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의 자존심
의료보험수가의 문제
DRG의 시행
의료전달체계의 문제
질높은 의사 양성을 위한 교육의 문제
사보험 제도의 폐해
잘못된 의료 정보의 만연
최고로 질높은 의료를 추구하는 국민과 의료비용을 규제하려는 정부의 대립
시스템과 제도, 정치적 논쟁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가 많은 주제들입니다.
저는 사회학을 공부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주제들에 대해 민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한때는 이런 주제에 대한 연구가 저의 학문적 목표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저는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습니다.
사회적 발언을 하지 않는게 잘하는 짓이라는 게 아니라
저는 당장 내 눈앞의 환자 한명의 이익을 위해 이리 저러 머리 굴리고 대안을 세우는 과정에서
환자 한명마다 독특한 맥락에서 치료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협소하고도 협소한 주제에 목을 매는 임상의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일 밤 다음날 외래 올 환자들의 사진을 보고 병이 좋아졌는지 나빠졌는지 미리 판단하고
공식 판독과 내 의견을 비교해보고
그동안의 검사결과를 다시 한번 리뷰해보고
환자의 상태 변화를 점검해보고
다음 날 환자가 오면 어떻게 결정해서 치료지침을 정할지
매일매일 그것만 고민하는 임상의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건강 보험제도랑 뭔가가 맞지 않으면
보험제도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비판하고 대안적 의견을 제시하는 것 보다는
이 틈새를 어떻게 뚫고 환자에게 이익이 되는 지침을 정할지
이 틈새를 이용해서 이 환자에게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는지 그 ‘꼼수’를 찾아
하루하루를 보내는 임상의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실력으로, 내 견해로 해결이 안되면
우리병원의 다른 의사선생님들, 다른 병원의 의사선생님들에게도
SOS를 청해서 좋은 묘안이 없는지 의견을 구합니다.
그렇게 최선을 다해도 저는 아직 부족함이 많은 그런 의사라는 것도 인정합니다.
환자를 보는 순간, 의사는 누구나 이렇습니다.
그래서 획일적으로 의사를 규제하려는 제도에 반발하게 됩니다. 그런 기준으로 해결할 수 없는 수많은 임상현장의 문제들을 경험적으로 예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전문직(professionalism)으로서 의사가 갖는 자존심입니다.
(사회적 합의와 정치적 논쟁에 의사집단이 취약하다는 존재적 한계는 인정합니다. 모든 의사가 다 성스럽고 고귀한 존재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모든 직업집단 내부적으로는 수준미달의 존재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의사 중에서도 그런 수준 미달의 의사가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개별 임상의사가 전문직업인으로서 전문성을 다하기 위해 임상 상황에서 독특한 맥락과 상황에 따라 최선을 다해 진료하고 있다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걸 인정하지 않으면 전문성은 발을 붙일 곳이 없습니다.)
그 자존심에 상처를 받으면 의사는 절망합니다.
그 자존심을 인정해주면 의사는 힘이 납니다.
환자를 진료하면서
그 자존심을 잃지 않는 의사가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합니다.
그것은 의사라는 직업의 본질입니다.
그 자존심이 무너지면
차마 환자를 대할 수 없습니다.
내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최선을 다해 진료에 임하려고 합니다.
환자를 보는 매 순간 그 마음을 잃지 않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삶은
매순간 제 자존심을 시험합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그 자존심을 시킬 수 없다는 것을 조롱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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