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오늘은 주무세요

슬기엄마 2013. 3. 22. 20:21


환자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며 고생하다가 

아침에 회진을 갔더니 나에게 메모를 건넨다. 



지금의 내 상태는 산소없이 스스로 생존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생존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셈입니다.

마스크에 이어진 산소가 끊어질까봐 온 신경을 쓰며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안정제, 진통제, 수면제, 왕창 투여하면서 

산소를 끊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숨차하면서 고통스럽게 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면서 죽으면 좋겠습니다.



환자는 그저께부터 마스크를 통해 산소를 최대한 공급받으며 호흡을 유지하고 있다.

폐로 병이 많이 진행되어 그렇다. 

심폐소생술이나 인공삽관은 하지 않기로 했다. 

혈압이 떨어져도 아무 조치도 하지 않기로 했다.

환자 스스로

그리고 환자 아머니도 그렇게 결정하셨다. 

단호하게. 



환자는 나랑 동갑이다.

환자는 처음 병을 진단받았을 때 유방암 치료를 받지 않았다.

나름의 신념이 있었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몇 번 이야기를 나누었다.

난 그녀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에는 날 쳐다 보고 말하지도 않았던 그녀가

치료가 진행되면서 조금씩 나를 치료의 동반자로 인정해주는 것을 느꼈다.

치료가 힘든 거에 비해 그녀의 병은 별로 좋아지지 않았다.

그런데도 조금씩 나를 믿어주는 것을 느꼈다. 


난 최고의 치료를 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잘 걷지 못하는 그녀를 걷게 해 주고 싶었고

숨쉬기 힘들어하는 그녀를 편히 숨쉬게 해주고 싶었다. 

처음에는 항암치료의 후유증으로 이래 저래 불평이 많았던 그녀가

점차 많은 불편감들을 인내하고 참았다. 

나의 설명을 신뢰하고

내가 하자는 대로 치료 방침을 열심히 따라 주었다.


난 끊임없이 그녀를 격려하고 나를 격려하였다.

약제 반응이 신통치 않은 것을 보며 

나의 치료 방침에 어떤 오류가 있었는지 몇번을 재점검하였다.



그녀의 메모를 받고 

내가 종양내과 의사가 된 것을 후회하였다.


전 죽게 되는건가요?


네... 

결국 돌아가시게 될거에요.

이제 얼마 남지 않은거 같아요. 


결국 이런거 였나요? 

산소포화도 수치만 쳐다 보고 있는 내가 너무 싫어요. 


힘들지 않게 해드릴게요.

밤에는 푹 주무시도록 수면제를 쓰는게 좋을거 같아요. 

그래야 훨씬 숨찬 것도 덜하고 덜 힘들 거에요. 


그렇게 해주세요.

좀 자게 해주세요.


마스크를 쓴 채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너무 약하다.


방을 나서며

나는 가슴을 친다. 


오늘 밤 그녀를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오직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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