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편지하세요

슬기엄마 2013. 3. 21. 12:15



아저씨들은 아파도 아프단 말씀을 안하신다.

이리 저리 말을 바꿔서 다양하게 질문을 해봐야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 대략 파악할 수가 있다.

그냥 인자한 표정으로 자신의 품격을 유지하며 견딜만하다는 대답을 하시는 정도다.


내가 주로 여자 환자를 진료해서 그런지

이에 대별되는 남자 환자들의 특징이 잘 느껴진다.


일단

당신 말씀을 잘 안하신다.

질문도 별로 없으시다.

당신 증상에 대해서도 표현을 잘 안하신다.

그래서 어디가 얼만큼 불편한지, 통증은 어떤지, 새로 생긴 증상은 없는지, 약물 부작용은 없는지 파악하는 것이 쉽지 않다. 


또 검사 결과나 다른 설명을 해 드려도 별로 반응이 없다.

평소 여자 환자들과는 수다스럽게 별 얘기를 다 하는 나로서는 좀 어색하기도 하다.

여자 환자들은 내가 무슨 말 한번 하면 

그건 왜 그러는 거냐고, 그 다음은 어떻게 되는 거냐고, 이게 좋은 거냐고, 

내 설명에 뒤이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한다. 

그런데 남자 환자들은 그냥 듣는다.

한편으로는 좀 편하기도 하다. 환자가 말이 없으니까.

다른 한편으로는 좀 불편하기도 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지 잘 모르겠으니까. 



오늘 퇴원하시는 분.

평소 건강해서 입원이라고는 이번이 처음이다. 

온갖 검사, 시술, 수술을 하시고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오늘 퇴원하신다.

지금 통증 조절이 완전치 않지만, 진통제를 올려보니 말씀도 느려지시고 기분도 다운되는거 같아 약간 부족한 듯 싶어도 일단은 그 선에서 만족하기로 하였다. 


환자랑 더 많은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첫 진단, 첫 치료로 환자가 많은 충격을 받은 것 같아 별 말을 못했다. 

환자의 블로그에 들어가 본다. 2월 2일로 그가 쓴 글이 멈추었다. 그의 시계가 멈춰 있다. 


퇴원하는 환자에게


책상 앞에 앉으실 수 있겠어요?


아니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칠 수는 있겠어요?


아니오


책 읽는 거는요?


책이 무겁게 느껴져요.


그럼 뭐 하실거에요?


하루에 세시간씩 집에 와서 친구가 책을 읽어주기로 했어요.


네... 기운나면 저에게 메일 보내주실 수 있겠어요?


네.



치료가 잘 되서 우리 아저씨 기운이 많이 나고 

나랑 필담을 나눌 정도가 되면 좋겠다.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