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이 내 마음 알 수 없고
나도 다른 사람들 마음 모른 채 산다.
원래 그런거지.
내심 잘 해보려고 했는데,
환자를 잘 살피는 마음으로 노력한건데
환자에게 원망듣고
그 일을 하느라 여러 간호사들 과외 업무로 힘들게 하면서
일을 해 왔지만
결과가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알았다.
여러 사람 힘들게 만들었다.
시스템을 개선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 개인이 노력해서 할 수 있는 만큼 할려고 했다.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구조적 모순을 파악하고 제도적 개선, 개혁을 시도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험난한 길이니, 나는 소심하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해서 일을 할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일이 하나 제대로 되려면 그만큼의 에너지가 들어가야 되는 법이다.
내가 다 못하는 일을 간호사들에게 부탁하고, 그들은 그 일을 하느라고 고생을 많이 하였다.
나는 그냥 마음으로 미안해 하기만 하였다.
우리 병원 검사 예약 시스템이 복잡하니까 외래 담당 간호사에게 환자의 검사 스케줄을 예약해주고 환자에게 그 과정을 다 설명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여러 과 협진이 필요하면 한번 병원에 와서 다 진료를 볼 수 있게 어레인지 해달라고 하였다. 지방 환자들은 미리 입원장도 내고 검사 스케줄도 다 잡아서 외래 때 설명하고 한번에 일정이 진행되도록 준비해 달라고 하였다. 환자의 편의를 중심으로, 환자가 원하는 시간으로 검사, 외래 시간을 조정해 달라고 주문하였다. 그들은 그런 지시 사항을 이행하기 위해 몇배의 노력을 해야만 했다. 내가 말하면 간호사들은 다 그렇게 도와주었다. 원칙적으로 환자를 위해 맞는 말이고 필요한 과정이니까 감당하려고 했다.
그런데 그런 나의 방식이 그들을 많이 힘들게 한 것 같다.
미리 예약한 검사 일정, 입원장 발급 등이 무색하게 환자들은 나의 제안을 거절하는 바람에, 전날 애 쓰고 예약한 검사를 다시 전화하여 취소해야 했다. 협진도 하루에 볼 수 있게 동선을 고려하여 예약을 해드리면 펑크를 내거나 협진 진료를 보지 않겠다고 하였다. 원무과에 사정해서 미리 입원실을 준비해 두었는데, 환자가 입원을 안하겠다고 한다. 여기 저기 많이 부탁하고 많이 취소하다보니 이제 푸쉬하기도 미안할 지경이 되었다.
환자들이 말하는 것은 가능하면 뭐든지 수용하고 들어주려고 하다보니, 이제 조금만 자기 일정에 맞지 않으면 불평불만이 많아졌다. 예약이 잘 안잡히면 짜증을 낸다. 왜 하루에 다 일정이 진행되지 않냐고 화를 낸다. 환자를 위해 애를 쓰는데 자꾸 더 욕을 먹는 격이다. 환자도 참아주고 이해해 주어야 할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것 같다.
아직 우리 병원의 시스템이 그런 모든 요구사항, 질 높은 진료들을 시행하기 위해서는 아직 갖추어야 할 것이 많다. 누구는 열심히 일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는 불균등한 업무 배치가 존재한다면 바꿔야 한다.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지만 윗선에 인력 이야기를 하면 다들 너무 민감해 하신다. 검사실에 전화해서 예약 확인하고 환자에게 그걸 설명하고 환자가 질문하면 답변해 주어야 하고 내가 환자에게 지시하는 것 새겨 들었다가 다시 환자에게 설명해야 하고, 약 챙겨줘야 하고, 짧은 시간 내에 수행해야 하는 일이 너무 많아서 힘들었나 보다. 단지 물리적으로 힘든게 문제가 아니었던 것도 같다. 외래-접수-외래를 번갈아가면서 액팅으로 일하다보니, 환자 차트 리뷰할 시간도 제대로 없고, 시간 날 때면 늘 해피콜을 챙기던 그녀가 그런 것도 이제 해피콜도 못하고 있다. 환자에게 최선을 다하는데, 라포가 좋아지기는 커녕 민원이 늘어나는 것 같다. 애를 쓰는데 보람이 없고 상처만 받게 된다.
그래서 내가 결심한 것은
1. 환자가 여러과 협진이나 검사를 위해 여러번 병원을 방문하게 되더라도 이해해 달라고 미리 말한다.
2. 필요한 검사는 하루에 다 진행되기 어려운 것이며, 일정 조정이나 변경을 우리 외래에서 다 진행할수는 없는 것이라고 설명드린다.
3. 환자 편의를 위해 미리 다른 과 검사를 예약하거나 입원장을 발급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4. 전날 밤에 외래간호사에게 메일을 보내서 다음날 외래를 위해 뭐뭐뭐 준비해 달라고 푸쉬하지 않는다.
환자를 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나와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일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나 때문에 힘들었던 그들에게 미안했다.
환자도 우리가 짊어진 부담을 나눠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는
척박한 현실의 조건을 잘 모르고, 이상적이고 최상의 진료를 꿈꾸는
단지 몽상가였다는 생각이 든다.
서글프고 미안한 마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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