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내가 2년차가 된다고?

내가 2년차가 된다고? 11월29일부터 2006년도 전공의 지원이 시작되었다. 작년 이맘때 나는 내과 지원을 눈앞에 두고 초조한 마음으로 시간나는 대로 도서관을 오가며 애를 쓰고 있었다. 병원마다 과마다 전공의 선발기준에 대한 철학이 다르고 선발의 관행에 나름의 관록이 붙었으므로, 어떤 기준으로 사람을 뽑는 것이 적절할 것인가에 대한 정답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이다. 또한 수십년간 같은 분야에서 일하며 환자 진료 및 전공의 선발의 경험을 가진 노(老)선생님의 ‘눈썰미’가 그 어떤 기준보다 정확할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성적 이외의 요인들이 객관적으로 평가되기 힘든 의사 선발의 양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이렇게 말하면 “꼭 공부 못하는 애들이 성적 중심주의 운운한다”며 타박을 ..

질병과 낙인

질병과 낙인 교수님이 알면 크게 꾸중하실 일이지만, 솔직히 아직도 난 sterile, Hygiene 등의 개념에 약하다. 그런 나, 지금 감염내과 1년차로 일하고 있다. 처음 학생실습을 감염내과에서 시작하던 당시, 회진이 마라톤처럼 이어지던 인상적인 첫날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며, 그때 만났던 감염내과 전공의 선생님이 그렇게 멋지게 보일 수 없었다. 아, 나도 그런 선배 전공의 의사로 비춰지고 싶은데…. 이런 표현이 좀 그렇지만 온갖 잡균이 가득하다 해도 과언이 아닌 감염내과, 내가 환자 등 한번 두드리고, 손 한번 잡는 것이 transmission route가 될 수 있으므로, 누구보다 감염예방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VRE 격리병실의 환자를 보다가, HIV 감염환자의 IV line을 start..

양치기 EMR, 이번엔 진짜다

양치기 EMR, 이번엔 진짜다 2주전부터 ‘D-○일’이라는 안내문이 병원 곳곳에 붙었다. D-day는 EMR을 시작하는 11월 1일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표현이라 좀 우습기도 했지만, 그만큼 병원 구성원들에게 이 날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10월 31일 밤 10시부터는 기존의 OCS에 order를 입력하지 못하게 되고, 몇 시간 동안 system shut down 시간이 이어지다가 11월 1일 새벽부터 새로운 OCS와 EMR이 시작될 예정이었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당연히 1년차는 매일 당직을 서는 시스템으로 바뀐다. 10월 31일, 이날은 이제 막 chief가 된 3년차 선생님들까지 집에 가지 못하고 변화가 초래할 혼란을 예상하며 다들 병원을 지켰다. System이 완전히 shut do..

누구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

누구에게 최선을 다할 것인가? 당직을 서는 밤, 중환이 2∼3명만 되어도 다른 환자에게는 손 딱 끊고 중환 manage로만 온 밤을 지새게 된다. 중환들은 lab도 좋지 않고 한눈에 보아도 안색이 좋지 않아 주치의는 매우 불안하다. Lab도 자주하고 한 번이라도 더 가서 안색을 살핀다. 틈만 나면 OCS를 열어 lab을 확인하고 지금 들어가는 약들을 점검하면서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사람 마음이라는 게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렇게 온 밤을 환자 곁에서 보내고 난 다음날, 환자들이 expire하는 경우도 많다. 의사를 그렇게 옆에 붙잡아 둘 정도로 중한 환자였으니 사망 가능성도 높았겠지만, 내가 낸 lab 하나, 내가 쓴 약 하나가 그의 죽음을 induction했을 가능성을 완전..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나는 고발한다, 내 형제를 일하다 보면 ‘동업자를 형제처럼 여기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영 마음에 거슬리는 때가 있다. ‘과연 이런 사람도 같이 일하는 의사라고 말할 수 있는지’ 회의적일 때가 있다는 말이다. 내가 1년차라서 나에게 이렇게 함부로 하는 건가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괜한 자격지심일까? 여러 환자들, 특히 노인 환자들은 여러 과 진료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한 환자를 두고 consult나 transfer 등이 이루어지게 마련이다. 내 환자 때문에 다른 과 의사들과 접촉하면서 부탁도 하고 문의도 하는 일은 다반사다. 불행히도 아직 1년차라 그런지 내가 다른 과 의사들의 청탁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말이다. 그렇게 여러 과의 의사들을 접촉하다 보면 의사들간에 서로 예의를 갖..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내가 그를 위해 할 수 있는 것 병원의 환자들은 몸과 마음이 아파 고통이 많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심심한 것도 사실이다. 나는 환자들이 병원에 와서도 좀 바쁘게 돌아다니고 할 일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검사든 교육이든 하루 스케줄이 있어서 나름대로 병원에서의 시간표를 운영할 수 있도록 말이다. 그런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내 꿈이기도 하다. 많은 경우에 ‘이 환자는 오늘 무슨 검사를 하면 다음에는 무슨 검사를 해 보고 결론을 내린 후, 치료는 어떻게 결정하고…’ 이런 plan을 가지고 입원 환자를 보게 되지만, 치료가 어려운 일부 만성질환자들에게는 이런 계획을 세우기가 어렵다. 의사들은 그런 환자들을 ‘해줄 게 없는’ 환자들이라고 말한다. 나는 예전부터 의사들이 ‘해줄 게 없다’는 표현을 하..

슬기엄마, 입원하다

슬기엄마, 입원하다 닷새 밤낮을 sore throat으로 진통제를 먹으며 참다가 감염내과 외래를 찾았다. Peritonsilar abscess. Neck CT에서 abscess는 상당히 크고 깊게 자리잡고 있었다. 더 진행될 경우 airway obstruction으로 tracheostomy가 필요할 수도 있고 brain abscess로 진행할 수도 있는, 흉측한 morphology였다. ENT에서 daily I&D를 할 필요도 있고 IV antibiotics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리고 abscess 때문에 말도 제대로 할 수 없고 음식도 넘기기 힘들어 나는 입원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일하던 16층 병동에 입원하고 counter가 내 주치의가 되었다. ‘꼭 우리 병동에 입원해서 다른 신환의 입원이라..

양심과의 싸움

양심과의 싸움 지금은 밤 11시 40분, 중환자실. 오늘 새벽 2시에 걸어서 응급실에 온 환자가 intubation 상태로 중환자실에 있다. 하루 종일 이 환자 때문에 응급실을 왔다갔다하며 시간을 다 보내고, 병동 환자는 제대로 못봤다.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환자 옆을 지키고 앉아 inotropics를 조절하고 SaO2가 변하는 걸 보며 어떤 ventilator setting이 필요한지 고민하고 있다. 그나마 여기서라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준 환자에게 감사하며. 하지만 지금 응급실에 있는 또 다른 환자도 만만치 않아서 inotropics를 증량하고 있는데도 BP가 오르지 않고 urine output이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고 call이 오고 있다. 빨리 내려가 보아야 한다. 병동 환자를..

1년차, 여름휴가 맞이하다

1년차, 여름휴가 맞이하다 1. 휴가 초반 3~4일은 잠을 자도 계속 병원 꿈을 꾼다. 나의 malpractice로 인해 환자 상태가 악화되어 괴로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2. 나 대신 병동을 지키며 everyday 당직을 서는 counter 1년차가 자꾸 전화를 해서 고요한 내 마음에 돌을 던진다. 3. 휴가 5일째 저녁부터 병원에 돌아갈 생각을 하며 뭘 해도 마음이 편치 않아 결국 병원으로 복귀하기 위한 가방을 챙기고 나서야 안심하게 된다. 4.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의 질서에 적응하지 못해 외출시 허둥대며 시간을 낭비한다. 바뀐 버스 노선표, 은행업무, 언제 분실했는지 모르는 운전면허증과 주민등록증의 재발급 등 잡무를 처리하는 나의 동선이 무질서하게 해체되고, 일 하나 처리하는 데 몇 번의..

사망 기록지

사망 기록지 “이 환자 EKG flat 남은 거 없어요?” “아까 사망 시간을 몇 시로 했었죠?” “본적은 어딘가요? 사망진단서는 몇 통 필요하대요?” 환자가 expire하고 나면 주치의는 할 일이 많다. 일단 expire 선언을 하고 나면 가족들에게 적절한 예의를 갖추어 조의를 표한 다음, 잽싸게 station으로 나와 선행사인, 중간사인, 직접사인을 스태프 선생님께 확인 받아 사망진단서도 작성하고, expire note를 쓰기 위해 환자의 chart도 잘 챙겨두어야 한다. 원칙적으로는 expire한 순간에 병동에서 expire note를 써야 하지만, 어디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Expire note 마지막에 붙여야 할 flat EKG를 챙기는 일을 잊으면 mortality 발표가 있는 의국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