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ason 1 - Doctor's life until Feb 2014/전이성유방암

여인들의 마음

슬기엄마 2012. 4. 19. 16:15

노란 김밥

 

방사선 치료를 시작한 그녀

치료 시작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금새 울렁증이 생겼나보다.

안 그래도 하얗고 헬쓱한 얼굴이 오늘 보니 더 야위었다.

그렇게 힘든 그녀가 오늘 노랗게 물들인 밥으로 식욕을 돋우는 노란 김밥 5통을 싸 왔다.

평소 같으면 쓰지도 않는 럭셔리한 냅킨에 예쁜 포크 5개를 럭셔리한 끈으로 묶어서

나에게 선물하였다.

밥 냄새를 맡고 싶지도 않았을텐데

이런 정성들일 심신의 여유도 없었을텐데

내가 이런 정성과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가

 

고마움과 뭔가 알 수 없는 울컥함으로 그녀의 노란 김밥을 먹을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외래 끝나자 마자 한통을 홀라당 다 까먹었다.

 

블루베리 요구르트

 

항상 시원한 블루베리 요구르트 세 병을 사오는 분이 있다.

진료 보는 나, 외래 간호사, 그리고 내 옆에서 참관하는 학생 혹은 레지던트 등등의 제 삼자까지 고려해서 세 병을 사신다. 세명이 있는데 두병을 사와서 민망했던 적이 있으신가 보다. 250ml 요구르트 세병을 가방에 넣어오시니 늘 가방이 묵직하다. 내가 블루베리맛 제일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아시고 꼭 이 맛을 사오신다. 내가 감사하다고 말하면, 가방 무거운데 주고나면 가벼워지니까 좋아요 라며 어색한 마음을 감추신다. 1년째 나에게 요구르트를 배달해 주고 계신다.

 

포카리 스웨트

 

아마도 집 냉장고에서 시원하게 보관했다가 갖고 오시는 것 같다. 깨끗한 비닐팩에 포카리 스웨트 캔 2. 내가 외래에서 그 선물을 받을 무렵이면 캔 표면에 송글송글 이슬이 맺혀 있다. 음료수 자동판매기에서도 사먹을 수 있는 포카리 스웨트. 그걸 굳이 미리 사서 냉장보관했다가 가지고 오시는걸까? 병원 편의점에서 손쉽게 살 수 있는게 음료수인데 그걸 그렇게 비닐팩에 싸서 꽁꽁 묶어서 가져다 주시는 마음이 정겹다. 예전에 할머니가 만들어 준 계란찜을 먹는 알싸한 기분이다.

 

생수와 두유

 

진료보다가 목 막히면 물 마시고 배고프면 두유 마시라며 간호사랑 나를 위해 생수와 두유를 두 세트씩 사다 주신다. 환자 나이는 75. 500ml 생수랑 300ml 두유 2개씩을 가방에 넣어오신다. 가글 처방해 주면 무겁다고 가져가지도 않으면서 꼭 생수를 사가지고 오신다. 엊그제는 두유 뚜껑이 열려 할머니 가방이 엉망이 되었다.

 

쑥떡

 

가끔 손수 뜯은 쑥으로 떡을 만들어 오신다. 다른 환자들과도 음식을 잘 나누신다. 밝고 명랑하다. 그녀가 만든 떡은 늘 쫄깃쫄깃하고 손맛이 있다. 떡을 쥔 손 모양대로 생겼다. 보기맨 해도 맛이 있다. 오늘 CT를 찍고 온 그녀. 내가 별 설명 안하면, 좋아졌나보다 하고 결과를 묻지도 않는다. 3년 넘게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에 의사가 별 말 안하면 좋은 싸인인 줄 안다. 그녀의 유일한 질문, 오늘도 맞고 가면 되요?

 

 

나에게 이렇게 알콩달콩 애틋한 선물을 주시는 분들은

모두 4기 유방암 환자들이다.

그래서 난 그녀들의 선물을 받으면 마음이 알싸하다.

 

봄이 되니 곱게 화장을 하고 오시는 분들이 많다.

 

좋아보이네요.

화장 좀 했어요.

역시, 여자는 화장을 좀 해야되요.

선생님은 안 좋아보여요. 선생님도 화장 좀 하세요.

알겠어요. 다음엔 비비크림이라도 바를께요.

 

여자끼리 통하는 마음.

여자끼리라 부담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마음.

 

유방암 환자들을 진료하는 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 될 때가 많다.

나에게는

가족도 중요하지만

환자도 그만큼의 의미가 있다.

그들은 나에게 input 같은 존재이다.

의사로서 내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방향을 제시해 주는 inp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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