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잡다한 증상 중에 중요한 증상을 놓치지 않기를

슬기엄마 2013. 3. 14. 21:23



항암치료를 받는 환자들에게는 온갖 문제가 발생한다.


환자를 괴롭히는 문제는

병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처방한 항암제 때문이기도 하고

수술의 후유증 때문이기도 하고

암과는 완전히 무관한 다른 문제 때문이기도 하다.


젤로다 때문에 발톱이 살속을 파고 들어가기도 하고

이레사를 먹고 여드름이 나기도 하고

진통제를 먹고 소변이 잘 안나오기도 한다.

탁소텔 때문에 피부발진이 생기고 간지러움증이 심하기도 하고

이리노테칸을 맞고 설사를 하기도 한다. 

뼈 병변의 악화로 인해 고칼슘 혈증이 생기고 그것때문에 의식이 몽롱해지기도 하고

방사선 치료 후 발생한 뇌 부종으로 인해 의식이 몽롱해지기도 한다. 

내가 준 약 때문에 손이 떨리고 

또 손떨리는 증상을 완화시키기 위해 준 약 때문에 제대로 못 걷고 휘청거리기도 한다.

병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CT를 보고 있는데

환자는 감기 걸려서 힘들다고 아우성치기도 한다. 

페마라를 먹고 무릎 관절이 더 아프다며 그만 먹고 싶다고 하기도 하고

놀바덱스를 먹으니 불면증 때문에 잠을 못자고 피곤해 죽겠다고 한다.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을 해결하기 위해 이를 전문적으로 진료하는 해당과로 협진을 보내기 시작하면

환자는 온 병원을 돌아다닐 판이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검사할 줄 알아야 하고 적당히 약을 처방할 수 있어야 한다. 

암을 치료하는 중심 줄기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최소한의 검사와 최소한의 약으로 환자가 힘들지 않게 도와주어야 한다.


그렇지만

그렇게 내가 진료했는데 

3개월째 기침을 계속 한다면 호흡기 내과 진료를 의뢰하는 게 맞다.

허리도 아프고 다리가 아프고 땡겨서 걷기가 힘들다고 하는 뼈전이 환자에게 진통제만 줄 것이 아니라 정형외과 진료를 보시도록 안내해야 한다. 


나의 전문 분야도 아닌데, 내가 다 해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려야 한다.

암 아니면 나머지 문제는 해당과에 가서 진료받으시라고 하는 무책임함도 버려야 한다. 

내가 해결해야 할 부분

전문가에게 의뢰해야 할 부분

그 경계선을 잘 지키고 내 몫이 어디까지인지 역할을 잘 정해야 한다.





유방암 치료를 다 마치고 3년째, 멀쩡히 진료실을 걸어들어온 환자, 안색도 그리 나쁘지 않다. 


요즘 잘 지내시죠? 


몇일 전부터 숨이 좀 차네요 

 

앗, 숨이 차다구? 

이미 외래 진료시간이 30분 이상 지연되고 있다.

마음이 바쁘다. 

환자가 오늘 병원에 온 것은 숨이 차서가 아니라 6개월 정기검진 결과를 들으러 온 것 뿐이다. 얼마전 정기검진에서 찍은 흉부 엑스레이에서는 방사선 폐렴이 있었다. 방사선 폐렴은 방사선 치료를 마치고 수주 후에서부터 수개월, 수년후에도 증상을 유발할 수 있기는 하다. 그래도 좀 이상하다. 


멀쩡한 사람 - 암이 재발되지 않고 3년 이상 잘 유지되고 있는-이 숨이 차다는 증상은 예사로운 싸인이 아니다. 


청진을 해보니 왼쪽 호흡음이 잘 들리지 않는다. 마침 내 청진기를 방에 놓고 와서 외래에 비치된 싸구려 청진기로 청진한 것이라 감이 별로 좋은 것 같지는 않지만, 호흡음이 감소한 것은 확실하다. 흉뷰 엑스레이를 찍은지 얼마 안되었어도 했지만 다시 찍고 오시게 했다. 또 찍어야 하냐는 약간은 귀찮아 하는 환자를 다그쳐서 검사를 보냈다. 분단위로 환자 진료가 예약된 상황에서 같은 환자를 두번 진료하는 건 외래지연의 중대한 사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건 해야지. 


환자는 다시 수납하고 검사하고 다시 자기 차례를 기다려야 한다. 진료 순서가 한칸 더 밀려난 다음 환자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진다. 


아뿔사, 왼쪽 폐 기흉이 생겼다. 기흉 라인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시 환자에게 그동안의 호흡곤란 증상에 대해 소상히 질문을 해본다. 언제부터 증상이 생겼는지, 언제 증상이 악화되었는지 등등. 유방암 종합검사를 했던 몇일 전까지만 해도 별일 없었는데 몇일 사이로 갑작스럽게 기흉이 생겼는지 원인을 알아야 하니까. 


그리고 원인을 알아냈다.

...

...


환자가 놀라지 않게 에둘러서 설명을 하고 

입원시켜 흉관을 삽입하였다. 

휴 다행이다. 

환자가 응급실로 가지 않고 병실로 입원하여 별로 힘들지 않게 흉관 삽입을 할 수 있었다. 

흉부외과 선생님이 푸쉬를 잘 받아주셔서 감사할 따름이다.



바쁜 외래, 수많은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사소한 증상이라 별 부담없이 그리고 긴장감없이 진료를 하던 와중에 기흉을 놓치지 않은 나에게 사탕선물이라도 해주고 싶다. 내심 흐뭇하다. 


환자의 말을 경청하면

최소한의 검사를 하면서도

중요한 병을 놓치지 않는 의사가 될 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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