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36

Research에 관하여

Research에 관하여 나는 지금 이 순간, mode를 완전히 바꾼다. 방금 전까지 혈압이 떨어지는 환자의 central line을 잡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지만, 편집장의 독촉전화를 받고, 할 일이 쌓여있는 병동을 벗어나 숙소로 왔다. 심장내과 1년차로 일한 지 1주일이 채 안된 오늘, 모든 일에 미숙하고 펑크 투성이다. 3년차 선생님은 이제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출 길이 없나보다. 그 얼굴을 보기 민망하다. 그렇게 병동에서 눈치를 보며 일하다가 숙소로 도망쳐 글을 쓴다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다. 사회학과 대학원을 다닐 때 나는 양적 방법론보다는 질적 방법론을 선호했다. 대량의 모집단을 근거로 표본 집단을 선정하여 설문지를 통한 자료의 수집, 그리고 그 자료들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한다는 것은 일개 대..

문의전화를 받다

문의전화를 받다 “선생님, 왜 이 환자에게 이런 antibiotics를 쓴 거죠? Target이 어떤 균주였나요?” “선생님, 이 lab 내놓고 확인한 거 맞아요?” 당직 다음날 오전이면 다른 파트 윗년차 선생님들로부터 이런 전화를 종종 받는다. 이 정도 점잖은 tone으로 질문을 받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모두들 바쁜 아침 회진 준비시간, 목소리에 날이 서 있음이 충분히 느껴지기에 등줄기로 땀이 흐른다. “선생님, 내과 의사 맞아요?” 이 정도쯤 되면 진짜 비참해지고 하루를 시작하기가 싫어진다. 윗년차 선생님들은 내가 밤 사이 당직을 서면서 시행했던 management에 대해 rationale를 캐묻고 대답을 요구한다. 나의 결정에 대해 당당한 대답을 할 때도 ‘드물게’ 있지만, 대개는 기어들어가는 ..

응급실로 돌아온 환자

응급실로 돌아온 환자 내분비내과 1년차 주치의가 되어 처음 받은 편지, A4 용지 가득히 고마운 마음 담아 퇴원하던 날 아침, 환자 보호자가 손수 만든 열쇠고리와 함께 전해주었다. 그 뿌듯함이란! 금요일 그렇게 퇴원한 환자가 일요일 오후 응급실로 찾아왔다. Chest X-ray상 Rt. low lobe haziness, CBC상 WBC 14,000개, 38.5도의 fever, 진단명 pneumonia. 응급실 당직인 동기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뿔싸! 10일전 새벽, 환자는 의식이 없고 당시 check한 혈당이 38mg/dl로 응급실 내원하였다. 꽤 두꺼운 old chart. 2002년에 SLE 진단받아 면역억제제를 쓰고 있었고, 2000년 이후 general we..

의사와 간호사

의사와 간호사 여자끼리라서 그럴까? 간호사들은 첫눈에 대략 나에게서 아줌마 냄새를 맡는 것 같다. 별로 단정하지 않은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교복처럼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 ‘아줌마스러운’ 외양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거겠지’라며 내심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병동 간호사들이 나에게는 크게 무례히 굴지 않는다. 나도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별로 열받지 않고 ‘사이좋게’ 일하며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 저기 중환이 있어 왔다갔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BP 떨어진 환자에 대해 volume loading을 한 후 300cc 들어가면 BP 재서 notify해 달라고 하면 ‘그런 건 선생님이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톡 쏘아붙이는 간호사를 만나면 억장이..

박쥐처럼 지낸 1년

박쥐처럼 지낸 1년 지난 1년 내내 나는 크게 두 갈래의 길을 저울질하며 지내왔다. 의료사회학에 대한 나의 애정, 이 분야 연구에 대한 욕심, 완성되지 못한 박사학위논문 등 ‘사회과학자’로서의 나, 그리고 병원에서 만나는 환자들과의 관계, 한국 의료제도의 비효율성, palliative medicine과 totally comprehensive care에 관심이 많은 ‘의사’로서의 나. 나를 아는 사람들 혹은 청년의사 애독자들의 평을 종합해보면 ‘내 사고의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 같다’, ‘점점 의사가 되어가는 것 같다’는 것이다. 의사들이 내 글을 재미있어 한다면, 자신도 겪어왔던 인턴시절의 추억이 묻어나거나 의사가 아니면 이해할 수 없을 법한 심정이 제대로 표현되어서 그럴 것이리라. 의사가 아닌 사..

과연 주치의 일기를 쓸 수 있을까?

과연 주치의 일기를 쓸 수 있을까? “내가 1년 전에도 이랬어?” “아니, 너 의사 다 됐다.” 나는 ‘아주 가끔 만나는’ 남편과 병원에서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에 대해 대화를 나눈다. 남편은 내가 병원에서 발견하는 불합리한 일들, 내가 잘못해서 상황이 악화된 일들, 환자와 보호자, 동료 및 선후배 의사, 병동 간호사들과 있었던 온갖 해프닝들에 대해 마음 터놓고 의논할 수 있는 사람이다. “당신은 좋겠다.” “왜?” “전문의니까.” 나의 대답에 어찌나 껄껄대며 웃는지. 나의 모든 일상을 이해해주고 조언해주고 때론 같이 흥분하며 동조해주는 남편이 정말 고맙다. 그와의 대화에서 지난 1년간 나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내가 무엇에 대해 분개하는지, 무엇을 참을 수 없어 하는지, 무엇을 변화시켜야 하는지, 그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