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로 돌아온 환자
내분비내과 1년차 주치의가 되어 처음 받은 편지, A4 용지 가득히 고마운 마음 담아 퇴원하던 날 아침, 환자 보호자가 손수 만든 열쇠고리와 함께 전해주었다. 그 뿌듯함이란!
금요일 그렇게 퇴원한 환자가 일요일 오후 응급실로 찾아왔다. Chest X-ray상 Rt. low lobe haziness, CBC상 WBC 14,000개, 38.5도의 fever, 진단명 pneumonia. 응급실 당직인 동기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뿔싸!
10일전 새벽, 환자는 의식이 없고 당시 check한 혈당이 38mg/dl로 응급실 내원하였다. 꽤 두꺼운 old chart. 2002년에 SLE 진단받아 면역억제제를 쓰고 있었고, 2000년 이후 general weakness, uncontrolled sugar, pneumonia 등으로 1년에 2∼3차례 입원을 반복했다.
3일간 응급실에 있다가 겨우 일반병실로 올라왔다. 자가식으로 불규칙하게 밥을 먹고 24시간 형광등 불빛 아래서 숙면을 취할 수도 없는 응급실. 옆 침대에서는 수시로 alarm이 울려대고 다른 옆 침대의 환자는 피를 뿜어대는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환자는 응급실 내내 혈당이 들쭉날쭉 엉망진창이었다.
6인실을 배정받아 마음이 편해서였는지, 일반 병실로 올라오자마자 혈당도 안정화되고 얼굴 가득한 malar rash도 잦아들어 편안해 보였다. 주치의 초반인 만큼, 나는 시간이 되는대로 환자의 질문에 설명도 해주고, 검사를 하게 되면 이 검사는 왜 하는지,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에 대해 꼬박꼬박 알려주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런데 환자는 이미 병원생활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이런저런 요구가 많았다. 자리가 입구 쪽에 있어 밤에 잘 때 춥다, 암 환자와 같은 방에 있고 싶지 않다, 목이 칼칼한데 가습기 같은 건 줄 수 없냐, 대략 어느 정도 당뇨 합병증이 진행된 것 같으냐, 지금 쓰고 있는 인슐린보다 좋은 인슐린을 쓰면 저혈당이 안 오는 거냐…. 내가 설명 혹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때론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회진 준비 시간이 소모되기도 했다.
혈당 조절이 잘 되어 퇴원을 앞둔 시점, 환자는 마른기침을 호소했다. 체온은 37.4도. 청진상 lung sound clear. 나는 2시간 간격으로 이틀간 체온을 측정하게 하였고 대략 36.5도 근처로 체크되어 추가적인 CBC나 chest X-ray를 시행하지 않았다. 물을 많이 마시고 기침을 잠재울 수 있는 가벼운 약을 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가 찜찜해서였는지 퇴원약으로 먹는 항생제를 1주일치 주기는 했다.
그렇게 퇴원한 그가 폐렴으로 3일만에 응급실로 다시 온 것이다. 그때 피검사도 하고 X-ray도 찍어봤어야 했는데…. Underlying SLE가 있고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라면 더 민첩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환자에게 더 이상 뭔가를 설명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있었다. 퇴원 ‘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나의 오만함에 환자가 대형 펀치를 날린 셈이다.
다시 응급실로 입원한 그 환자는 5일이나 응급실에서 고생을 하다가 2인실로 입원해 내가 처방한 먹는 항생제에 IV 항생제를 더하여 치료받고 퇴원하였다.
다시 응급실에 오던 날과 퇴원하는 날, 나는 그 환자를 찾았다. 여전히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지만, 내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환자를 그렇게 고생시키고 나서야, 나는 f/u lab이 왜 중요한지, 다른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를 볼 때 혈당만 체크하고 인슐린만 조절하는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되었다. 내 핸드폰에 매달린 열쇠고리를 볼 때마다 지금 이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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