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주 만나는 환자들이 있죠. 치료 스케줄 때문에.
그런 분들은 사실 저에게 아주 가까운 분들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그렇게 자주 만나는 사람은 없거든요.
거의 매일 밤에 늦게 들어가는데, 가보면 가족들은 모두 잠들어 있고
아침에는 눈 뜨면 허둥지둥 병원으로 뛰어오니까 가족과 별 대화를 못해요.
그거에 비하면 정기적으로 지속적으로 그런 만남을 갖고 지내는 환자분들과 훨씬 관계가 밀접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도, 환자도 서로가 편한 관계가 됩니다.
그래서 어떨 때는 서로가 별 말 없이
괜찮으시죠?
네. 저 오늘 수치 괜찮죠? 항암제 맞고 갈께요
그렇게 썰렁한 문답으로 진료를 마칠 때가 있을 정도에요.
그렇게 썰렁하게 말하고 나면 서로 눈을 마주치고 웃습니다. 그 웃음의 의미조차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그랬을까요? 제가 실수를 했어요.
환자가 자기 문제 말고 다른 가족의 문제를 저에게 상의했는데
암에 관련된 것도 아니고
어떤 과를 가서 진료를 받아야 하냐고 묻는 질문에
이러이러하니까 무슨 과 가시라고
그런데 그 말 끝에
다음부터는 다른 사람 질문은 하지 마시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는데
환자는 그 말에 너무 속상하셨나봐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사실 진료시간에 제 마음은 항상 진료지연을 걱정하며 제 시간내에 진료하느라 마음이 총 긴장상태거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진심'이 나와버렸나 봅니다.
그렇지만 환자는 3주 내내 저에게 섭섭하셨나봐요. 얼굴이 아주 긴장이 되어 저에게 그 이야기를 하시더라구요. 너무 속상했다고. 그 마음까지 다 지워버리고 싶어서 솔직하게 말씀하시는 거라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도 기계적인 의사가 되어가나 봅니다.
환자는 자기 주치의에게 모든 걸 기대하고 털어놓고 의지하고 싶어하는 존재인데
의사는 시간을 재고 나의 남은 에너지를 측정하고 기계적으로 진료하는 존재가 되어가나 봅니다.
진료에 관련된 모든 행위를 수가로 매길 수는 없는 건데도
저는
내 일이 아닌 문제에는 더 이상 관여하고 싶지 않은,
내가 맡은 진료의 영역 내에서만 발언하고 싶어하는 그런 의사가 되어가나 봅니다.
속상하셨다는 환자의 말씀에 진심으로 사과했지만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은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걸 잘 압니다.
저도 아직 반성하고 배우고 고칠게 많은 그런 존재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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