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주치의일기

하루의 실천

슬기엄마 2012. 6. 21. 22:47

내 존재가 초라해지려고 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자존심으로 지키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알게 모르게

누군가로부터 직접적으로,

책이나 배움, 매스컴을 통해 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며 사는 사회적 동물입니다.

나의 실체는

원래부터 굳건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로부터 영향을 받으며 끊임없이 구성되고 있는 과정 중의 그것일지 모르겠습니다.

또한

나에게 타고난 재능으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옳고 그름을 판단하려는 노력, 정의로움을 추구하려는 노력,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일상의 노력을 통해

그 무엇인가를 얻어가며 나를 채워가는 과정으로 노력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이 순간.

그 순간을 잘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싶습니다.

결정된 미래는 없으며 미래는 지금의 변화무쌍한 순간이 모여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는.

 

 

오늘 후배 두명과 함께 저녁을 먹었습니다.

우리 병원 레지던트들인데요

함께 환자보고 내가 하는 일을 도와주고 함께 논문도 준비하며 공부하는 후배들입니다.

그들 삶의 시계와 제 삶의 시계는 다르게 흐릅니다.

생각의 지평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릅니다.

다른 인식의 지평에 서 있기 때문에 그들과 나는 서로의 고민이 다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교집합을 찾아 그 부분을 공유하며

그렇게 선물처럼 주어진 순간을 소중한 인연으로 여기고 일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나보다 백만배 똑똑한 후배들과 함께

오늘 행복한 저녁 시간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대학병원에서 의사로 일한다는 것은

더 이상 물러설 곳 없는 환자들을 진료하며 환자와 마음을 모아 어려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고

대학에 있기 때문에 실천해야 하는 연구 활동에 있어서도 그 부족함에 변명의 여지가 없으며

선배를 뛰어넘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 후배들을 잘 교육하고 더 잘 성장할 수 있도록 발판이 되어 주어야 하는

진료, 연구, 교육의 부담을 기꺼이 짊어질 수 있는 사람으로 기능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저의 실체는 저만이 알죠. 나에게 얼마나 부족함이 많은지.

주위의 탁월하고 재능있는 선후배를 보면서 깨닫습니다.

내가 무엇을 얼마나 못하고 있는지를 절실히 깨달으며

자꾸 작아지려는 나를 자존심으로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그 과정을 스트레스로 받아들이면 견디기 힘든 생활입니다.

외래 5-6시간에 60-80명을 진료하는 짧은 시간 동안

나만을 의지하는 환자들의 눈빛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우수한 치료성적을 내기 위해 매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병이 않좋아진 것 같아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저도 힘들지만 울음을 터뜨리는 환자를 달래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고

최선을 다해 후회없는 치료를 해야합니다.

진료를 끝내고 난 진료실에서

영혼이 모두 빠져나간 것 같은 공허함으로 나를 지탱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되새겨 봅니다.

 

 

아침에 미처 회진을 못 돈 응급실 환자를 보고 왔습니다.

등이 아프다는 환자를 진찰하고 검사보다는 진통제를 올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고 약을 증량하였습니다.

병원에 와서 진통제 조절을 하고 나니 훨씬 낫다는 그녀의 힘없는 웃음을 보니 내 마음에는 눈물이 고이려고 합니다. 나보다 훨씬 젊고 훨씬 예쁜 그녀.

 

 

저를 지탱해주는 것은 환자입니다.

 

 

제비 한마리가 왔다고 봄이 되는 것은 아니며

하루의 실천으로 행복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행복을 얻기위해

우리는 일상을 지속적으로 투쟁해야 하나 봅니다.

순간이 중요하지만

순간의 실천, 하루의 실천만으로는 행복이 오는게 아닌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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