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 담론이 유행입니다.
다들 사는게 힘들기 때문에 그런 것 같습니다.
환자들 역시 몸도 몸이지만 마음이 더 힘듭니다.
저도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 시중에 나와있는 수많은 힐링 관련 서적들을 읽었습니다.
너무 많이 읽어서 질렸습니다. 이제는 더 읽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만 읽으려구요.
힐링은 그런 책과 지식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것 같습니다.
영어로 다음과 같은 개념들을 이 정도로 번역하면 될까요?
cure ---> 완치
care ---> 돌봄
healing --> 치유
현대의 많은 병은 완치되기 어렵습니다. 또 완치가 된다 하더라도 치료 중 얻게 되는 합병증이 있기 때문에 몸이 100% 정상이 아닙니다. 치료가 끝났다고 하지만 여전히 힘들고 나에게 부족한 것들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돌봄과 치유과정이 필요합니다.
암도 그런 것 같습니다.
수술이 가능한 병기이기 때문에 완치될 수 있다고 말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암을 치료하기 위해 추가적인 항암치료나 방사선치료가 덧붙여 집니다. 그런 치료를 받고 나면 몸의 정상세포들도 손상이 되어 다시 제 기능을 찾는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더러 완전히 정상적으로 회복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몸이 상해서 제 기능을 찾는 동안 마음도 많이 상합니다. 사실 마음을 치유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완치가 어려운 재발성, 전이성 암을 치료하는 목적은
살아있는 시간을 연장하고 그 시간동안 삶의 질이 유지되어 잘 살 수 있도록 많은 지지, 보완장치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현대 의학의 힘만으로는 그런 보완장치를 완벽하게 제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대체요법을 찾습니다. 보험이 되지 않은 약이나 시술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시도해 봅니다. '지금 돈이 문제냐 사람이 문제지' 그런 마음으로 시도해 보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저런 대체요법을 시도해보고 설령 효과가 없다 하더라도 문제삼지 않습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마음으로 시도해서 그런 걸까요? 사람들이 그런 대체요법의 효능에 대해서는 너그러운 것 같습니다.
대체요법에는 너무 다양한 종류가 있고 돈도 많이 듭니다. 전 이제 막무가내로 막지는 않습니다. 제가 하지 말라고 해도 다들 알아서 하시더라구요. 근거가 없는 대체요법에 많은 노력과 시간과 돈이 투자하는 것 같아 안타깝지만 말입니다.
얼마전 저에게 소금을 선물로 주신 환자가 있었습니다.
암에 걸리고 보니 이제 먹는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다며 유기농으로, 자연식으로 식생활을 바꾸셨다고 했습니다. 음식의 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소금이 필수적인데 나트륨이 많이 든 소금은 너무 짜기 때문에 염분이 낮은 소금, 음식맛을 더 깔끔하게 만들어 주는 소금이라며 저에게 선물해 주셨습니다.
저는 그 소금 자체가 몸에 주는 이로움보다는
일상생활과 자신의 생활 습관을 건강한 생활방식으로 바꾸려고 노력하는 그 정신과 태도가
그 환자에게 더 중요하게 작용하는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저는 저 자신을 힐링시키고 싶을 때
1. 자신에게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극복하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고 따라하려고 노력한다. 그들을 모범삼아 나도 그들처럼 생활하도록 흉내를 내 본다. 그리고 그들의 상황을 보며 내가 가진 어려움과 상처는 어쩌면 별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반성을 한다. (인생 원래 녹녹한 것이 아닌데, 나 너무 엄살떠는 거 아냐? 그렇게 말이죠.)
2. 마음깊이 나를 이해하는 친구에게 도움을 청한다. 나의 잘못과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친구의 코멘트를 들으며 반성하고, 그렇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내 편이 되어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친구의 마음을 선물로 받는다.
3. 비록 내가 가진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아 보여도, 잘 살펴보면 나는 여전히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나누는 것에 인색하지 말자. 지금 절대적으로 커 보이는 내 문제에 시선을 집중시키지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 그 일을 열심히 한다. 어쩌면 그런 나의 노력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노력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니
누군가가 나를 일부/순간 도와줄 수는 있어도
결국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는 나입니다. 나만이 지금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중심을 잡고 잘 서야 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외롭고 썰렁해도 말이죠.
그렇게 내가 안간힘을 쓰고 중심을 잡으려고 애쓸때 어디선가 도움을 주는 손길이 나타납니다.
그 손에 너무 의지하면 안되지만
그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상황이 있습니다.
그럼 저는 그 손을 적극적으로 잡습니다. I need your help. 나 좀 도와줘.
실질적인 도움이든 마음뿐인 도움이든 사람의 온기를 느끼고 싶습니다.
그런 손길이 내 마음을 어루만져 줄 때 나도 기운을 차리고 의욕을 되찾게 되는 것 같습니다.
어제 한 친구와 통화를 하였습니다.
자기 일상도 편치 않으면서 나에게 도움을 주려고 애쓰는 그 마음을 느꼈습니다.
그는 나를 엄격히 분석하였고 나를 나무랐고 나의 잘못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내 편이었습니다. 내가 비록 부족함이 많고 못난 점이 많아도 나를 아끼는 친구였습니다.
잘 나가는 친구만 친구로 사귀는 것은 아니니까요. 못 나고 바보같아도 친구는 친구니까요.
그는 나에게 애 많이 썼다며, 그리 잘 못 산건 아니라며, 조금만 더 노력하고 애쓰라며, 힘내라고 해 줬습니다.
상처받은 우리 삶을 돌보고 치유하는 것에 정답은 없습니다.
그런데 사랑의 마음은 꼭 필요한 것 같습니다.
내가 매일 만나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힐링의 기운,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의사가 되려면
나부터 마음이 평화롭고 몸과 마음이 건강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문자로, 메일로, 비밀댓글로 나에게 신년 메시지를 전하는 환자들의 마음을 감사히 받겠습니다.
새해에는 새로운 마음으로 더 노력하겠습니다.
'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 > 주치의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222, 왠지 일기쓰고 반성해야 할 것 같은 날이다 (4) | 2013.02.22 |
---|---|
의미있는 연구란... (0) | 2013.02.19 |
하루만 옛날 생활로 돌아갔으면 (6) | 2013.02.08 |
만일 (4) | 2013.02.05 |
새로운 결심을 하게 하는 것 (3) | 2013.0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