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하루만 옛날 생활로 돌아갔으면

슬기엄마 2013. 2. 8. 10:35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백미는

항암제 이외에

항호르몬제

표적치료제를 적절히 조합해서 쓸 수 있다는 점이다.

별로 힘들지 않은 치료제를 쓰면서도 병이 잘 조절되는 기간이 유지될 수 있다.

 

대개의 항암제는 정상 세포에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러 부작용이 심한데 비해

항호르몬 치료는

항호르몬제에 의해 여성 호르몬이 감소하면서 발생하는 폐경 증상으로 고생하는 일부 환자들을 제외하고는 부작용이 거의 없어 의사나 환자나 치료 과정에 부담이 없다. 주의할 사항도 거의 없다.

 

그래서 전이성 유방암 치료의 대 원칙은 이 환자가 항호르몬제 치료의 대상이 되는지 안되는지를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이다. 가능하면 항호르몬 치료를 하다가 병의 burden이 커지면 항암치료를 하라고 되어 있다.

 

수술 후 호르몬 치료를 하던 환자가 호르몬 치료를 시작한지 2년 이후에 재발한 경우

뼈전이나 림프절 등에만 병이 있는 경우

증상이 없는 내장기관 전이

이런 경우 호르몬 치료의 대상이 된다.

 

 

재발 후 첫 치료를 탁소텔로 한 환자, 9번까지 탁소텔을 맞았다.  

탁소텔 치료가 거듭될 수록 부작용이 심하게 나타났다. 

손발저림이 심해지고 흉막에 물까지 고이기 시작했다. 흉막에 물이 고이니 누워서 자기도 힘들 정도였다.

전신부종으로 몸무게도 많이 늘었다.

눈물샘이 막혀 항상 눈물이 글썽글썽한 상태로 눈물이 흘렀다.

흉막의 물을 뽑아서 검사를 해 보니 병이 나빠져서 생긴 물이 아니라 탁소텔로 인한 부종의 2차적 증상이라고 판단되었다. 탁소텔을 끊었다. 환자는 탁소텔 치료 동안 많이 힘들었나보다.

 

항호르몬제로 치료한지 서너달 되었다.

아직 예전 항암치료의 후유증이 남아있지만

환자는 이제 컨디션도 많이 회복되고 병도 잘 조절되어서 좋다고 하신다.

 

'잘 지내시네요. 아직 후유증들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잘 견디시는 거 같아요.'

 

'지금만 같아도 살거 같아요.'

 

환자는

힘들 때마다

단 하루만이라도

유방암을 진단받기 전 그 옛날 생활로 돌아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고 한다.

 

환자는 지금이 그 하루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 하루를 간절히 기다렸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다고 생각한다.

또 다시 재발을 할지, 언제 다시 병이 나빠질지,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는다고 한다.

별로 아프지 않고, 식사 잘 하고, 가고 싶은 곳 있으면 내 마음대로 갈 수 있고, 약 먹는거 힘들지 않고, 그렇게 하루 하루를 지낼 수 있는 오늘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그래서 별로 걱정이 없고 행복하다고 했다.  

 

박원순 시장이 서울시장 보궐선서가 있기 직전 백두대간을 종단하면서 쓴 '희망을 걷다'라는 책 중간 만큼 이런 문구가 나온다. 

그가 백두대간을 걷는 내내 거의 매일 비가 왔다고 한다. 무더위와 습기, 구름과 안개, 계속되는 비 속에서 배낭과 옷, 신발이 마를 날이 없다고 했다. 축축한 빨래감을 계속 입고 다니는 셈. 젖은 물건들은 무겁기도 하지만 그 쉰내란, 검사 시절 사망한지 며칠 된 시체 냄새를 맡은 적이 있었는데 그것과 같다고 묘사했다. 햇볕에 잘 마른 옷과 배낭, 신발. 그 뽀송뽀송한 느낌을 맛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적어 놓았다.

 

우리는 어쩌면

일상의 소중함,

사소한 것처럼 흘러가는 지금의 평온함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잊고 사는지 모르겠다.

 

내일이면 설이다.

올 1월 1일 미쳐 챙기지 못했던 결심과 마음가짐을 단속해 본다.

우리나라에는 구정 설이 있어 다시 한번 이렇게 마음을 다잡을 기회를 주니 얼마나 다행인가.

마음 한구석에 올해 토정비결이 좋았다는 사실이 무기처럼 자리잡고 있다.

한 선생님이 전화를 걸어 덕담을 해 주신다.

내일부터 시작되는 올 한 해에는 선생님이 평화로운 마음으로, 너무 힘들지 않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내가 바라는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닐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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