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는 객관적인 지표에 의해 환자의 병 상태를 진단하고 평가한다.
환자는 주관적인 경험으로 자신의 병을 받아들이고 경험한다.
객관적인 상황과 주관적인 상황이 잘 들어맞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의사가 보기에는 특별한 문제가 아닌데
환자는 아주 힘들고 고통스러울 수 있다.
의사가 보기에 별거 아닌거 같은데
환자가 이것저것 힘들어하고 불편해 하면
의사는 자신의 인식체계 내에서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경우 또한 심기가 불편해 진다.
그것이 의사와 환자 사이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고 이들간 의사소통이 원할하지 않게 되는 원인이 된다.
때론 의사의 부주의와 무관심 때문일 수도 있고
때론 환자의 과민한 반응과 과도한 걱정 때문일 수도 있다.
환자가 경험하는 질병의 세계는
의사의 인식체계와 언어로는 이해할 수 없고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 간격은 완전히 좁힐 수 없고
그것이 질병의 본질이기도 하다.
나는
그 간격을 좁히기 위해
가능한 환자의 목소리에 주의를 기울이고
환자의 표현에 익숙해 지기 위해, 환자가 경험하는 질병세계와 그들의 설명원리를 이해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늘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유방암 투병기를 보면
유방암 0기 인데도
병을 진단받고 치료받고 완치가 된 다음에도
나름의 어려움을 겪고 그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본인이 겪었던 어려움을 투병기로 써내려간 글들이 있다.
0기 유방암은 95% 이상 재발하거나 전이되지 않지만 5%에서는 그럴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통계적이고 평균적인 수치로 이 병을 이해하는 의사로서 환자를 안심시킬만한 객관적인 수치이다.
그러나 환자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안심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그래서 그들은 0기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투쟁하고 투병하게 되는 것이다.
종양내과 의사로서 그다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갑상선암도 그렇다.
(갑상선암이 쉬운 암이라기 보다는 전이되고 재발한 4기 암환자를 주로 보는 내 입장에서 상대적으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갑상선암은 대개의 조직형이 유두상 (papillary carcinoma) 인데, 이들 질병은 단지 수술을 함으로써 95%이상 완치되며, 유두상 갑상선암이 재발하거나 원격장기로 전이될 확률은 5% 미만이다. 걱정하는 환자를 안심시킬만한 충분한 의학적 근거가 된다.
그러나 갑상선을 전절제할 경우 인위적으로 갑상선 호르몬제를 평생 복용해야 한다는 부담감 - 장기적 합병증이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 때때로 자신의 전신 컨디션에 따라 혈중 갑상선 농도가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때에 따라서는 갑상선 호르몬제의 용량을 조절해서 먹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갑상선호르몬과의 과다 혹은 부족 때문에 암이 아니라 하더라도 각종 불편한 신체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을 할 때마다 환자는 항시 재발을 걱정한다. 암과 관련된 증상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갑상선 호르몬 농도의 변화가 아니더라도
내가 암이라는 병에 걸렸다는 사실 그 하나 만으로도 환자는 충격을 받고 여러 면에서 심리적 위축을 경험한다.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의사가 보기에는 과다한 걱정인데도 말이다.
'너무 예민한 것 같다, 별거 아닌 일 가지고 괜히 우울증을 자초한다'
그렇게 의사가 직접적으로 말해 버리면 환자는 더 충격을 받는다. 그러므로 환자의 언어로, 환자가 이해하고 구성한 질병세계의 구조에 맞게 우회적으로 돌려서 설명해주는 것이 필요할 떄가 있다. 그러나 대개의 의사들은 그런 기술이 부족하다.
이것이 단지 의사소통의 기술,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만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다.
의사와 환자는 병에 대한 인식론적 체계의 구성이 다르다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충돌하지 않고 조우하기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의사로서 나는
환자들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의료정보를 제공하고 교육하려고 노력한다.
환자의 인식론적 체계를 확장하기 위해 의학적 근거자료를 제공하는 셈이다.
또한 환자들이 자신의 심정, 불편감을 일상적으로 의사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블로그라는 공간을 이용해 갖가지 궁금한 사항을 질문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소통할 수 있는 채널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일단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으로 잘 이해하는 것이 선행된다면 그 간격을 좁힐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진지하고 최선을 다해 설명했건만 그 내용이 환자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경우 의미가 없다. 그래서 환자로부터 피드백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블로그를 통해 그 피드백을 받았으면 좋겠다.
일말의 오해가 있었지만 잘 풀렸을 때
그리고 결과적으로 서로를 잘 이해하게 되었을 때
치료 관계가 개선되고 치료 효과도 좋아지는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은
내가 의사로서의 일상을 살면서
보람과 만족감을 느끼고
무한한 기쁨을 느끼게 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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