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레지던트일기 36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일하다 보면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영 마음에 거슬리는 때가 있다. ‘과연 이런 사람도 같이 일하는 의사라고 말할 수 있는지’ 회의적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1년차라서 나에게 이렇게 함부로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괜한 자격지심일까? 여러 환자들, 특히 노인 환자들은 여러 과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환자를 두고 consult나 transfer 등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내 환자 때문에 다른 과 의사들과 접촉하면서 부탁도 하고 문의도 하는 일은 다반사다. 불행히도 아직 1년차라 그런지 내가 다른 과 의사들의 청탁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러 과의 의사들을 접촉하다 보면 의사들간에 서로 예의를 갖..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병원의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아파 고통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도 좀 바쁘게 돌아다니고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검사든 교육이든 하루 스케줄이 있어서 나름대로 병원에서의 시간표를 운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내 꿈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에 ‘이 환자는 오늘 무슨 검사를 하면 다음에는 무슨 검사를 해 보고 결론을 내린 후, 치료는 어떻게 결정하고…’ 이런 plan을 가지고 입원 환자를 보게 되지만, 치료가 어려운 일부 만성질환자들에게는 이런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의사들은 그런 환자들을 ‘해줄 게 없는’ 환자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예전부터 의사들이 ‘해줄 게 없다’는 표현을 하..

슬기엄마, 입원하다

슬기엄마, 입원하다 닷새 밤낮을 sore throat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참다가 감염내과 외래를 찾았다. Peritonsilar abscess. Neck CT에서 abscess는 상당히 크고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더 진행될 경우 airway obstruction으로 tracheostomy가 필요할 수도 있고 brain abscess로 진행할 수도 있는, 흉측한 morphology였다. ENT에서 daily I&D를 할 필요도 있고 IV antibiotics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abscess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음식도 넘기기 힘들어 나는 입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일하던 16층 병동에 입원하고 counter가 내 주치의가 되었다. ‘꼭 우리 병동에 입원해서 다른 신환의 입원이라..

양심과의 싸움

양심과의 싸움 지금은 밤 11시 40분, 중환자실. 오늘 새벽 2시에 걸어서 응급실에 온 환자가 intubation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 하루 종일 이 환자 때문에 응급실을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다 보내고, 병동 환자는 제대로 못봤다.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환자 옆을 지키고 앉아 inotropics를 조절하고 SaO2가 변하는 걸 보며 어떤 ventilator setting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그나마 여기서라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환자에게 감사하며. 하지만 지금 응급실에 있는 또 다른 환자도 만만치 않아서 inotropics를 증량하고 있는데도 BP가 오르지 않고 urine output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call이 오고 있다. 빨리 내려가 보아야 한다. 병동 환자를..

1년차, 여름휴가 맞이하다

1년차, 여름휴가 맞이하다 1. 휴가 초반 3~4일은 잠을 자도 계속 병원 꿈을 꾼다. 나의 malpractice로 인해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괴로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2. 나 대신 병동을 지키며 everyday 당직을 서는 counter 1년차가 자꾸 전화를 해서 고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진다. 3. 휴가 5일째 저녁부터 병원에 돌아갈 생각을 하며 뭘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병원으로 복귀하기 위한 가방을 챙기고 나서야 안심하게 된다. 4.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외출시 허둥대며 시간을 낭비한다. 바뀐 버스 노선표, 은행업무, 언제 분실했는지 모르는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의 재발급 등 잡무를 처리하는 나의 동선이 무질서하게 해체되고, 일 하나 처리하는 데 몇 번의..

사망 기록지

사망 기록지 “이 환자 EKG flat 남은 거 없어요?” “아까 사망 시간을 몇 시로 했었죠?” “본적은 어딘가요? 사망진단서는 몇 통 필요하대요?” 환자가 expire하고 나면 주치의는 할 일이 많다. 일단 expire 선언을 하고 나면 가족들에게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 조의를 표한 다음, 잽싸게 station으로 나와 선행사인, 중간사인, 직접사인을 스태프 선생님께 확인 받아 사망진단서도 작성하고, expire note를 쓰기 위해 환자의 chart도 잘 챙겨두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expire한 순간에 병동에서 expire note를 써야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Expire note 마지막에 붙여야 할 flat EKG를 챙기는 일을 잊으면 mortality 발표가 있는 의국회..

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오 주여, 저는 어찌하오리까? Term change. 오 주여, 저를 굽어살피소서. 과연 언제쯤 term change 때의 이 중압감을 벗어날 수 있을까? 나는 오늘로 7일째 constipation에 시달리고 있다. MgO 6T #3, alaxyl 1pack을 daily로 복용하고 있지만 이미 모두 돌처럼 굳어버렸나 보다. 나는 이제 1년차의 세 번째 term을 맞이하였고, 혈액종양내과에서 일하는 나흘째다. 나는 아침에 Chest X-ray를 보며 환자 presentation을 제대로 못해 꾸중을 들었다. 정확한 medical terminology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기를 몇 차례, 선생님의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고 어물거리기를 몇 차례, 그런 나의 허점이 선생님의 심기를 건드렸던지 언성이 몇 번..

기흉을 만들던 순간

기흉을 만들던 순간 내과 1년차라면 vital sign을 잡아야 한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었건만, 사실 나에게는 그럴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환자들 대부분의 vital sign이 stable한 내분비내과에서 첫 3개월, 그리고 조금이라도 중환이 될 것 같으면 CCU로 자리이동을 하는 심장내과에서 그 다음 2개월째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제, 나는 응급실에서 NSTEMI환자와 맞닥뜨렸다. 괜찮던 환자가 갑자기 혈압이 떨어지자 나는 윗년차 선생님께 notify한 후 당당히 Rt. subclavian catheter insertion을 하려 했다. 항상 procedure를 시작하기 전에는 왜 이 시술이 지금 필요한지, 어떤 기대효과가 있는지, 발생 가능한 합병증은 무엇인지 한참을 설명하고 환자와..

새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새 병원에서 일한다는 것은 여러 일간지와 방송에도 소개됐지만, 세브란스병원이 새병원을 짓고 이사를 했다. 무릇 단칸방 이사 한번 하는 데도 가족들은 신경이 날카로워지는 법이다. 며칠 동안의 어수선함과 고생을 감수해야 함은 물론이다. 하물며 중환자실이 이동하고 1,000명 이상의 환자가 자리를 다시 잡고 기존의 일부 병동을 폐쇄하는 등의 하드웨어의 변화와 함께 간호인력의 충원, 외래 및 입원환자 진료 체계의 변화 등 소프트웨어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짐이랴. 밖에서 보듯 근사한 새 건물로 가서 폼나게 일하는 생활과는 거리가 멀다. 아직 정식 open을 못하고 있는 EMR system 때문에 모르긴 몰라도 병원의 높으신 분들은 여간 마음이 쓰이는 것이 아닌 듯하다. 수 차례 리허설을 하지만 자꾸 에러가 발생하니..

배고픈 1년차가 사는 법

배고픈 1년차가 사는 법 나는 끼니를 놓치지 않고 챙겨 먹는 편이다. 꼭 밥이 아니라도 배를 채우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원래 성격도 너그럽지 못한데 hypoglycemic해지면 의욕도 없고 우울해지고 쉽게 짜증이 나는 편이기 때문에, 나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배를 채워 마음을 여유 있게 해줘야 한다는 철칙을 갖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 철칙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일을 하다보면 끼니를 놓치기 일쑤라서, 뭔가 눈앞에 있으면 일단 먹어야 한다는 근성(!)이 생기고 있다. 일단 각종 conference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30분 이내로 금방 끝나거나 과 내부적인 집담회에는 먹을거리가 제공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밥을 주는 conference는 꼭 챙긴다. 내가 속한 과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