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의사와 간호사

슬기엄마 2011. 2. 27. 21:58

의사와 간호사

 

여자끼리라서 그럴까? 간호사들은 첫눈에 대략 나에게서 아줌마 냄새를 맡는 것 같다. 별로 단정하지 않은 머리, 화장기 없는 얼굴, 교복처럼 늘 같은 옷을 입고 다니는아줌마스러운외양 때문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거겠지라며 내심 스스로를 위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병동 간호사들이 나에게는 크게 무례히 굴지 않는다. 나도 웬만한 일에 대해서는 별로 열받지 않고사이좋게일하며 지내는 편이다.

하지만 여기 저기 중환이 있어 왔다갔다해야 하는 상황에서 BP 떨어진 환자에 대해 volume loading을 한 후 300cc 들어가면 BP 재서 notify해 달라고 하면그런 건 선생님이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라며 톡 쏘아붙이는 간호사를 만나면 억장이 무너진다
.

의사와 간호사, 특히 인턴과 간호사 사이의 업무 분담에 대해서는 이론적으로 현실적으로 수많은 논쟁과 갈등이 있어 왔다. 의사와 간호사, 혹은 의사와 paramedical person과의 관계는 의료사회학의 고전적인 주제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19세기 후반, 현대의학의 태동기부터 의사는 이발사와의 신분적 독립성과 권위를 인정받기 위해 medicine이란 무엇이며 physician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인정투쟁을, 간호사는 medicine과의 차별적 지위를 인정받기 위해 nursing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환자의 well-being에 기여하는가를 주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NEJM이나 JAMA에서 의사의 professionalism이란 무엇이며 이를 위해 의사들이 어떤 책임감과 실천을 행해야 하는가가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

1987
, 각 분야에서 민주화의 봇물이 터지던 시절, 노동자들은 민주노조의 기치를 내걸고 집단화되었다. 간호사들은 병원노조를 통해 nursing profession이 아닌 labor로 자기 규정을 한 측면이 강하다. 물론 labor profession의 개념 자체가 등치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간호사의 main job이 환자에 대한 nursing, total care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환자에 대한 최선의 간호란 무엇인가, 간호 고유의 업무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할 것인가, 의사와는 어떤 방식으로 협력적인 관계를 맺을 것인가에 대해 보다 전문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

의료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업무들은이 일은 의사가, 저 일은 간호사가라고 명시적으로 규정하기에 너무나 다양하다. 그러나 의료 행위는의사의 지시감독 하에이루어져야 한다는 의료법상의 문구가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의 발목을 잡아 왔기 때문에 의사의 시선은 날카로울 수밖에 없는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
.

학생 실습 때 한 교수님께서 아침 회진을 돌다가 간호사의 실수를 발견하고 지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 환자는 이러이러한 상태이기 때문에 어떠한 manage가 이루어졌어야 하고 간호사는 어떤 측면을 책임감 있게 수행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해 아쉽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뉘앙스의 얘기를 감정적이지 않고 차분하게, 그리고 듣는 사람이 자존심 상하지 않게 전달하는 모습을 보며 나도 의사가 되어 병동에 서면 저렇게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

병동에서 세련된 방식으로 간호사를 대하며 우아하게 일하는 동료도 있고 자기 분을 이기지 못해 쉽게 감정을 폭발하며 우격다짐 식으로 일하는 동료도 있다. 나는 아마도 그 스펙트럼상의 어디엔가 있겠지. 의료진의 독립적인 구성원으로서 각자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고 서로에게 예의바른 태도를 보이며 일해야 한다는 상식적인 명제에 대해 한국 의료의 열악함을 이유 삼는 것은 젊은 의사가 둘러대는 변명치고는 너무 허술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