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222, 왠지 일기쓰고 반성해야 할 것 같은 날이다

슬기엄마 2013. 2. 22. 13:33

 

내가 최선이라고 여겼던 것들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닐 때가 있다.

 

나 스스로는 잘 한다고 한 것인데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걸 가지고 내가 폼 잡은 거라는 걸 알게 된다.

 

최선을 다하기 위해 너무 많은 애를 썼는데

지나고 보면 심지어 잘못된/잘못한 일일 때도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하는게 두렵다.

 

누가 봐도, 어느 때 봐도, 흠 안잡히는 방향으로 최소한만 하고 사는게 어떨까?

 

가늘고 길게

저공비행을 하면

에너지를 아낄 수 있다.

그리고 힘을 분출해야 할 때 응집력을 낼 수 있다.

그래서 평소에 매일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삶이 효율적이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한다.

 

아쉬울 때만 누나라고,

더 아쉬울 땐 엄마라고 날 불러도

밉지 않은 레지던트 동기랑 어제 통화를 하는데,

그는 내가 변한 것 같다며 새삼 나를 꾸짓는다.

의대를 다니고

의사가 되어 트레이닝을 받고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종양내과 의사로 사는 동안

내가 많이 깎이고

내 안의 자아를 많이 잃어버리고

내 뜻을 솔직히 말하기 보다는 남의 눈치를 많이 보고

좀 못난 나를 너무 많이 부끄러워 하는

소심한 사람이 되어버렸나 보다.

이제는 최선을 다하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하는 그런 소심한 사람.

나이값을 못하고 그저 부끄러워하기만 하는 소심한 사람.

 

나이를 먹을수록 내 삶의 철학과 가치관이 안정될 것으로 믿었는데...

 

그런데 나이를 먹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예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일들이 폭풍처럼 밀려들고 그 파도를 막을 겨를도 없이 다른 파도가 나를 덮친다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떠밀려 살다보면 문제가 해결되어 있기도 하다.

 

나의 책임감도 점점 많아진다. 예전에는 불평하고 비판했었는데, 이제는 불평할 여지조차, 비판/비난할 여지조차 없다. 나는 이제 불평할 수 있는 지위에서 불평을 하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의 위치로 자리가 바뀌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어느새 두달이 지나가고 있는 2013년을

이제사 겨우 실감하며

 

내가 만난 환자들에게 했던 말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했던 말

외래에서 같이 환자를 보는 배영숙 간호사에게 한 말

가족들에게 한 말

그 모든 말들은 언젠가 나에게 화살로 날아오리라.

내가 쏜 화살에 내가 맞아 상처받는

그런 일은 없게 하리라.

 

병원별로 의국별로 입퇴국식이 한창이다.

새로 들어올 사람

떠날 사람

새로운 만남을 두려워하지 말고 잠시의 헤어짐에 너무 아쉬워 하지 말자.

다른 누군가의 만남을 통해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지 말고

하루하루 일상에서 나의 내공을 키우는 것에 좀 더 집중하자.

봄이 오기 전에 마음 단속 잘 하고 잘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