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경희 1. 진단 1. 너 유방암이래

진단 1. 너 유방암이래 헤어진 연인을 아프지 않고 좋은 추억으로 회상하는 데에 1년이면 충분할까? 처음 유방암 진단받던 날을 슬프지 않게 ‘과거’의 일로 회상하는 데에는 1년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다. 지금도 진단받기까지의 과정들이 생생하게 생각나고, 가끔 잠을 설치는 날에는 꿈속에서 유방암을 진단받고 치료받던 그 시간들이 되살아나 흠칫 놀란다. ‘잘 견디고 있다.’ ‘난 괜찮아’라며 스스로에게 하는 다짐이 결국 남에게 나를 보이기 위한 치기어린 자신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2008년 10월, 내과 레지던트 1년차 생활이 이제 슬슬 손에 익어가고 병원 생활에도 자신감이 생기던 즈음이다. 어느 날 아침 속옷을 입다가 가슴을 스치는데 무언가 덩어리가 만져졌다. 메추리알 만한 크기..

환자들에게 궁금한거 물어보세요 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암 치료 중인 환자들에게 이것저것 설명해주고 나면 나는 환자들에게 질문한다. "더 궁금한 거 있으세요? 의사의 질문에 10명 중 9명의 환자들은 "*** 먹어도 되나요?" "***를 보니 ***가 몸에 좋다는데요" 라는 질문을 한다. 먹는 것에 대한 질문이 주를 이룬다는 뜻이다. 왜 환자들은 먹는 것을 주로 물어볼까? (심한 경우 먹는 것에 집착하는 환자들도 있다) 우리나라 환자들이 주로 먹는 것에 대한 질문이 많다는 게 의사들의 느낌이다. 이렇게 묻는 환자도 있다. "항암치료 기간 중에 제가 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야속하게도 환자분이 스스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첫째는 면역력이 떨어져서 쉽게 감염이 될 수 있으니 개인 위생에 철저해야 겠어요. 음식을 드시고 나면 ..

유방암에 대해 궁금하신 점...

유방암에 대해 궁금하신 점 있으면 socmed@bravomybreast.com 으로 메일 보내주세요. socmed@yuhs.ac 로 보내셔도 되구요. 이 글 아래로 댓글을 다셔도 되겠습니다. 유방암으로 항암치료 중인 분이 있다면 부작용을 관리하는 방법을 상의하셔도 좋겠습니다. 환자들과 보다 효과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노력중입니다. 질문 많이 해주세요. 이수현

내 이름으로 개설된 외래를 시작하며

3월 2일부터 내 이름으로 외래를 개설하게 되었다. 아직 입원환자는 2명, 외래 환자도 별로 많지 않다. 외래 환자들도 상황을 보아하니 자기 다음번에 기다리는 환자가 별로 없는 것 같으니 이것저것 사소한 것도 많이 물어본다. 나도 마음의 여유가 있으니 안정적으로 치료가 유지되고 있는 환자들에게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냐'는 여유로운 질문을 할 정도이다. 은근히 환자들의 직업이 다양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치료를 잘 해서 안정적으로 오래 잘 사시게 해드리고 이들로부터 '재능기부'를 받아서 다른 환자들에 도움이 되는 일을 부탁하면 어떨까 하는 호사스런 생각도 해본다. 오전 오후 외래가 100명을 육박하는 교수님 외래에서는 CT를 찍고 온 환자가 결과를 들으러 왔을 때 병이 나빠졌다는 말을 주치의가 하면 ..

마지막 일기

마지막 일기 2004년 4월, ‘슬기엄마의 인턴일기’가 시작된 이후 ‘주치의 일기’로 이름을 바꾸면서 만 4년 가까이 연재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동안 제 글을 읽고 댓글을 통해, 또 직간접적으로 의견 주시고 관심을 가져주신 많은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줌마 인턴으로 시작한 저는 내과 의국 내 최고령자로 3월이면 4년차 치프가 되고, 제가 병원 생활을 시작할 때 초등학교에 입학한 슬기는 어느덧 5학년이 되어 인터넷으로 MP3를 다운받아 듣는 것을 좋아하는 청소년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어느 때부터인가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그럴수록 내가 살아온 시간을 돌아보며 초조함과 부끄러움이 쌓여가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하루가 되어야 한다는 계몽주의의 담론에 ..

병원으로 호적을 옮겨서라도 간호할껴

병원으로 호적을 옮겨서라도 간호할껴 “아이구, 속이 쓰려. 왜 이렇게 속이 쓰린겨?” “위장 보호하는 약을 여러 가지로 쓰고 있는데도 그렇네요. 보험이 안 되더라도…(Proton pump inhibitor를 한번 써볼까요?)” 갑자기 할아버지가 내 말을 막으며 나를 병실 밖으로 끌어낸다. “선생님, 비보험으로 약 쓴다고 하면 우리 할망구가 약 안 쓴다고 그려. 그러니 암말 말고 내가 싸인헐 텐게 그냥 줘. 비보험이라도 속 풀리는 데 도움이 되면 써야지.” 말기 환자들의 고통 내가 요즘 주로 보는 위암 환자들은 말기가 되면 대개 복막으로 암이 진행되어 암종증의 상태가 되며 이로 인해 장 폐색이나 장 마비가 오는 경우가 많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오고 물 한 모금만 마셔도 토하기 때문에 결국 L-tube를 꽂..

Even if I Don’t Know What I’m Doing

Even if I Don’t Know What I’m Doing 우리 병원은 지난 주부터 4년차 레지던트들이 전문의 시험 공부를 위해 환자 진료에서 한걸음 물러나고 3년차들로 책임 업무가 넘어오게 되었다. Subspecialty를 정하는 과정에서 이리 저리 마음 휩쓸리고 감정 소모도 많았는데, 마음을 다잡을 여유도 없이 한 파트의 치프가 되어 순식간에 중차대한, 그리고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잡일까지도 해결해야 하는 만능일꾼으로 변할 것을 요구한다. 일 하는 건 그렇다 치자. 학생 실습 때 몇 번 발표해 본 이후로 공식적인 발표를 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는데 갑자기 내가 담당해야 하는 저널 발표나 conference가 많아진다. 준비할 시간이 별로 없다 해도 언제든 발표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연세의료원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연세의료원 노조 파업의 현장에서 우리 병원 노조의 파업이 벌써 일주일을 넘겼다. 어제는 요로감염으로 응급실에 온 환자를 외부 병원으로 전원하였다. 7년 전 우리 병원에서 루프스를 진단받고 3년 전에는 CNS까지 involve되어 힘겹게 회복한 병력이 있는 환자다. 한 달에 한 번씩 혹은 보름에 한 번씩 꼬박꼬박 외래에서 추적관찰 중인 이 환자를 위해 길고도 구질구질하게 소견서를 작성하였다. 이 사람의 disease activity를 시사하는 symptome and sign은 무엇이었는지, disease activity가 증가하면 어떤 치료를 해서 효과가 있었는지, 최근 스테로이드 용량은 어떻게 조절하고 있었는지, 마지막 균 배양 검사에서 어떤 균주가 자랐으며 어떤 항생제에 민감성이 높았는지…. 세세한 검..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다

병원이라는 렌즈를 통해 세상을 보다 의료사회학을 처음 공부하며 논문을 통해 접한 ‘병원은 일종의 소우주’라는 표현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병원이라는 하나의 단위 조직 내에서, 우주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어떤 일도 다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리라. 그리고 내가 직접 이 거대한 대학병원 안에서 실습을 도는 의대생으로, 음지에서 일하는 인턴으로, 환자를 둘러싼 모든 시공간에서 총대를 메야 하는 내과 1년차로 일하며, 그 표현은 참으로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때는 내 생활과 사고, 기쁨과 슬픔의 정서, 그 모든 것이 병원 안에서 이루어졌고 병원 안의 질서가 나에게 절대적인 의미체계를 형성하였다. 회진을 돌며, 수많은 파트를 돌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한 성격의 환자와 가족, 의사와 간호..

회식에 대한 단상

회식에 대한 단상 나는 지금 병원에서 일하기 전, 회사라는 공적 영역에서 월급 받고 근무해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회식이라는 말을 별로 들어본 일이 없다. 학생이나 인턴 때도 회식은 나와 별 관계가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내가 내과 소속이 되고 난 이후, 회식이 단지 밥만 먹는 자리는 아니라는 것, 때로는 매우 부담스러운 자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물론 내과만의 이야기는 아닌 것 같다). 레지던트는 2개월을 전후로 part가 바뀌기 때문에 적응할 만하면 보따리를 싸서 이동하는 생활을 하게 된다. Term change를 전후로 며칠 동안은 새로운 일에 적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가 이만 저만이 아니다. 새로운 파트, 혹은 파견병원의 첫 며칠은 참으로 힘들고 실수투성이이기 때문에, 윗분들께 혼나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