 난 아직 험난한 세상으로 뛰쳐나가지 못하고 병원의 울타리에 기대어 남아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역시 가장 큰 스승은 환자인 것 같다. 삶의 위기 국면에서 나에게 가르침을 주는 환자에게 다시 한번 고개숙여 감사해야 할 것이다. 또한 평범한 결심이지만 내 능력의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할 것이다.

나보다 2년먼저 의사가 되고 2년먼저 전문의가 된 친구가 있는데, 그가 한말이 기억난다. 의사가 되면 자기 내면의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 누구의 판단이나 평가가 중요하지 않고 오직 내 양심의 소리에 당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자꾸 오그라드는 것 같다. 나의 Painful memory가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동력과 채찍질을 해 줄거라고 믿는 수 밖에 없겠다. 이런 고통스러운 시간이 일상을 지배할 때에도 매일 해가 뜨듯이 매일 우리는 환자를 만나고 진료하고 대화를 나누며 멍든 가슴을 치료한다. 환자의 영혼과 내 영혼을 동시에지금의 고통이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