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나만의 VIP

슬기엄마 2013. 1. 23. 22:28

 

솔직히 

정이 가는 환자가 있다.

유난히 잘해 주고 싶은 환자가 있다.

모든 환자에게 똑같이 마음이 쓰이지 않음을 고백한다.

환자가 별 말 안해도 내가 알아서 꼼꼼히 챙기게 되는 환자가 있다.

이상하게 그런 환자가 있다.

 

토요 진료가 없는 주간에도 그를 위해 매주 토요일 그만을 위한 특별 클리닉을 열었다.

 

거동이 불편한 그를 위해 외래 오는 날과 검사하는 날을 맞춰서 한번에 오게 해 드렸다.

검사 일정이 잘 맞지 않으면 내가 직접 검사실로 연락해서 부탁도 드린다. 환자 형편이 이러이러하지 편의 좀 봐주세요. 말이 부탁이지 완전 푸쉬다.

 

어떤 환자에게 항응고제 약 처방이 빠진 적이 있었는데 직접 택배로 보내드린다. (물론 이건 나의 잘못이기 때문에 할 말은 없지만...)

 

매번 꼼꼼하게 신체 검사를 다 하게 되는 환자도 있다. 청진 촉진 시진 타진을 다 해 본다.

 

 

이 환자도 그랬다.

폐가 허옇게 되어 숨이 차서 응급실로 오셨다.

이미 자궁경부암 수술력, 흉선암 수술력, 당뇨, 고혈압 기타 등등

내가 이 환자를 처음 봤을 때는

투여되고 있는 약도 많고 환자 상태도 않좋고 환자랑 대화를 하기도 어려웠다.

 

그렇게 힘들어하는 환자의 원발병소를 찾기 위해 여기 저기 조직검사를 하였다. 진단이 안되 숨이 차 하는 환자에게 내시경 검사도 해야 했다. 조직검사를 폐, 림프절, 자궁 등 여러 장기에서 세번 정도 했던 것 같다.

 

환자는 산소 10 리터를 하고 숨을 쌕쌕 거리면서도 내가 검사하자고 하면 군말없이 다 했다. 컨디션 어떠냐고 하면 그냥저냥 버티고 있다고, 좋아지겠죠 뭐, 그랬다.

검사결과가 애매해서 추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내가 어렵게 운을 떼서 말하면 아이고 다 늙어서 왜 이렇게 골치아프게 구는지 모르겠다며 환자가 너털 웃음을 웃었다.

결론은 난소암 폐전이로 내렸다. 사실 난소암인지 자궁암인지도 명확하지 않았고 위암의 가능성도 있었다. 병리 슬라이드를 몇번 리뷰하고 여러 병리 선생님과 상의하여 난소암으로 진단명을 '붙였다'. 진단이 된 것이 아니라 붙인 것이다. 이런 의사의 진료를 지켜보는 아들과 딸, 못 마땅한 기색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의료진의 결정을 따르고 나를 믿어주었다.

 

몇번의 호중구 감소증과 열, 동반된 폐렴...

살얼음판을 걷듯

6번의 항암치료를 겨우 마쳤다.

그리고 그렇게 허옇던 흉부 엑스레이가 많이 까매졌다. 산소 없이 숨 잘 쉬신다.

 

 

그러나

치료과정 중에

혈소판 수치가 떨어지니 혈뇨가 나오고 혈뇨가 나오니 부정맥 때문에 먹고 있던 쿠마딘을 끊고 그러다가 뇌경색이 지나갔다.

처음에는 항암치료 때문에 힘들어하는 줄 알았다. 꼼짝없이 이틀을 내리 주무셨다. 반응이 많이 느려졌다. 항암치료 후유증으로 보기에는 이상해서 뇌 MRI를 찍었더니 새로운 뇌경색 병변이 생겼다. 항암치료를 잠시 보류하고 다시 항응고제를 써야 했다.

 

항암치료 후 변비가 심해서 대변 완화제를 드렸더니 하루 종일 설사를 대여섯번 하시고

급성 신부전으로 응급실에 오셨다. 콩팥 수치가 천정부지로 올랐다. 심장이 크고 기능이 떨어져 수액도 충분히 드릴 수가 없었다.

 

암튼 뭔가 사소한 거 하나라도 안맞으면 바로 응급실행이었다.

그렇게 응급실을 오가며 힘겹게 항암치료를 했다. 과연 이렇게 항암치료를 하는게 맞나 싶었다.

4층 단독주택의 4층에 사는 환자.

그녀가 한번 병원을 오려면 아들이 환자를 업고 4층 계단을 내려와야 했다.

바깥 출입을 하기에 주거환경이 좋지 않았다.

아들과 딸이 너무 효자였다.

그런 자식들 첨 봤다.

그러나 그들도 반복되는 병원 생활에 많이 지쳤다.

 

환자에게 물었다.

 

너무 힘들지 않으세요?

치료 좀 쉴까요?

 

아니야, 지금까지 고생한게 어딘데, 하는데 까지는 해야지. 아직 괜찮아.

숨쉬는 거 편해진거 봐. 고생해도 참고 하면 더 좋아질거야.

 

그렇게 항암치료를 마쳤다.

그런데 뇌경색 이후 잘 걷지 못하고 일상생활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재활이 필요하게 되었다. 

재활의학과에 특별히 부탁을 드려서

암환자로서가 아니가 뇌경색 이후 재활인만큼

적극적으로 재활치료를 하게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환자의 컨디션을 고려했을 때 입원해서 재활치료가 가능한지 사정을 말씀드렸다. 원래 자리가 잘 안 나는데 일이 될라고 그랬는지 이 환자는 입원을 하였고 두달간 재활치료를 하고 나서, 다시 걸어 내 외래에 오시게 되었다.

 

그렇지만 오래지 않아 다시 폐렴에 걸렸다. 또 다시 입원해서 3주간 치료했다.

한번 입원을 할 때마다 환자 컨디션이 팍팍 나빠지는게 느껴졌다.

그러나 기를 쓰고 치료해서 퇴원시키면 환자가 좋아져서 나타났다. 난 환자에게 오뚜기 할머니라는 별병을 붙여드렸다.

 

난소암은 아직 고만고만하다.

 

그리고 오늘 CT를 찍고 외래에 오셨다.

 

할머니는 어디서 들으셨는지 말문을 열지도 못하고 눈물부터 글썽거린다.

같이 온 아들과 딸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는 그 자식들과 함께 몇번의 위험한 고비를 넘기며 환자에 대해 상의하고 고민하였다.

치료를 할건지 안할건지 여기서 나빠지면 중환자실을 갈건지 안갈건지 그런 얘기를 여러번 했다. 그때도 우리는 같이 속상했었다. 그러나 환자가 좋아지고 퇴원을 하면서 우리는 늘 웃으면서 헤어졌다. 그리고 또 웃으면서 외래에서 바이바이 하면서 만났다.

 

종양표지자가 좀 올랐다. 세달 뒤 검사와 외래를 잡으며 불안하다.

할머니에게 미쳐 말씀드리지 못했다.

 

나중에 대기석에 앉아있는 아들만 따로 불러서 종양표지자 얘기를 했다.

세달 못 되어어도 힘들면 다시 오시라고. 세달 다 채우고 기다리지 말라고.

오늘 우리는 충분히 얘기도 못하고 그냥 몇마디 필요한 말만 하고 헤어졌다.

 

할머니는

내가 영감 죽었을 때도 이렇게 슬프지는 않았는데

사람이랑 헤어지는게 이렇게 슬픈건 처음이네

하셨다.

 

할머니가 나간 후 잠시 외래를 중단했다.

나도 태연한 마음으로 외래를 보기 힘들었다.

나만의 VIP 환자였던 그녀와 작별을 하려니 마음이 안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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