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도 중요한 젊은 암환자들
같은 환자라도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젊은 암환자들을 만나면, 마음이 진짜 안좋다. 그들을만날 때, 의사로서의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심호흡을 해야 한다. 정서적인 동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완치가능한 치료를 하는 환자들, 예를 들면 수술 후 재발방지를 위한 보조항암치료를 하거나 항암치료 만으로도 완치를 기대해볼 수 있는 Lymphoma나 Leukemia 환자들, 비록 항암제가 구식이고 치료과정이 다른 암보다 훨씬 힘들긴 하지만, 고생한 보람이 있어 완치도 되고 치료 효과도 좋은 Osteosarcoma, Germ cell tumor 등으로 투병중인 어린 환자들을 만나면 그래도 할말이 있고 회진 때 마음이 덜 무겁다. 지금은 비록 병원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조만간 ‘정상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있기 때문에 이들은 항암제로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잘 이겨낸다. 그러나…
림프구성 백혈병을 진단받은 장군. 180cm, 80kg이 넘는 건장한 체격의 고2 남학생. 며칠전까지도 아무 문제없이 학교생활을 했다는데, 좀 어지럽고 감기기운이 있어서 병원에 왔다가 갑작스레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입원 다음날 골수검사, 항암제 주입을 위해 필요한 히크만 카테터 삽입, 항암제를 받을만한지 신체 기능을 점검하는 각종 검사들을 하루만에 몽땅 다 해치우고 곧바로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다. 정작 본인에게 제대로 설명을 했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 않다. 부모님께 그 모든 설명을 대신하고, 항암치료의 위험성, 예후 등 무시무시한 말들은 본인에게 하지 않았다. 하지 못했다.
그 또래 남학생들이 그렇듯 장군은 내가 회진을 가도 별로 반응이 없고, 궁금해하는 것도 없고, 힘든 것 없냐고 물어도 TV에 연결한 플레이스테이션의 키보드를 조작하느라 대답도 하는 둥 마는 둥이었다. 온 얼굴과 가슴팍까지 여드름 투성이인 장군에게 나는 ‘학교는 어떻게 하기로 했니?’ ‘(무덤덤하게 플레이스테이션을 하며) 자퇴했어요. 차라리 잘 됬죠 뭐. 나중에 검정고시 보면 되요.’ ‘항암치료 힘들지 않니?’ ‘(무덤덤하게 여전히 나를 보지 않고 계속 게임기를 하며) 괜찮아요.’ ‘근데, 항암치료 하면 여드름 다 죽고 피부가 뽀얗게 될지도 몰라.’ ‘(갑자기 게임을 멈추고 나에게 처음으로 시선을 돌리며 얼굴에 화색이 돈다) 그래요?’ 장군은 처음으로 날 보며 웃었다. 덩치가 산만큼나 큰 남학생이 실눈이 되도록 웃으며 항암치료 열심히 하겠다고 한다.
약간 갈색으로 염색한 샤기 커트, 몸에 달라붙는 스니키 진을 입고 병원에 온 대학생 김군. 팔목에 몇 군데 멍이 든 것 말고는 별로 이상한 낌새가 없다. 김군은 대학생이 되어 처음 맞는 방학, 리모델링하는 건축 현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는데 결근하면 안된다며 지금은 약간 어지러운 것 말고는 전혀 불편한 점이 없으니 나중에 다시 병원에 오겠다며 집으로 돌아가겠다고 우기지만, 엄마는 큰 병원에 가서 진찰받아 볼 것을 권유한 지방 병원 몇 군데를 거친 끝에 불안한 마음 가득이다. 지방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밤 11시에 응급실에 도착한 이들 모자의 옥신각신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CBC 결과가 나왔다. 아니 이건? 빨리 진단검사의학과에 부탁한다. ‘아까 나간 혈액으로 도말검사를 부탁드립니다. 급성 백혈병이 의심됩니다’ 진단이 내려지는 순간, 심지어 의심되는 순간부터 빨리 ATRA를 쓰고, 첫 24시간 이내 출혈성 경향이 높아 사망률도 높다는 Acute leukemia M3, 지금은 Acute promyelocytic leukemia로 명칭이 변경되었지만, 내과 레지던트들에게는 ‘M3’가 더 위협적인 진단명이다. ‘M3 환자가 왔다’는 말은 거의 자다가도 벌떡 일어서는, 도깨비 아저씨보다 무서운 말이다. ‘아, 오늘 대박이다.’ 그만큼 M3 환자는 급격하게 임상양상이 변하고 위험해진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기운이 보이면 중환자실을 준비하고 오바에 오바를 거듭하며 환자를 진료해야 한다. 그렇게 고비를 넘기면 악성 혈액암 환자이지만 조혈모세포이식을 하지 않아도 완치율이 매우 높은, 그만큼 예후가 좋은 암이기 때문에 정말 최선을 다해 첫 몇일을 넘겨야 한다. 그래서 환자가 나빠지면 그만큼 의사의 자책감도 크다. 여하간 이 대학생 김군이 자정이 지나 M3로 진단되었다. 하필 그날따라 앉을 자리도 없을만큼 응급실이 북새통을 이루는데, 나는 이 환자에게 침대 자리를 배정해달라고 소리를 지르며 응급실을 왔다갔다 몸과 마음이 부산하였다. 새벽녁에 머리가 좀 아프다길래 CT를 찍었더니 아니나 다를까 몇 시간 사이에 머리에 출혈이 생겼다. 응급실에서 중환자실로 환자를 옮겼다. M3는 출혈이 문제가 되어 seizure를 할 수도 있고 갑자기 인공삽관을 할 일이 생길 수도 있다. 응급실과 중환자실에 김군의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나는 수도 없이 전화하고 협박하고 사정한 결과, 중환자실에 자리를 잡은 김군이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집에 가겠다며 라인을 뽑는 것 아닌가! 내가 약간 환자 자리에서 떨어져 일을 하는 와중에 가족과 간호사들이 환자에게 급성백혈병이니 항암치료가 필요하고 항암치료를 하면 머리카락이 빠진다는 말을 한 것이다. 얌전하던 환자가 갑자기 야수로 변하며 부모님께 반말과 욕을 하고 자기는 머리카락이 빠지면 죽어도 치료안받겠다며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교수님이 중환자실 회진을 오셨는데도 그는 태도를 바꾸지 않았고, 차근차근 설명하시던 교수님도 설명한지 20분이 지나자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언성이 높아지신다. ‘지금 머리카락 빠지는게 문제니? 네가 살고 죽는 문제야. 이런 다른 백혈병과 달라. 항암치료 몇번만 하면 완치될 수있고 그러고 나면 머리카락은 또 자라는 거야. 근데 뭐가 문제니? 왜 항암치료를 안받겠다는 거야? 그깟 머리카락이 대수야?’ 그깟 머리카락이라는 말에 김군은 완전 불량 청년으로 돌변한다. ‘그깟 머리카락이라구요? 나한테 머리카락이 얼마나 중요한지 당신이 알기나 해요?’ 식은 땀이 줄줄 흐른다. 회진 후에 나는 또 대화를 시도해 보았지만 그는 막무가내이다. 자기는 그냥 항암치료 받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서 죽겠다는 것이다. 내 목숨이니 내 마음대로 할 것이며, 머리카락이 빠지는 치료는 죽어도 받지 않겠다며…
Osteosarcoma로 수술 전 항암치료와 수술, 그리고 수술 후 항암치료를 받는 중인 17세 이양. 비쩍 마른 몸, 창백한 얼굴, 환자복을 입고 휠체어로 이동하는 그의 모습이 멀리서도 눈에 띄는 건, 지금 몸 상태와 매우 어울리지 않는 윤기 흐르는, 갈색의 긴 머리 헤어스타일 때문이다. 엄마에게 물어본다. ‘가발이죠?’ ‘네’ ‘너무 치렁치렁하고 거추장스러워 보이는데 짧고 단정한 걸로 가발을 바꾸면 어때요?’ ‘자기는 죽어도 긴머리 가발 써야 한대요.’ 학교 다닐 때 지정한 단발머리 스타일이 너무 싫었다면서 무조건 긴 생머리 가발을 고수한다고 한다. 아직 항암치료 중이라 눈썹도 없고 빈혈 때문에 얼굴도 창백해서 갈색 긴머리 가발이 정말 어색해 보이지만 그녀는 입원하는 동안 매일 치렁치렁한 긴머리 가발을 뒤집어 쓰고 다닌다.
청소년, 청년기의 자아는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지어지는 측면이 강하다. 이들이 손상된 자신의 신체와 외모로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힘든 여정인 가 보다. 변화된 신체 이미지, 자아, 정체성의 재구성은 자기 스스로에게, 그리고 타인과 관계맺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암환자라는 규정(어쩌면 낙인이 되기도 하는)을 극복하고 자아를 유지하고 정의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의사들 혹은 가족들조차 잘 알지 못한다. 스테로이드를 복용하며 달덩이처럼 얼굴이 부었을 때, 매일매일 머리카락이 한 뭉텅이씩 빠져있는 베개를 볼 때, 골룸처럼 민둥머리가 되었어도 아예 밀어버릴 용기가 없을 때, 수술 후 손상된 육체가 자신없어 이성 앞에 나설 용기가 없을 때, 가발을 쓴 채 사람이 빽빽히 들어찬 지하철에서 가발이 벗겨질까, 내 뒤에 선 사람이 내 가발을 눈치챌까 조마조마 할 때, 이들은 삶에 대한 자신의 통제력이 상실되었다고 느끼고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몸은 회복되지만 투병기간 중에 느낀 무력감, 사회적 고립감, 사회심리적 스트레스 등은 오랫동안 남아있을 것이다. 치료의 결과로 남겨진 훼손된 몸, 그것이 이들 젊은 환자들의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 중의 하나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주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이들이 병원 담장 안 치료 중 다른 젊은 암환자들과 친구관계를 맺고 병원 안에서 또 하나의 세상을 만드는 것이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길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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