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모부는
그냥 회사원이고, 평사원으로 시작해서 적당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속도로 승진하여
지금은 간부로 일하시고, 정년할 때까지 회사에 다닐 예정이시다.
아들 둘을 둔 한국의 50대 가장.
이모부는 온갖 가족모임을 준비하시는데
모이는 시간, 장소, 돈, 이동수단, 시간표, 일정, 식사 등 모든 시간표와 관련 업무를 엑셀로 표를 만들어 가족별로 분담시키고 목적지 지도와 사진 등을 첨부한 문서를 준비하여 미리 나누어주신다. 대규모 가족여행을 가면 사전답사, 여행 당일 안내, 일정 체크, 돈관리, 안전사고 예방까지 당신이 다 하신다. 가족의 보물이다.
이모부는 말씀을 재미있고 조리있게 잘 하시는데
평소 말씀을 많이 하시는 편은 아니다.
그런데 가끔 누군가에게 짧은 코멘트를 하신다.
예를 들면
내 동생이 한쪽 귀를 뚫고 귀걸이를 하고 다녔는데
'넌 복이 그 구멍으로 다 나갈거야. 그러니까 귀를 막아라.' 라든지
가족 중에 누가 이사를 하면
'이 방은 누구누구랑 잘 맞는거 같아요. 누구랑 방을 바꿔주는게 더 나을거 같아요.'
우린 그런 말을 들으면 좀 뚱딴지 같다는 느낌을 받지만
이모부의 코멘트를 절대적으로 따른다.
왜냐하면 나중에 보면 이모부 말이 맞아서 깜짝 놀랐던 일이 몇번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얘긴 지금 다 할 수 없지만...
이모부는 그런 말씀을 단호하게 하시지 않고 지나가는 말처럼, 그럴거 같은데... 이런 식으로 혼잣말처럼 하신다. 그리고 왜 그런 말을 하냐고 물어보면 잘 모른다고, 그냥 그런 느낌이 든다고 하신다. 왜 그런느낌이 드는지, 그런 생각이 드는지 자기도 설명할 수 없다고.
이모부는
십년이 넘게 명상을 동반한 단전호흡을 하고 계신데
집중해서 호흡을 한다는 것은
마치 햇볕을 돋보기로 모아서 한 점에 집중하면 거기에 까만점이 생기고 연기가 나기 시작하다가 불이 붙는 그런 과정과 같다고 하신다.
집중을 하면 어떤 에너지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행을 가도 피곤하거나 컨디션이 안좋다고 느껴지면 가족들 다 있는데도 혼자 방 구석에서 조용히 명상을 하신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대학원 과정으로 역학에 대해 공부하시고 작년에는 원광대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으셨다. 십년 넘게 공부하신다. 직장을 다니면서 그렇게 힘들게 지방까지 내려가서 공부하시는 이유를 묻자, 나에게 왜 그런 것들이 보이는지, 왜 그런 느낌을 받는지 궁금하고 설명하고 싶어서 그렇다고 하신다. 올해 초에는 풍수에 관련된 책도 내셨다.
이모부, 관상도 볼 줄 아세요?
잘 몰라. 근데 뭐가 보이기는 해.
뭐가 보여요?
잘 모르겠어. 일관적이지 않아. 누굴 보면 검은 연기가 피어나는게 보이기도 하고 등 뒤에 큰 곤충이 붙어있기도 하고 그런 게 보여. 그게 뭔진 몰라. 뭔가 그런걸 한번 보고 나면 좀 무서워.
미래도 보여요?
잘 모르겠는데, 가끔 보였던거 같아. 근데 미래를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좀 무섭더라고. 미래를 본다고 해서 뭐가 바뀌는 건지도 모르겠고 뭘 알게 된다 하더라도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는게 맞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미래는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건 인간에게 큰 유혹이야. 그걸 자꾸 볼려고 하면 이상한 사람 되는거지.
이모부, 전 어때요? 뭐 보여요?
말씀이 없으시다.
그냥 우리는 소주잔으로 브라보 하였다.
수현아,
근데 의사인 너한테 이런 말 하는게 좀 우습지만
넌 요즘 심혈관 계통이 안좋아지기 시작하는거 같아.
스트레스가 많니?
이제 막 나빠지기 시작하는거 같으니까 운동하고 노력해서 건강 잘 지켜라.
우리 집 양가에 뇌졸중, 심장마비, 고혈압 병력이 수두룩하다.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외삼촌은 심장마비로 젊어서 돌아가셨다. 할아버지도 관상동맥이 막혀 수술하셨다. 외할아버지도 돌아가실 땐 췌장암이었지만 뇌졸중을 세번 겪으셨다.
나는 아주 고위험군이다.
미래를 알 수도 없고
안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 할 수 있는 건 해야겠다.
난 명상은 잘 못하겠다. 정신집중력이 너무 떨어진다.
오늘부터 당장 안산오르기를 시작해야겠다.
내가 잘 하는거, 힘들지 않은 걸로 다시 시작해야지.
지난 겨울, 춥다는 핑계로, 인생사 꼬인다는 핑계로, 산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봄이 되었지만 늘 시간은 없고 더 바빠지기만 한다.
마음의 여유는 절대 저절로 찾아오지 않는 것 같다.
우리는 어떤 결심을 해야 하는데
말이 되는 안되든 핑계가 좀 있어야 한다.
인생은 결국 나의 결심으로 살아가는 것, 이모부가 나한테서 뭘 본 것 같다.
건강을 좀 챙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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