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빚쟁이 인생

슬기엄마 2013. 3. 17. 17:38

3월 들어 

매주 발표가 2번 정도 있다.

외부 강의도 있고

원내 발표도 있고

발표를 하는 건

나에게 남는 게 없는 장사지만

그래도 요청이 있을 때 적절한 이유를 댈 수 없으면 결국 하게 된다.

잠 설쳐가면서 준비하고

제대로 준비가 안 되 괴로워한다.

그런 시간을 일주일에 두번씩 거치고 나니,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꼭 거절해야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다.

그런 발표 준비할 때 은근 강박적인 습성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대충 못하고 괴로워 하면서 준비하는 나를 발견한다. 

출처가 명확하지 않으면 다시 저널을 찾아 페이지까지 꼭 명시하고

적절한 그림, 사진 찾을 때까지 구글링하고 

글씨 크기 정확히 맞추고

색깔 통일적으로 쓰고 

밑줄 부호 도형위치를 정확히 맞추느라

마우스질을 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아주 피곤한 스타일로 변한 것 같다. 



내 블로그에 글을 쓰는건

자유로운 마음으로 

누군가를 의식하지 않고 

부담없이 하는 행위이다. 

가능하면 매일 블로그에 글을 쓰려고 마음먹는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일이다. 

환자를 진료하며 느끼는 점들, 고민하는 것들을 쓰려고 

항상 수첩을 가지고 다니며

환자들이 나에게 하는 말들을 적어본다.

환자가 무심코 나에게 하는 말 중에 명언이 있다. 

그들의 언어를 기록해 본다.

나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들을 던져준다.

그렇게 생각한 것들을 

블로그에 쓰는 것은 

하루하루 내 삶의 기록이며 내가 나를 위해 집중하는 유일한 행위이다.

다른 건 못해도 블로그 글쓰기는 하려고 한다. 

요사이 블로그 글을 매일 쓰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잡일들이 많았다. 



전공과 관련된 것이든 아니든 간데 

원고 청탁을 받아 글을 써야 하면 글이 더 안 써진다.

마감 날이 다가오면 초조하다. 오늘도 이미 마감을 넘긴 글 빚이 남아있다.

갑작스럽게 화요일 발표도 준비해야 한다.

논문 밀려있는 것에는 손도 못 댄다. 내 논문이 항상 제일 뒤로 밀린다. 

그 다음으로 밀리는 것은 레지던트들 논문 봐주는 것이다.

나에게 원고를 보낸 채 나의 답장을 기다리는 녀석들이 둘이나 있는데 1주일 넘게 답장을 못 해주고 있다. 해결하지 못한 그 녀석들의 메일이 메일함에 쌓여있다.

언제 답장 해주지?


평소 내가 일하는 스타일의 우선 순위를 매겨보자.


1순위 

매일 외래/입원 환자보는 것

환자보다가 문제가 생기거나 상의할 사항이 생기면 다른 과 선생님들과 의논하는 것

환자 진료를 위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는 것


2순위 

당장 해야 하는 강의나 발표를 준비하는 것 - 듣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니까 

다른 과와 공동으로 협력해서 하는 일들을 일정에 맞춰서 하는 것 - 다른 과에 피해를 주면 안되니까

다른 사람들과 엮이는 일을 2순위로 하게 된다.

나의 잘못이나 실수로 그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되니까 

일단 내 일보다는 

남과 함께 하는 일에서 내 역할을 완수하는 것이 예의일테니 그런 몫을 먼저 완수하려고 시간을 쓰게 된다. 


3순위

나 때문에 마감이 늦춰지는 글들이 있다.

미룰 수 있는 한 끝까지 미룬다. 비난을 받아도 미룬다.

글을 쓴다는 것은 

차분히 노력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어떤 느낌이 와야 시작할 수 있다.

느낌이 오지 않으면 스토리가 술술 풀리지 않는다. 책상앞에 앉아있어도 진행이 안된다.

중요한 건 어떤 느낌이 와야 한다는 것. 느낌이 올 때까지 좀 미뤄둔다.  


4순위 

그 다음이 전공의를 위한 일인 것 같다.

전공의 논문 작성을 지도하는 것, 교육하는 것 그런 것들은 슬슬 뒤로 밀린다.

내가 아직 그런 일들을 능수능란하게 할 수 있는 위치와 능력이 안되기 때문에 사실 나도 공부를 좀 하면서 지도를 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을 못 내면 나도 코멘트를 할 수가 없다.


마지막 

마지막이 나를 위한 일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 화면에

내가 해야하는 일 목록이 지워지지 않고 몇달째 계속되고 있다.

도대체 언제 이 일들을 하게 될까?


정말 이번에 하기로 한 강의까지만 하고 이제 거절해야지. 당분간 강의는 하지 말아야 겠다.

뭐든지 못한다고 거절해야지.

그래야 나를 위한 시간을 낼 수 있을 것 같다. 

뭐든지 시간에 쫒겨 마감에 임박해서 일을 한다. 

내가 하고 싶은 일들, 내가 하고 싶은 공부에는 별로 집중하지 못한다. 

이렇게는 오래 살 수 없을 것 같다. 


1순위 이하의 사항들은 

일의 중요성 보다 time pressure  에 의해 순위가 결정되는 것 같다. 

중요한 일을 하면서 바쁜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time pressure 를 없애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요일 저녁 정도는 

여유있는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 보내야 한다. 

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고 마음이 무겁지만

그래도 가족과 함께 주말 저녁 시간을 보내는 것도 중요하니까 

오늘은 집으로 고고씽.


마음은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도

집으로 고고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