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993

회진 중 임종

아침 회진을 가니수축기 혈압이 80mmHg 이다.몇일전 입원하신 후로 밤에는 수면제를 드리고 있다. 6-8시간 정도 주무시게 한다.토하느라고 잘 못 드시니 무조건 자는 것이 환자에게 필요했다. Terminal sedation. 숨쉬는 것이 어제와 다르다. cheyne-stroke pattern. 맥박을 짚어보고 심장소리를 들어본다. 소리가 아주 약하다. EMR 상에서는 아침 맥박이 120회 정도였는데 지금 내가 손목을 잡아보니 60회도 안되는 것 같다. 다시 혈압을 재 본다. 70mmHg. 내 눈앞에서 환자 생명의 불꽃이 꺼져가는게 느껴진다.내 또래 환자의 딸과 함께 임종을 기다린다. 사실 기다렸다기 보다는 순식간에 다가와 버렸다. 청진하고 동공도 비춰보고 맥박도 짚어보고 꼬집어서 통증반응도 확인하고뭐 ..

원발미상암, 진단명이 뭐 그래요?

진단명 원발미상암 72세 할아버지, 몇달째 허리 아픈게 낫지 않아 신경외과로 오셨다. 아픈 곳을 중심으로 척추 MRI를 찍어 보니 척추 곳곳에 전이가 된 암병변이 의심되었다. 그 중 일부 척추에 골절이 오면서 신경이 눌렸는지 다리도 저리고 걷지도 못하고 진통제를 써도 통증이 조절되지 않았다. 한두군데 병이 있는게 아니라 너무 병변이 넓어서, 속히 원발암을 진단해서 원인이 되는 암에 따라 항암치료를 하는게 필요하였다. PET-CT에서 뼈 이외의 다른 곳은 이상한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뼈에서 조직검사를 하였다. 뼈 조직검사는 딱딱한 뼈에서 칼슘을 빼고 조직을 처리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에 다른 조직검사보다 조직을 처리하고 염색하여 결과를 보는데 시간이 더 많이 걸린다. 아프고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

환자가 미워질 때는 '리셋'해 보자

우리 환자들이 알면 깜짝 놀라겠지만(어쩌면 이미 다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난 가끔 환자를 미워한다.아주 미울 때가 있다.회진가기도 싫고 얘기하기도 싫다.마음속으로 그렇다. 그렇지만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한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그렇다는게 티가 날지도 모른다.내가 워낙 성격이 욱 하니까. 난 감정을 잘 숨기지를 못한다. 하지만 그 정도로 날 위선자라고 하지는 않겠지? '인간이면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지 않을까 합리화한다. 그러나 내 직업이 의사인 이상,마음 속으로 환자가 미울지언정 - 마음 속으로도 모두를 사랑할 수 있으려면 종교적인 힘이 필요- 겉으로는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고 최소한 그렇게 환자를 미원하는 자신을 반성할 줄은 알아야 한다.그것은 본성이 아니고 훈련과 교육에 의해서 습득되어야 하는 직업..

쌍동이 언니의 마음

쌍동이 동생은 유방암 치료 중이다.몇년 전에 수술을 했는데 2년 만에 재발했다. 재발 후 첫 치료로 항암치료를 하다가 탁솔 독성으로 손발저림이 심하고 몸이 많이 부어서 치료를 중단했다. 이후 호르몬 치료를 했는데 별로 효과가 없었다. 늑막이 다시 두꺼워 지는 양상이다. 그래서 지금은 먹는 항암제로 치료하고 있다. 늑막 전이 양상에는 큰 변화가 없다.지금 항암제는 다행히 큰 부작용이 없지만 손발이 자꾸 트고 갈라진다. 좀 피곤하기도 하다. 그래도 그녀는 탁솔 맞을 때 다 빠진 머리가 이제 많이 자랐다며 뿌듯해 한다. 요즘은 내 머리 길이랑 비슷하다. 젊다 못해 어린 그녀. 여러 불편한 점들이 많을텐데 이 정도면 괜찮다고 늘 쿨한 표정으로 대답한다. 나는 오히려 그녀가 마음 속으로 절대 흔들리지 않으리라 굳..

K 선생님께

K 선생님께 오늘 병동을 지나다가선생님이 봐 주고 계신 유방암 뇌전이 환자 S 씨와 그 남편을 만났어요. 이 환자가 입원한지 몇달의 시간이 흘러가고 있네요. 안 그래도 엊그제 문득 제가 선생님께 전과보낸 이 환자 생각이 나서 선생님 입원환자 명단을 띄워봤더니 명단에 없길래 퇴원을 하셨나? 좋아져서 퇴원하신건가? 아니면 더 이상 좋아질거 없어서 퇴원하신건가? 불안했지만, 당장 내 앞에 있는 환자 문제가 아니라 잠시 걱정하다가 잊고 말았습니다. 유방암으로 수술하고 항암치료를 하고 표적치료를 하는 긴 시간 동안 제가 환자 진료를 담당했었는데 표적치료가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아 뇌전이가 진단되면서 순식간에 주치의가 선생님으로 바뀌었습니다. 제 의무기록을 보니, 환자가 서너달 전에 밤에 목이 말라서 물을 많이 마신..

큰 박수를 드립니다

오늘 근사한 졸업식을 해드렸어야 했는데... 진단받고수술받고항암치료하고방사선치료하고그렇게 치료가 끝난 시점으로부터 5년이 넘었다. 다른 암 같으면 치료 후 5년이 지난 경우 사망율이 일반 사람들의 사망율과 같다고 하여 5년까지 암이 재발을 안하면 '완치'되었다는 말을 한다.그렇게 5년을 무사히 넘기신 환자들이 오늘 외래에 많았다. 유방암은 전체적으로는치료 후 2-3년을 기점으로 하여 재발의 폭풍이 몰아친다. 그리고 5년을 기점으로 다시 한번, 그리고는 대개는 잠잠해지지만 호르몬 수용체 양성인 환자들은 전체적으로 예후가 좋으면서도 아주 뒤늦게도 재발할 수 있어 경계심을 완전히 늦출 수 없다.삼중음성유방암은 3년을 넘어가면 잘 재발하지 않는다.HER2 양성 유방암도 초반을 잘 넘기면 재발하지 않지만 HER2..

유방암 환자 촌지에 대한 고찰

첫 환자가 나랑 동갑내기, 2년째 호르몬 치료를 하고 있다. 그녀는 항상 엄마랑 같이 병원에 오는데, 외래 진료실 앞에서 이들 모녀는 늘 티격태격한다.40 먹은 딸과 70 먹은 엄마.둘다 neurofibromatosis. 추가적인 검사는 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오늘 엄마가 촌지로 윌 10개들이 한박스를 나에게 선물로 주고 가셨다. 아침도 시원치 않게 먹었는데, 오전 진료를 보는 내내 저 박스를 뜯어서 두개 정도 한꺼번에 마시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진료를 보아야 했다. 환자는 처음부터 폐전이, 뼈전이 상태로 진단받고 항암치료를 시작하였는데, 지금은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지금은 2년째 호르몬 치료를 하면서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아직 유방에 만져지는 덩어리가 있다. 그래도 변화가..

예후를 긍정적으로 설명하는 방식의 문제점

최초 수술을 받은지 1년이 채 안 되었을 무렵, 그는 배가 많이 아팠다.장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장염이 자주 반복되었고, 그러려니 했다.심상치 않게 자꾸 아파서 의사에게 여러번 말했는데, 괜찮다고 했다.CT를 찍었는데 장이 전체적으로 부어있는 상태, 장염 이라고 했다.그는 그 이후로 6개월간 배가 계속 아팠다 말았다 했다. 더 이상 의사에게 말하는 것이 계면쩍어 그는 한의원에도 가 보고 온열치료도 해보고 금식도 해 보고, 자기 나름으로 해결책을 찾아보려고 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배가 점점 불러오기 시작했다. 배는 나오는데 눈에 띄게 수척해졌다. 내키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원래 주치의에게 돌아와서 다시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재발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그는 너무도 단호하게 재발이..

비법 아이템

레지던트일 때는교수님과 회진을 도는데 환자들이 어디어디 불편하다, 아프다는 말을 할까봐 내심 불안했다.환자가 뭔가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면 교수님들이 물으신다. 이 증상은 왜 그런거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 막힘없이 대답하는 전공의가 엑설런트하게 평가받는 건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증상을 불쑥 말해버림으로써 나를 물먹이는 환자들이 꽤 있었다.'뭐야,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하더니 왜 교수님한테 직접 말하는거야?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 속으로 환자 욕을 하면서도, 교수님 앞에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저는 첨 들은 증상이라고,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면 액설런트하지는 않아도 거짓말은 안하는 전공의라고는 평가받을 수 있다. 괜히 어설프게 원인..

경희, 도담이 엄마가 되다

2013년 5월 22일 밤 11시 40분. 경희가 도담이 엄마가 되었다. 도담이가 뱃속에 있을 때 경희는 입덧도 안하고 감기도 안 걸리고 별로 붓지도 않고 큰 탈없이 잘 지냈다. 출산 직전까지 근무를 했다. 초산인데 10시간 진통을 했지만 정작 배가 아프다 싶었던 건 2시간 정도. 그 와중에도 경희는 카톡으로 문자하고, 페이스북에 들락달락 거리고, 크게 힘들지 않았나 보다. 예정일에 딱 맞춰 세상에 나온 도담이, 엄마를 성가시게 안하는 착한 아들이다. 오늘 퇴원하는 경희. 뭐 먹고 싶냐고 문자를 보냈더니 아무거나 다 먹고 싶다며 거절을 안한다. 주섬주섬 빵을 한 바구니 사가지고 병실에 가 봤더니 산모가 붓지도 않고 아주 쌩쌩하다. 애기 황달검사를 했는데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며 퇴원 준비 한창이다. 옆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