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학생수업, 그 신선한 바람

슬기엄마 2012. 6. 23. 00:16

 

오늘은

본과 2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나쁜 소식 전하기' 수업을 하였습니다.

작년에 role play를 처음 도입해서 진행해 보았고 그때 학생들의 feedback 을 기반으로 하여

올해는 조금 변형된 방식으로 운영해 보았습니다.

한 환자의 스토리를 세번의 장면으로 나누어

첫 진단, 재발, 병이 나빠져서 더이상 치료가 어려울 때

이렇게 세 국면에서

환자, 보호자, 의사의 역할을 하는 세명의 배우가 연기를 하였습니다.

아직 학생이라

환자로서 병에 대한 견해, 의사에 대한 기대 등이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제가 지난주에 오리엔테이션 해준 것을 기반으로 하여

학생들 나름으로

진료 상황에서 환자와 어떤 대화를 할 것인지, 환자들이 어떤 점을 궁금해 할 것인지, 의사로서 어떻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인지를 고민하여 연기하였습니다.

그들의 공연을 본 학생들의 feedback을 받았습니다.

제가 role play를 전문적으로 잘 운영하는 사람이 아닌지라 부족함이 많았지만

학생들은 환자의 입장에서 어떤 심정으로 의사를 만나는지,

보호자는 환자와 의사 사이에서 어떤 갈등을 하게 되는지

의사는 어떻게 설명해서 환자와 보호자가 상황을 이해하게 할 수 있을 것인지를 고민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쁜 소식 전하기의 내용을 2시간 동안 이론적으로 전달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할 때 직면하게 되는 너무나 흔하고도 평범한, 그러나 늘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정답도 없는 이런 상황을 예시로 주고, 어떤 어려움에 처하게 되는지를 실질적으로 경험하는 수업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학생들의 feedback은 항상 신선합니다.

그리고 이미 관성화되어 버린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시각을 제시해 줍니다.

아직 때묻지 않은 순수한 시각으로 문제제기를 합니다.

수업에 대한 학생들의 평가서를 읽으며

선배 의사로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들도 많고

왜 이런 문제제기를 했는지에 대해서도 본격적으로 토론하고 싶은 주제를 많이 던지고 있습니다. 내 마음에도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생깁니다.

 

수업을 마치고

연기를 한 9명의 학생들과 간단하게 평가를 하였습니다.

강의실에서 수업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생생하게

우리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 동기부여가 되었다고 합니다.

시험을 위해 병기와 생존율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치료가 가장 효과적인지를 족보처럼 달달 외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배우는 지금의 의학적 지식이

환자를 만나는 매 순간, 의사로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여 보다 나은 치료방침을 결정하는데 중요한 기초정보와 지식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또한 제한된 시간에 환자를 만나 효과적으로 의사소통을 하고 최적의 치료방침을 결정하는 과정에는

단지 공부만 잘 하는 의사가 되는 것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합니다.

빽빽히 평가서를 적어준 학생들의 성의에 감사합니다.

아직 다 읽지 못했습니다. 한장 한장 밑줄 치면서 읽고 있습니다. 이들의 코멘트를 읽고 있으니 제 마음 속에 신선한 바람이 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어떤 인센티브도 없는데 자원하여 배우로 활약해 준 9명의 학생들에게도 더 큰 감사를 드립니다. 참여하면서 더 많은 배움과 깨달음이 있었기를 기원합니다.

 

우리 의학교육의 현실은 콩나물 키우는 것과 비슷하다는 말을 농담처럼 합니다.

콩나물 시루에 물을 주면 순식간에 물이 다 빠져나가버리는 것 같지만 결국 콩나물이 자라는 것처럼

뭐가 뭔지 모르겠는데 왕창 배우고 시험치고 또 다 잊어먹고 다시 외우고 시험보고 다 잊어먹고

그런 부질없는 과정이 반복되는 것 같아도

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 머리 속에 지식이 형성되고 의사가 되는 거라는 다소 씁슬한 농담입니다.

그러나 저는 feedback을 읽으며

우리 학생들이 단지 콩나물이 아니라 거대한 소나무로 성장할 수 있는 엄청난 잠재력과 학습능력을 가지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의식과 깨달음을 잘 살려서 나보다 백만배 훌륭한 의사가 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선생님이 해야 하는 역할이라는 것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효과적인 교육과 인재 양성은 우리 미래를 위해 가장 중요한 투자입니다.

실적을 위해 편수를 채우는 형식적인 논문 몇개 쓰는 것 보다 교육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형식적인 논문을 쓰느라 끙끙 대고 있는 나를 반성합니다.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는

가르치는 사람의 무한한 성의와 가르치는 사람으로서의 자기 개발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그걸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기 어렵다고 변명하지만 그것은 정말 변명에 불과합니다.

 

저는 아직 변명하느라 급급한 신출내기 선생님입니다.

우리 학생들이 나에게 전해준 신선한 바람을 흡입하여 재충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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