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일 때는
교수님과 회진을 도는데 환자들이 어디어디 불편하다, 아프다는 말을 할까봐 내심 불안했다.
환자가 뭔가 새로운 증상을 호소하면 교수님들이 물으신다.
이 증상은 왜 그런거죠?
원인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이런 질문이 들어올 때 막힘없이 대답하는 전공의가 엑설런트하게 평가받는 건데...
나는 전혀 모르고 있던 증상을 불쑥 말해버림으로써 나를 물먹이는 환자들이 꽤 있었다.
'뭐야, 나한테는 한마디도 안하더니 왜 교수님한테 직접 말하는거야? 내가 그렇게 잘 해줬는데'
속으로 환자 욕을 하면서도, 교수님 앞에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저는 첨 들은 증상이라고, 원인을 찾아보겠다고 말씀드리고 그 위기를 넘길 수 있다.
그러면 액설런트하지는 않아도 거짓말은 안하는 전공의라고는 평가받을 수 있다.
괜히 어설프게 원인과 이유를 댔다가 좀 더 캐물으시면 결국 아카데믹하게 대답 못하고 땀을 비오듯 흘리면서 회진분위기를 망치는 것보다는 낫다.
난 회진 때 교수님들이 질문을 하시면 나이스한 대답을 잘 못하는 레지던트였다. 그래서 질문을 많이 하시는 교수님들이 원망스러웠다. 나도 엑설런트 해보이고 싶은데 결국 또 덤앤더머로 끝나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액설런트 하지 않으니 노력이라도 많이 해야지. 설령 대답은 잘 못해도, 진짜 머리에 든게 없으면 안되니까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뭐 그렇게 결심했던 것 같다.
그땐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의 원인이 무엇인지 잘 알 수 없는게 참 많았다.
어디 한군데 불편하다고 해서 CT를 퍽퍽 찍을 수도 없고, 알고리듬을 따라서 가능하지 않은 원인부터 하나씩 배제해 나가야 한다. 가능성 있는 원인들을 열거한 다음, 각각 항목별로 favorable factors vs unfavorable factors 이렇게 나눠서 생각하고 기록해 보았다. 그 원인을 설명할만한 근거를 임상적으로 찾는 훈련이 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임상적인 증상과 근거를 중심으로 그럴법한 요인과 그렇지 않은 요인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는 습관이 많이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유를 잘 모르겠는 환자들도 많았다.
암환자들이 특히 그랬다.
너무너무 많은 불편함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뭔가 불편한게 너무너무 많았다.
너무 사소해 보이는 이유로 환자들은 힘들어 하였다.
병이랑 관련된 증상인지
지금 하는 치료랑 관련된 합병증인지
병과 무관한 다른 증상인지
구분할 수 있어야 했다.
교과서에서 설명한 것처럼 아프고 약전에 나와있는대로 합병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환자의 증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기전에 대해 추론하기 어려웠다.
허리가 아프다고 하면
이게 디스크 때문인지 척추관 협착증 때문인지
뼈전이 때문인지
복수가 심해져서 뻐근한 건지
소화가 안된다고 하면
항암제의 일반적인 부작용인지
위 궤양이 생긴건지
변비가 있어서 소화가 안되는건지
장으로 병이 진행된건지
생각해야 할 것들이 너무너무 많았다.
몇일 동안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는 약이나 방법을 써보고
그래도 안되면 검사하고
검사했는데 특별한 이상은 발견되지 않고
그러면 또 다른 약을 써보고....
검사를 해서 이상이 나오면 오히려 다행이다.
암이 진행되었다고 하면 차라리 안심이다. 그것이 원인일 테니까 범인을 잡았네.
그런데 검사를 해도 별로 나오는게 없고 확실한 원인을 찾지 못한채 환자가 계속 증상을 호소하면 정말 괴로웠다. 항시 환자 콜을 받는 나로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니 같은 이유로 병동 콜이 계속 된다. 한두번은 전화로 지시하지만 결국 다시 환자를 만나봐야 한다.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환자를 나를 불신한다. 괴로운 마음으로 환자를 진찰하고 나서,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이러이러한 환자인데 어떻게 생각해? 무슨 검사를 더 해볼까? 무슨 약을 쓰면 좋아질까? 결국 책에서 찾지 못한 답을 찾기 위해 주위 사람들, 다른과에서 일하는 동기들, 내가 무식한거 티내도 될만한 사람들한테 지혜를 빌려본다.
그렇게 구차하게 구걸하듯 실마리를 얻어 환자에게 적용해본다.
약을 주고 한나절이 지나 회진을 가보면 환자가 좋아졌다고 말할 때, 야호! 정말 기분이 좋았다. 드디어 해결됬구나! 그리고 나서 그 약이 왜 효과가 있었을지 생각해보면, 비로소 기전이 이해되는 상황도 있었다. 그렇게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 하나하나에서 배움을 얻었던 것 같다.
그런 해법들은 나만의 비법 아이템으로 수첩에 등재되었다.
일종의 꼼수이기도 하고
급한 불을 끄는 해법이 되기도 했다.
종양내과는
환자의 증상을 잘 조절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분야이다.
다른 파트에서는 증상 자체를 조절하기 보다는, 왜 그런 증상이 발생하고 해결되지 않는지 원인을 명확히 밝힐 것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전이성 암을 보는 종양내과 의사는 교과서적인 원칙대로 검사를 다 하는 것이 환자에게 적절하지 않을 경우가 있음을 종종 경험하게 된다. 최소한의 검사로 증상을 조절하는 것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
두경부암 환자.
36세 여자.
학습지 선생님.
방사선치료를 하고 나서 침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아주 흔한 합병증이다.
침이 잘 나오지 않아 밥을 먹을 때 물을 서너컵 같이 먹어야 하는 일은 기본이요
말을 하려면 입이 말라 발음이 잘 안되었다.
병은 잘 치료가 되었는데 학습지 선생님으로써 자기 직업을 유지하기가 힘들 정도이다.
또 남편이랑 뽀뽀하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했다. 뽀뽀하는게 고통이라고 했다. 그래서 남편과 관계도 멀어지고 서먹해지고 괴롭다고 했다.
명상을 하고 나서
몸과 마음이 이완이 되니 침이 나온다고 한다.
그 환자에게 명상을 한번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기까지 난 수많은 검사와 약을 시도해 보았다.
나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져 주는 환자들 덕에
난 아직도 전히 증상조절을 도와주는 비법 아이템을 찾고 있다.
비법 아이템 수첩이 내 생명줄이다. ㅎㅎ
참고로, 명상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싶으신 분은 이충은 간호사 02-2227-4724 로 연락하시면 됩니다.
아직 모집하고 있습니다. 10명정도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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