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응급실로 돌아온 환자

슬기엄마 2011. 2. 27. 22:00

응급실로 돌아온 환자

 

내분비내과 1년차 주치의가 되어 처음 받은 편지, A4 용지 가득히 고마운 마음 담아 퇴원하던 날 아침, 환자 보호자가 손수 만든 열쇠고리와 함께 전해주었다. 그 뿌듯함이란!

금요일 그렇게 퇴원한 환자가 일요일 오후 응급실로 찾아왔다. Chest X-ray Rt. low lobe haziness, CBC WBC 14,000, 38.5도의 fever, 진단명 pneumonia. 응급실 당직인 동기로부터 그 이야기를 듣는 순간,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뿔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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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 새벽, 환자는 의식이 없고 당시 check한 혈당이 38mg/dl로 응급실 내원하였다. 꽤 두꺼운 old chart. 2002년에 SLE 진단받아 면역억제제를 쓰고 있었고, 2000년 이후 general weakness, uncontrolled sugar, pneumonia 등으로 1년에 2∼3차례 입원을 반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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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응급실에 있다가 겨우 일반병실로 올라왔다. 자가식으로 불규칙하게 밥을 먹고 24시간 형광등 불빛 아래서 숙면을 취할 수도 없는 응급실. 옆 침대에서는 수시로 alarm이 울려대고 다른 옆 침대의 환자는 피를 뿜어대는 사이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이 환자는 응급실 내내 혈당이 들쭉날쭉 엉망진창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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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실을 배정받아 마음이 편해서였는지, 일반 병실로 올라오자마자 혈당도 안정화되고 얼굴 가득한 malar rash도 잦아들어 편안해 보였다. 주치의 초반인 만큼, 나는 시간이 되는대로 환자의 질문에 설명도 해주고, 검사를 하게 되면 이 검사는 왜 하는지, 결과가 이렇게 나왔는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등에 대해 꼬박꼬박 알려주는 좋은 의사가 되고 싶었다
.

그런데 환자는 이미 병원생활의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듯, 이런저런 요구가 많았다. 자리가 입구 쪽에 있어 밤에 잘 때 춥다, 암 환자와 같은 방에 있고 싶지 않다, 목이 칼칼한데 가습기 같은 건 줄 수 없냐, 대략 어느 정도 당뇨 합병증이 진행된 것 같으냐, 지금 쓰고 있는 인슐린보다 좋은 인슐린을 쓰면 저혈당이 안 오는 거냐…. 내가 설명 혹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해결할 수 없는 것도 많았다. 때론 하소연을 들어주는 것만으로 회진 준비 시간이 소모되기도 했다
.

혈당 조절이 잘 되어 퇴원을 앞둔 시점, 환자는 마른기침을 호소했다. 체온은 37.4. 청진상 lung sound clear. 나는 2시간 간격으로 이틀간 체온을 측정하게 하였고 대략 36.5도 근처로 체크되어 추가적인 CBC chest X-ray를 시행하지 않았다. 물을 많이 마시고 기침을 잠재울 수 있는 가벼운 약을 주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가 찜찜해서였는지 퇴원약으로 먹는 항생제를 1주일치 주기는 했다
.

그렇게 퇴원한 그가 폐렴으로 3일만에 응급실로 다시 온 것이다. 그때 피검사도 하고 X-ray도 찍어봤어야 했는데…. Underlying SLE가 있고 면역억제제를 복용하는 환자라면 더 민첩하게 대처했어야 했는데
….

솔직히 말하면 나는 그 환자에게 더 이상 뭔가를 설명하는 것을 귀찮아하고 있었다. 퇴원시키고싶었던 것이다. 나의 오만함에 환자가 대형 펀치를 날린 셈이다
.

다시 응급실로 입원한 그 환자는 5일이나 응급실에서 고생을 하다가 2인실로 입원해 내가 처방한 먹는 항생제에 IV 항생제를 더하여 치료받고 퇴원하였다
.

다시 응급실에 오던 날과 퇴원하는 날, 나는 그 환자를 찾았다. 여전히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지만, 내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환자를 그렇게 고생시키고 나서야, 나는 f/u lab이 왜 중요한지, 다른 질환을 갖고 있는 환자를 볼 때 혈당만 체크하고 인슐린만 조절하는 의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게 되었다. 내 핸드폰에 매달린 열쇠고리를 볼 때마다 지금 이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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