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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그런게 아니었어요

전이성 유방암으로 3년째 치료 중인 그녀.처음 재발을 진단받았을 때 항암치료를 여섯번하고 지금은 호르몬제를 먹고 있다. 그녀는 좀 무뚝뚝한 편이다.진료할 때 별 말을 안한다.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폐경기 증상이 심하게 나타났다. 자기 말 잘 안하는 사람이 폐경기 증상 참는거 힘들어 보였다. 처음보다는 많이 적응이 된 것 같지만 자고 일어나면 손발이 뻣뻣하고 온 몸이 굳어지는 느낌 때문에 아침이 너무 힘들다고 한다. 이약 저약 시도해 보았지만 별로 효과가 없었다. 얼마전 뼈 병변이 나빠져서 호르몬제를 바꾸었다. 환자는 안정적인 상태로 2년 이상 같은 약을 쓰다가 약을 바꾼다고 하니 내심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래도 나에게는 별 말을 안한다. 바꾼 호르몬제는 좀 어떠세요?관절아픈게 더 심하지는 않나요? 비..

그때랑 느낌이 비슷해서요

토요일 외래를 찾아온 40대 중반의 여자 환자. 한달전 담당 주치의 외래를 다녀갔고, 7월초에 종합검사도 다 잡혀있는데오늘같은 토요일은 일반 진료라 주치의를 만날 수 없다는 것도 알면서 외래 진료에 오셨다. 5년 전에 위암을 진단받았을 때 병이 많이 진행된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을 듣고 수술을 했는데 수술 후 조직검사 결과를 보니 복막과 위 주변 장기도 침범이 있어 처음부터 4기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항암치료를 하였다.일단 보이는 병은 다 제거했고 항암치료도 할만큼 했다.그러나 2년이 채 안되었는데 난소에서 재발하였다.난소 제거술을 하고또 항암치료를 하였다.난소 수술 부위가 국소적으로 또 재발하여방사선 치료를 하였다.보통의 4기 위암 환자들이 항암치료를 주로 받는 것에 비해 재발을 했는데도 수술과 방사..

Genomics 와 Hospice

오늘은 우리병원 에비슨 심포지엄이 있는 날이다. Personalized medicine : individualized strategy for diagnosis and treatment 때가 때이니 만큼 화두가 되고 있는 Genomic study 와 관련된 논의가 많다. 세포주(cell line)나 동물 실험결과로 유추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환자 조직을 얻어 sequencing 을 하면 그 사람의 유전자 변이를 다이렉트하게 알 수 있고 그 중 가장 핵심적인 유전자 변이가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타겟으로 하는 약이 있다면 그 약으로 환자를 치료함으로써 개별화된 치료전략이 가능할 것이라는 점에서 Genomics 는 진정 맞춤형 의료의 동반자적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최근 서너달 동안, 유전체 연구에 대해 ..

회진 중 임종

아침 회진을 가니수축기 혈압이 80mmHg 이다.몇일전 입원하신 후로 밤에는 수면제를 드리고 있다. 6-8시간 정도 주무시게 한다.토하느라고 잘 못 드시니 무조건 자는 것이 환자에게 필요했다. Terminal sedation. 숨쉬는 것이 어제와 다르다. cheyne-stroke pattern. 맥박을 짚어보고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소리가 아주 약하다. EMR 상에서는 아침 맥박이 120회 정도였는데 지금 내가 손목을 잡아보니 60회도 안되는 것 같다. 다시 혈압을 재 본다. 70mmHg. 내 눈앞에서 환자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게 느껴진다.내 또래 환자의 딸과 함께 임종을 기다린다. 사실 기다렸다기 보다는 순식간에 다가와 버렸다. 청진하고 동공도 비춰보고 맥박도 짚어보고 꼬집어서 통증반응도 확인하고뭐 ..

원발미상암, 진단명이 뭐 그래요?

진단명 원발미상암 72세 할아버지, 몇달째 허리 아픈게 낫지 않아 신경외과로 오셨다. 아픈 곳을 중심으로 척추 MRI를 찍어 보니 척추 곳곳에 전이가 된 암병변이 의심되었다. 그 중 일부 척추에 골절이 오면서 신경이 눌렸는지 다리도 저리고 걷지도 못하고 진통제를 써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았다. 한두군데 병이 있는게 아니라 너무 병변이 넓어서, 속히 원발암을 진단해서 원인이 되는 암에 따라 항암치료를 하는게 필요하였다. PET-CT에서 뼈 이외의 다른 곳은 이상한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뼈에서 조직검사를 하였다. 뼈 조직검사는 딱딱한 뼈에서 칼슘을 빼고 조직을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조직검사보다 조직을 처리하고 염색하여 결과를 보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아프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

환자가 미워질 때는 '리셋'해 보자

우리 환자들이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난 가끔 환자를 미워한다.아주 미울 때가 있다.회진가기도 싫고 얘기하기도 싫다.마음속으로 그렇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게 티가 날지도 모른다.내가 워낙 성격이 욱 하니까. 난 감정을 잘 숨기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날 위선자라고 하지는 않겠지? '인간이면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합리화한다. 그러나 내 직업이 의사인 이상,마음 속으로 환자가 미울지언정 - 마음 속으로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으려면 종교적인 힘이 필요-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고 최소한 그렇게 환자를 미원하는 자신을 반성할 줄은 알아야 한다.그것은 본성이 아니고 훈련과 교육에 의해서 습득되어야 하는 직업..

쌍동이 언니의 마음

쌍동이 동생은 유방암 치료 중이다.몇년 전에 수술을 했는데 2년 만에 재발했다. 재발 후 첫 치료로 항암치료를 하다가 탁솔 독성으로 손발저림이 심하고 몸이 많이 부어서 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호르몬 치료를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늑막이 다시 두꺼워 지는 양상이다. 그래서 지금은 먹는 항암제로 치료하고 있다. 늑막 전이 양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지금 항암제는 다행히 큰 부작용이 없지만 손발이 자꾸 트고 갈라진다. 좀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녀는 탁솔 맞을 때 다 빠진 머리가 이제 많이 자랐다며 뿌듯해 한다. 요즘은 내 머리 길이랑 비슷하다. 젊다 못해 어린 그녀. 여러 불편한 점들이 많을텐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늘 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마음 속으로 절대 흔들리지 않으리라 굳..

K 선생님께

K 선생님께 오늘 병동을 지나다가선생님이 봐 주고 계신 유방암 뇌전이 환자 S 씨와 그 남편을 만났어요. 이 환자가 입원한지 몇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네요. 안 그래도 엊그제 문득 제가 선생님께 전과보낸 이 환자 생각이 나서 선생님 입원환자 명단을 띄워봤더니 명단에 없길래 퇴원을 하셨나? 좋아져서 퇴원하신건가? 아니면 더 이상 좋아질거 없어서 퇴원하신건가? 불안했지만, 당장 내 앞에 있는 환자 문제가 아니라 잠시 걱정하다가 잊고 말았습니다.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고 표적치료를 하는 긴 시간 동안 제가 환자 진료를 담당했었는데 표적치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뇌전이가 진단되면서 순식간에 주치의가 선생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제 의무기록을 보니, 환자가 서너달 전에 밤에 목이 말라서 물을 많이 마신..

큰 박수를 드립니다

오늘 근사한 졸업식을 해드렸어야 했는데... 진단받고수술받고항암치료하고방사선치료하고그렇게 치료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5년이 넘었다. 다른 암 같으면 치료 후 5년이 지난 경우 사망율이 일반 사람들의 사망율과 같다고 하여 5년까지 암이 재발을 안하면 '완치'되었다는 말을 한다.그렇게 5년을 무사히 넘기신 환자들이 오늘 외래에 많았다. 유방암은 전체적으로는치료 후 2-3년을 기점으로 하여 재발의 폭풍이 몰아친다. 그리고 5년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그리고는 대개는 잠잠해지지만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환자들은 전체적으로 예후가 좋으면서도 아주 뒤늦게도 재발할 수 있어 경계심을 완전히 늦출 수 없다.삼중음성유방암은 3년을 넘어가면 잘 재발하지 않는다.HER2 양성 유방암도 초반을 잘 넘기면 재발하지 않지만 HER2..

유방암 환자 촌지에 대한 고찰

첫 환자가 나랑 동갑내기, 2년째 호르몬 치료를 하고 있다. 그녀는 항상 엄마랑 같이 병원에 오는데, 외래 진료실 앞에서 이들 모녀는 늘 티격태격한다.40 먹은 딸과 70 먹은 엄마.둘다 neurofibromatosis. 추가적인 검사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오늘 엄마가 촌지로 윌 10개들이 한박스를 나에게 선물로 주고 가셨다. 아침도 시원치 않게 먹었는데, 오전 진료를 보는 내내 저 박스를 뜯어서 두개 정도 한꺼번에 마시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진료를 보아야 했다. 환자는 처음부터 폐전이, 뼈전이 상태로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2년째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아직 유방에 만져지는 덩어리가 있다. 그래도 변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