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 가치있는 것이라면
설령 같은 시대, 같은 공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결코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한 선생님이 해주신 말씀이에요.
과연 우리에게 사라지지 않고 남아있는 가치란 무엇일까요?
오늘 한 전공의가 저에게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지난 1년간 저와 함께 일했던 레지던트 8명을 대표해서
그들이 준비한 저녁 식사 자리에 저를 초대하겠다는 것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라고 시작되는 메일은 '존경'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받아들이기 무색한
거북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레지던트 1,2년차로 병원생활을 하면서
해가 지는지 뜨는지, 공휴일인지 아닌지, 내 생일인지 아닌지도 제대로 모르는 채
하루하루를 바쁘고 힘겹게 사는 그들이
나를 위해 저녁 식사 모임을 만들고 초대하는 메일을 보내주니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교육이라는 미명하에 내가 그들에게 쓸데없는 일을 시킨 것은 없는지
바쁘다는 핑계로 제대로 가르쳐주는 것 없이 일만 시킨 것은 아닌지
선생과 제자 사이에서 오갈 수 있는 마음을 소통하는 것에 소홀함은 없었는지
나 자신을 되돌아 보게 됩니다.
물론 저는 나름으로 노력했지만 해준게 없는 초라한 선생입니다.
그들을 대함에 있어 항상 공정하지 않았고
사소한 실수를 참지못하고 버럭 화를 내기도 했고
내가 모범을 보여야 한다는 생각 따위는 한 적도 없습니다.
후배니까 잘 해주고 싶다, 배고플텐데 밥이라도 사줘야겠다 그런 생각 가끔. 그나마도 가끔.
그런데 그들이 나를 먼저 챙겨주네요.
내가 존경하는 우리 병원의 한 선생님은
매년 자기 파트를 돌았던 전공의들을 모아 저녁 식사를 사 주십니다. 나도 그 식사를 얻어먹었던 전공의였습니다. 그 자리에 참석하면서 나도 저런 선생님이 되어야지 생각했건만 막상 선생의 위치에 서게 된 지금, 뭔가 쫓겨 허둥지둥 그런 실천을 하지 못하고 살던 차에 전공의가 먼저 나에게 이런 자리를 제안하니 무안하기 짝이 없습니다.
저녁 식사를 하게 되면 밥값이라도 제가 내야겠습니다.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의사로서
학생과 전공의 후배들을 가르치는 일만큼 가치있는 일이 또 어디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런 소중함을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의 편지를 받고 나서
나를 반성하였고 너무나 고마웠습니다.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나를 부끄럽게 만드는 고마운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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